해외에 나와서 보면 확실히 한국은 저마다 살기에 각박한 나라인 듯하다. 해외에서조차 한국인들의 표정은 평균 내기가 쉽다. 아마도 긴 시간 동안 남들의 시선이나 통제에 익숙해져 만들어진 표정 이리라. 아마 나조차 그럴 것이다. 활짝 웃고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사진을 보면 미소 짓고 있는 정도의 표정이라 크게 웃는다는 것이 굉장히 어색하다는 것을 느낀 적이 많다. 입가 가득한 웃음 조차 어색할 정도로 나 역시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환경에서 자라왔다. 워낙 성격 자체가 겁이 많고 내향적인 데다가 집안 분위기나 성장 과정 자체도 수동적이고 조심스러웠던지라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도 소심하고 어두운 편이었다.
그런 데다가 남들의 시선과 평가에 노출되는 것이 익숙했던 그 간 우리나라 사회 분위기까지 더해져 나는 굉장히 딱딱하게 굳어있는,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모습의 사람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독립을 하면서 정체성을 조금씩 찾아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혼자 하는 일을 찾기 시작하면서 나만의 사고 체계와 가치관이 더 확립된 것도 있다.
내가 치앙마이에 두 달 있으면서 느끼는 것은 확실히 표정이 밝아졌다는 것이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표정이 아닌, 자연스레 배어나는 본래의 표정 말이다. 나는 원래 여리고 다정한 성격이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따뜻하게 웃어주고 싶고, 보살펴주고 싶다는 감정을 쉽게 느낀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런 성격으로 인해 오해를 사거나 무시당한 경험이 많다.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거나 배려를 해준다는 것이 왜 그렇게 귀결됐는지 지금도 쉽사리 이해하긴 힘들다. 그렇다 보니 항상 무표정에 조금은 차가운 눈빛을 지니게 됐다. 귀엽다거나 착해 보인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상당히 나빴다. 희한하게도 언제부턴가 기가 세 보인다거나 도회적이다, 도도해 보인다는 말을 들으면 ‘성공이군’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태국 사람들이 항상 서로에게 상냥하고 잘 웃고 서글서글한 표정이냐 하면 절대 그렇지는 않다. 태국 사람들 역시 번듯한 가게나 쇼핑몰의 서비스직이 아닌 이상 상인이어도 굳이 그렇게 손님에게 과한 웃음을 보이지 않는다. 호텔이나 아파트에서 만나도 서양인들처럼 ‘good morning.’ 하거나 ‘where are you from?’ 등의 인사로 살갑게 먼저 다가오는 편도 아니다.
태국인들의 그 표정에는 언제나 같은 ‘그러려니’라는 느낌이 있을 뿐이다. 억지로 웃어 보이지 않고, 억지로 노력하지 않아도 편안하고 가뿐하게 느껴지는 그들 본래의 표정. 한국처럼 어딘가 날이 선 채 항상 긴장해있거나 누구에게도 지거나 밉보이지 않으려는 완고함은 없다. 하지만 내가 기분이 좋아서 미소를 짓고 있거나 활짝 웃으며 인사를 한다고 해도 ‘왜 저렇게 웃는 거지?’라고 생각하지도 않는 것이다.
내가 현재 묵고 있는 콘도와 님만해민 중심 거리에서 한국인을 스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럴 때마다 가끔씩 한국인 특유의 차가운 시선이나 무서운 표정이 눈에 띈다. 아마 여행이 즐겁다고 해도 쉽게 바뀔 수 있는 표정이 아닐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 오랜 세월 방어하고 인내하느라 생겨난 표정일 것이다. 그래서 가끔 속상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다. 오늘 콘도 로비에서 마주친 중년의 한국인 여성은 당최 이유를 알 수 없는 화난 얼굴로 나를 아래 위로 훑어보았다. 한국이었다면 나도 절대 지지 않겠다는 듯 똑같은 표정으로 응수했을 테지만 오늘은 그냥 미소를 진 채로 눈길을 거뒀다. 치앙마이는 그런 곳이다.
요즘의 한국은 내가 자라온 수 십 년 세월보다 더 각박하고 더 살기 힘든 나라다. 사람들은 점점 서로를 혐오하고 자신과 다르면 무조건 비방하기 바쁘다. 하늘은 하루도 맑은 날이 없고 여름에는 견디기 힘든 폭염이, 겨울에는 살기 힘든 한파가 당연하듯 이어진다. 물가는 끝도 없이 오르는데 오르지 않는 것은 월급뿐이다. 강대국들 사이에 이상하게 낀 채로 이리저리 치이며 바람 잘 날도 없다. 나라가 작은 데다가 많은 인프라가 수도권에만 몰려있다 보니 안 그래도 작은 나라에서 옹기종기 모여 서로 지적하고 지적당하며 불행지수 높이기에 여념이 없다. 마스크를 낀 채 정신없이 전념하는 거라곤 스마트폰이 전부인 어린아이들을 볼 때 앞선 어른으로서 정말 가슴이 아프다.
