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를 거쳐 치앙마이에 도착했다. 타이베이에서 4일을 보내고 겨우 도착한 치앙마이는 태풍의 영향권으로 하루 종일 비가 왔다. 건기에 해당해 비가 잘 내리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세차게 끊임없이 쏟아지는 폭우라니. 재수 없게 태풍이 지나가며 비를 뿌리는 날 단 하루, 그 날 나는 치앙마이에 도착했다.
두 달이나 머무를 계획인지라 캐리어는 한 사람당 두 개씩, 어깨에는 가방까지 짊어지고 낑낑대며 도착했는데 비까지 콸콸. 기운이 쪽 빠졌다. 타이베이에서도 끊임없이 짐을 끌고 다니느라 이미 녹초가 된 상태였다. 동네 버스터미널처럼 작은 공항에 사람은 어찌 그리 많은지. 다들 택시를 잡겠다고 산더미 같은 짐을 한 보따리씩 들고 와글와글 모여있었다. 여기서 짜증이 나지 않기란 쉽지 않다.
치앙마이에 도착하자마자 정기가 가득한 푸르른 숲과 맑고 파란 하늘, 초록 초록한 나무들을 만나리란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게다가 치앙마이에만 오면 다른 사람이 되듯 온화하고 평정한 사람이 될 거라는 망상은 또 얼마나 오만했는지. 역시나 예측 불허의 상황이 펼쳐지자마자 짜증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덥고 습하고 좁고 피곤하고. 짜증을 내야 할 이유는 수십 가지였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택시 번호표를 받고 두 개의 짐에 기대어 멍하니 내리는 비를 바라봤다. 앞도 잘 보이지 않을 만큼 쏟아져 내리는 장대비 사이로 가득 우거진 나무와 풀들이 보였다. 더운 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짙푸르고 무성한 녹색. 공기 가득한 짙은 녹색의 습하고 매캐한 내음. 초조함과 불만을 내려놓고 무력하게 서있으니 그제야 치앙마이가 보였다.
그렇다. 나는 지금 여기 치앙마이다.
서울에서 몇 달 동안이나 기다렸던 치앙마이에서의 두 달, 지금은 고작 그 여정의 첫날이다. 수개월을 그렇게 손꼽아 기다려놓고는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 하나 때문에 다시 툴툴대려 했던 나. 폭우가 내리고 사람이 북적이는 지금 여기, 치앙마이는 망상 속에 내가 만들어놓은 치앙마이가 아닌 진짜 치앙마이였다.
서울에서도, 치앙마이에서도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없다.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순리대로 흘러갈 뿐. 치앙마이라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구나. 도착하자마자 깨달음을 주려고 거친 비바람이 몰아치는구나. 그렇게 아집을 내려놓자 비로소 치앙마이가 보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지금 여기 순응하는 것. 그렇게 살기 위해 결정한 치앙마이 두 달 살이었음을 다시 한번 깨닫는 것.
온전히 지금, 여기, 치앙마이에 있는 나를 발견하자 비를 타고 대기로 흩어지는 묵직한 나무와 흙냄새가 시원했다. 한없이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치앙마이에 무사히 도착했음에 감사하자 기다림도 잠깐, 순서는 금방 지나 내가 탈 택시가 도착했다. 택시 기사는 나의 짜증이 무색하리만큼 친절했고 선량했다. 택시를 타고 달리며 창 밖을 내다보니 비 오는 치앙마이는 참 그럴듯했다. 저 너머 보이는 산으로 운무가 가득했다. 온통 암녹색으로 가득한 그 모습은 참 신비로워 보였다.
서울에서는 결코 느껴볼 수 없던 대자연의 기운이 느껴졌다. 수도관이 동파될 정도의 한파에 떨던 서울의 날씨. 그리고 한국의 가을 날씨 같은 타이베이를 거쳐, 덥고 쨍쨍한 여름의 나라 치앙마이까지. 내 몸이 적응하기 좋은 온도를 맞춰주느라 오늘의 치앙마이는 평소와 달리 비가 오고 서늘한가 보다. 갑자기 32도에 육박하는 더위로 던져졌다면 내 몸은 많이도 놀랐겠지. 말 그대로 서서히 더워지는 이 순서가 참 재밌고도 기똥차다.
