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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아 Feb 24. 2019

프롤로그

요즘 해외 한 달살기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당장 실행이 가능한 사람도, 여건이 되지 않아 마음 뿐인 사람도 한 달 동안 살아보고 싶은 나라 하나쯤은 품고 있다. 너도 나도 한 달쯤 해외에서 살아보고 싶은 그 마음은 뭘까? 한 달이라는 시간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치앙마이 두 달 살이를 진행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에게 같은 일의 반복이란 언제나 무기력하고 침체되게 만드는 근원이 아닐까.


그렇다. 원래 인간이란 지루하고 따분한 것을 견디기 힘들어한다. 나만, 당신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인간은 원래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다양한 가격대의 항공사와 숙박 공유 사이트 등의 발달로 해외 한 달살기가 비교적 용이해진 지금, 원래 살던 곳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잠깐’ 생활해보는 것은 현대인들에게 있어 최고의 일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한 달’ 혹은 ‘두 달’ 이라는 시간은 ‘일탈’ 의 기간으로는 가장 안전하고 적절한 것 같다. 아마 다들 같은 마음일 것이다.


‘치앙마이’ 라는 도시는 한 달을 살아보기에 그 어느 곳보다 훌륭한 도시다. 단 돈 4천원으로 맛깔나는 한 끼 식사를 할 수도 있으며, 아무리 근교로 나가도 택시비가 5천원을 넘지 않을 수 있다. 게다가 노트북 하나 들고 거리로 나서도 하루 종일 창 밖으로 녹음을 내다보며 일할 수 있는 쾌적한 카페가 가득하다. 얇은 여름옷들로만 돌돌 말아 캐리어를 가볍게 끌고 떠나기에도 안성맞춤. 콘도나 아파트마다 딸려있는 유리잔 같이 영롱한 수영장은 어떠하며, 눈길 닿는 곳마다 늘어진 초록빛 생명력은 또 어떠한가.



일 년 내내 바짝 마른 햇빛의 냄새가 가득한 곳, 치앙마이.



모든 감각을 깨어나게 하는 총 천연색의 도시에서 그야말로 먹고, 놀고, 마시고, 먹고, 놀고, 일은 ‘적게’ 하는 삶. 마다할 수 있을까? 언제나 빠르고, 급하고, 또 각박하게 돌아가는 우리의 현실에서 인생에 한 달쯤은 ‘일탈’ 에게 시간을 내어줄 수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 ‘일탈’ 이 인생의 경험치를 엄지와 검지 사이 한 뼘만큼이라도 늘여줄 수 있다면 실행치 못 할 이유도 없다. 혹자들은 ‘한 달 살기’ 를 하고 오면 외국어 실력을 많이 늘려올 수 있는지, 각 국의 디지털 노마드들과 만나 새로운 기술이라도 터득하고 올 수 있는지, 또는 무언가 새롭게 배울 수 있는지, 더 나아질 수 있는지,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을 수 있는지 등등 끝없이 질문한다. 아마도 한국을 떠나 있을 ‘한 달’ 혹은 ‘두 달’ 의 그 시간들이 불안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가있을 그 몇 달동안 한국에 남아있는 다른 이들에게 뒤처지지 않을 ‘유익한’ (혹은 그렇다고 생각되는) 무언가를 습득해야만 마음이 놓이는, 그런 마음일 것임을 잘 안다.


그럴 때 말해주고 싶었다. 그런 건 없다고.

‘한 달살기’ 에 큰 의미를 부여하며 떠나지 말라고 말이다. 나 역시 늘 그랬다.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혼자만의 큰 의미를 부여하고, 기대하고, 결론 내려버리는. (중요한 건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인생에 큰 의미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그냥’ 했을 때에 온다. 적어도 내 인생은 그랬다. 각 잡고, 긴장하고, 마음 먹어버릴 때는 늘 철저하게 나를 빗겨갔다. 늘 그랬듯 치앙마이에 오기 한달 전부터 혼자 대단한 의미를 규정지어 제한해버리고, 기대하며, 상상의 ‘치앙마이 두 달 살이’ 를 구성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도착한 치앙마이는 언제나 그랬듯이 나의 ‘그 것’ 과는 많이 달랐다. 또 한 번의 무의미한 ‘작업’ 을 열심히도 준비했던 것이다.


치앙마이로 한 달살기를 하러 올 때는 맛있게 먹고, 신나게 쏘다니고, 시원하게 쉬다가, 해가 진 밤 거리로 나가 창 비어 한 잔을 목구멍으로 상쾌하게 넘길 생각을 하라.



그게 전부다. 일하고 싶으면 일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말자. 물론 그 후의 일도 스스로의 책임이다. 치앙마이 두 달 살이를 마치고 서울로 가면 내 인생은 달라질까? 정답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원래 인생이란 언제나 그렇지 않은가? 내가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왼쪽에 난 길로 갈 수도 있고, 오른쪽에 난 길로 갈 수도 있는. 그에 따라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그 길 끝에 선 ‘나’ 만이 알 수 있겠지만.


그럼으로 있는 그대로, 내 모습대로 살아가는 여정은 서울이든, 치앙마이든, 그게 어디가 됐든 언제나 진행 중에 있다. 어디서든 ‘나’를 놓지만 않는다면.




 2019년 2월 14일, 치앙마이 창클란에서, 햇빛이 반쯤 드리워진 야자수들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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