처음에는 나도 ‘헬조선’, ‘한국은 미래가 없다’ 같은 말에 동조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태어났고 내가 자라왔고 내가 살아갈 곳인 조국이 이렇게 된 현실이 슬프다. 아마 다들 같은 마음일 것이다. 그저 우리나라를 비난하고 한탄만 하고 있기에는 너무 답답한 마음에 많은 사람들이 해외 한 달 살기를 잠깐의 도피처럼 계획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라도 온전하게 자유로운 ‘한 달’을 지내고 나면 또다시 한국에서 적응해 살아나갈 힘이 생기기 때문이리라.
내가 머무는 콘도에 작은 수영장이 하나 있다. 종종 한국 아이들이 엄마와 함께 와서 시끄럽게 노는 경우가 있다. 물론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가끔 시끄러운 아이들을 저지하지 않고 태연히 딴청을 피우는 엄마들을 목격한다. 이 곳은 숙박지역이 아닌 현지인들이 살아가는 생활공간인지라 그런 모습을 보면 눈살이 찌푸려진다.
그러다가도 아이들이 해맑게 물장구치거나 정원을 뜀박질하는 모습에 ‘그래. 저 당연한 것을 한국에선 못해봤겠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엄마들도 아마 한국에서는 종일 집 안에서 아이들을 상대하느라 유튜브로 시선을 돌리게 하는 것이 유일한 숨통이었을 것이다. 이 곳에 와서는 아이들 뛰노는 동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그 마음 이해는 된다. (그래도 거주지에서는 웬만하면 통제시키는 것이 옳지 않을까.)
치앙마이에서 지내다 보면 여유가 생기고, 여유가 생기고 나면 나랑 다른 것도 가벼운 마음으로 ‘그럴 수 있다’ 고 넘기는 유연함이 생긴다. 그리고 그런 유연함을 바탕으로 새로운 경험이 쌓이고, 그런 경험을 초석으로 누구의 것도 아닌 나만의 ‘삶’ 이 살아진다고 믿는다. 아마 한국으로 돌아가면 점차 많은 다짐이 흔들릴 것이다. 그 나라의 분위기에 또 쉽게도 동화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니까.
많은 한국 사람들이 유연하기보다 뻣뻣하게 느껴지는 건 '여유'라는 그 틈 하나가 없어서 일 것이다. 빈 틈 없이 꽉 차서 더 이상 꽂을 자리가 없는 책꽂이처럼 한국에서의 삶이라는 것은 더 이상 다른 것을 받아들일 자리가 없다.
이 곳에서 가끔 넓고 큰 레스토랑에 가면 종업원들이 여유롭게 삼삼오오 놀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다. 손님이 많기도 많지만, 그에 못지않게 종업원도 많다. 가끔은 '쓸데없이' 많다는 생각이 든 경우도 있다. 손님인 우리가 주문을 하려고 기웃기웃해봐도 저들끼리 즐겁고 재미나느라 이 쪽을 볼 겨를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답답하고 짜증이 나기보다 그들의 웃는 얼굴이 어처구니없이 유쾌하다. '참 여유로워 보인다'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불현듯 아무리 바쁘고 아무리 지쳐도 항상 친절하고 씩씩해야 하는 우리나라의 알바생들이 머리를 스친다.
점심이 다 되어 느지막이 일어나 주섬주섬 수영복을 챙겨 입고 수영을 했다. 텅 빈 수영장을 이리저리 떠돌다가 배영 하듯 그대로 물을 등지고 드러누웠다. 물 위에 누운 채 팔다리를 휘적거리며 떠다니는데 지금 이 모습이 치앙마이에서의 삶 같다는 생각을 했다. 목적지 없이 자유롭게 떠돌며 유영하는 삶. 손가락 사이로 찰박찰박 여유가 새어 들어온다. 가만히 있어도 여유가 나를 찾아오는 곳, 치앙마이.
오늘의 이 유연한 하루를 한국에 있는 이들에게 택배로 보낼 수 있었으면. 치앙마이의 온화한 기운을 갓 구운 빵처럼 따끈따끈 맛보게 해 줄 수 있었으면. 내가 사랑하는, 그들이 사랑하는 이들이 마침표만으로 가득 찬 하루 대신 쉼표 사이에서 쉬었다 갈 수 있는 하루가 되었으면. 그을린 내 피부처럼 따스하게 데워진 내 마음으로 그냥 그 어떤 누군가들을 떠올리며 소망한다.
당신의 오늘보다 조금 더 여유로운 나의 오늘에서, 조금 더 유연한 내가, 당신의 하루에 치앙마이의 이 따스한 햇빛이 한 줌이라도 가 닿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