이런저런 기특한 생각을 하고 있자니 마음이 너그러워졌다. 치앙마이에 있거나 서울에 있거나 내 마음은 내가 다루기 나름이라는 것, 이 단순한 깨달음을 치앙마이에 도착한 첫날, 치앙마이가 나에게 상기시켜 주었다.
현재에 충실하지 않는다는 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나를 괴롭게 한다. 숲 속 깊은 리조트에서의 하룻밤을 뒤로하고 다음 날 님만해민 거리에 위치한 콘도로 숙소를 옮기자 또다시 시작되는 나와의 싸움. 하루 깨닫고 끄덕인다고 해서 절대 방심할 수 없는 것이다.
님만해민 거리는 치앙마이 최대의 번화가답게 북적이고 번잡했다. 인도가 제대로 마련되어있지 않은 태국 거리의 특성상 양 옆으로 오토바이며 자동차가 끊임없이 위험하게 지나다녔다. 태국인들은 아무도 괘념치 않는 분위기였지만, 정갈한 서울의 거리에 익숙해진 나에게는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님만해민에 위치한 나의 숙소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비행기가 이륙하고 착륙하는 소음이 아찔하게도 들렸다. 비행기 소음의 뒤로 숙소 옆에서 새 콘도를 짓는 공사 소리가 화음처럼 깔렸다. 콘도의 수영장에는 어린아이들이 떼를 지어 놀고 있었다. 내가 상상한 것과 도무지 겹치는 게 하나도 없을 정도였다.
해보지도 않고, 가보지도 않고, 남의 이야기와 내 상상만으로 모든 것을 결론지어 버리는 것이 얼마나 나쁜 버릇이었던가. 사실 늘 그런 식으로 30년 가까이 살아온 게 아닐까? 내 생각 속에서, 과거에서, 미래에서, 난 그렇게 현재를 허비하며 살고 있지 않았나? 님만해민의 시끄러운 거리를 걸으며 생각했다.
거리의 사람들은 각자의 삶으로 분주했고 님만해민은 어제도 그제도 같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잘못된 것은 이방인인 나뿐이었다. 왜 멋대로 생각하고, 멋대로 결론지어놓고 찾아와서 내 것에 끼워 맞추려고 했던 걸까? 그러자 진짜 님만해민이 보였다.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가게들, 누구도 강요하지 않고 가르치치 않고 서로 알아서 배려하며 이해하는 사람들, 그 사이로 각 국에서 찾아온 여러 국적의 외국인들, 뜨겁지만 따스한 햇살과 틈틈이 늘어진 그늘, 다른 동네로 넘어온 듯한 대로변 안쪽의 작은 골목골목들.
거리에는 변변한 횡단보도가 없지만, 지나다니는 차들은 보행자가 건너가려 할 때 짜증 내지 않고 멈춰주었다. 그런 사소함에 감사했다. 뜨거운 햇살을 맞으며 걷는 순간, 비타민d가 부족하다며 징징대던 서울의 겨울 속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자 가벼운 옷차림에 슬리퍼를 끌고 햇빛을 받는 지금이 얼마나 행복한 순간인지, 꿈에 그리던 순간인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더워서 죽을 듯 굴다가 냉방이 강한 실내에 들어가자마자 1분 만에 추워하는 모습은 간사하다고 밖에 설명 못하겠다. 비행기의 시끄러운 소음은 님만해민 거리의 수많은 카페들로 노트북을 들고 피신하면 그만이었다. 카페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님만해민에는 예쁘고 트렌디한 카페가 가득했고, 서울과 비교하면 그 가격은 너무나도 착했다!
끊임없이 들어오고 나가는 저 비행기들도 나 같은 손님들을 계속해서 실어 나르는 것이리라. 내가 좋은 건 남들도 좋은 것이 분명한데 어찌 님만해민이 한적하기를 기대하는가. 수영장 역시 사람들이 좀 빠지고 한적한 시간을 연구하기로 마음먹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점심 먹기 전후의 12시~2시가량을 애용하는 것 같았다. 2시~4시는 해가 제법 뜨거워서 카페나 숙소 등 실내로 숨는 듯했다. 아침과 저녁 시간 역시 해가 진 후라 물이 차가워져 수영장이 한산했다. 상황에 맞게 행동을 바꾸니 못할 게 없었고 불쾌할 것도 없었다. 비로소 나에게 주어진 이 시간이 얼마나 감사하고 값진 것인지 느껴졌다. 어디에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나의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