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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아 Feb 24. 2019

환기시키러 왔는데요.

치앙마이에 오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는 새롭게 환기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를 아무도 모르고 나도 아무도 모르는, 그런 곳에서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은 기분. 누구나 한번쯤 그런 상상을 한다. 어릴 때의 치기어린 마음으로 한번쯤 해볼법한 상상을 서른이 된 나이에 덜컥 실현시켰다.


내가 치앙마이로 두 달 살이를 하러 떠난다고 했을 때 몇몇 사람들이 말했다. “그거 사실은 도피 아니야? 그냥 모든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맞다. 그런 마음이 들어서 훌쩍 떠나버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살면서 이렇고 저런 참고 견뎌야 하는 이유들은 너무 많다. 인생에 두 달쯤은 아무 생각없이, 아무 부채감없이 살아도 문제없는 것 아닐까.


무언가 새롭고 색다른 행동을 선택할 때, 모든 사람들이 좋다고 박수쳐주는 일은 절대 없다. 아니, 대부분은 걱정하고 불안해하고 불쾌해하고 지적하며 훈계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 인생에 지적받고 손가락질받은 경험은 없었다. 나는 항상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고 편하게 여기는 길로만 걸어왔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비아냥이 두려웠고 그들의 부러움과 인정이 고팠다. 치앙마이 두 달살이를 선택한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살아온 시간은 남들이 부러워 할 모습으로, 남들이 손가락질하지 않을 모습으로 살기 위해 보낸 세월이었다. 내 선택이나 그에 따른 결과로 남들이 지적하거나 충고하는 것이 무엇보다 듣기 싫었던 나다. 아마도 자존감이 부족해서였으리라.


항상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고, 남들에게 칭찬받고 싶었으니까. 그러다보니 내가 진정 하고싶은 일이 뭔지도 쉽게 찾아내기 어려웠고, 무언가를 시작해도 실패를 지레짐작하며 끈기있게 잡고 있지 못했다.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나의 헛된 욕심은 나를 나만의 비현실에서 살게했다. 도전을 하는 것도,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도 겁나고 두려웠다. 생각만 가득했다. 수 십년간 한 방향으로 길들여진 가르마처럼 새로운 길을 내려고 하면 생각은 꼭 붙잡았다.

 

‘아니야. 생각 속에 있어. 아직 아니야.’


그런 나에게 치앙마이 두 달살이는 새로운 도전이었고, 그로 인한 환기였다. 고구마라도 한 사발 집어먹은 듯한 뻑뻑한 삶에서, 물미역처럼 흐느적 흐느적 유연한 삶으로의 환기.


결과적으로는 치앙마이 님만해민의 24시간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더없이 자유롭고 더없이 가뿐하다.

내가 몸과 마음이 가벼운 이유는 단순하다. 낮에는 따사로운 햇빛 아래 마음껏 일광욕할 수 있고, 밤에는 기분좋은 여름밤의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축복받은 치앙마이의 건기 날씨, 그 덕에 매일매일 반팔에 슬리퍼 끌고 자유롭게 쏘다닐 수 있는 몸의 자유,



우리나라의 반값에 가까운 저렴한 물가에 쾌적하고 예쁜 인테리어의 카페들, 어딜가나 초록빛의 녹음이 가득한 야외 식당들과 테라스, 그 곳에서 즐기는 푸짐하고 맛있는 음식, 바쁘게 재촉하지 않는 사람들과 느리게 가는 시간, 칵테일의 푸른빛을 닮은 수영장에서의 휴식, 썬베드에 누워 책읽고 뒹굴거리다가 문득 올려다보면 미세먼지 하나없이 눈이 시리게 맑은 하늘. 이렇게 풍요롭고 여유로운 환경 속에서 침체되고 무기력하기가 더 힘들다.



그렇다고 마냥 룰루랄라 신나고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가끔은 '이렇게 살아도 되는걸까' 하는 불안감도 들고, '너무 오바했나' 같은 쓸데없는 후회도 들곤 한다. 삼십년을 안전하게 안주하며 살아온 인간에게 극단적인 환기란 항상 관성의 법칙을 일깨우곤 한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인생인 것은 나든 누구든 당연한 것이라지만, 심지어 변변찮은 직업도 없고 일정한 수익도 없다. 그럴 때는 방콕에서의 작년 겨울을 떠올린다. 작년 겨울 방콕에서의 한 달 살이를 위해 떠났을 때에도 나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방콕살이로 내 인생의 한 달을 환기시키면서 인터넷을 통한 수익을 창출해냈다. 인터넷으로 일을 하고 수입을 낸다는 것은 나로서는 생뚱맞기 이를데 없었다.


기계라면 질색팔색을 하는 데다가 생각조차 해본 적도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다시 사양길로 접어들었지만, 그 수익이 꽤 오랜 기간 나에게는 제법 쏠쏠했다. 방콕 한 달살이 이후로 내가 깨달은 것은 과거와 망상에 사로잡혀 불안해하고 초조해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자유롭게 산다는 것은 익숙한 불안감에 시달리는 일이다. 누구에게,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삶이란 한편으로는 언제까지나 형체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을 업고 사는 일일 것이다. 인간이란 이렇게 앞뒤가 안맞는 이야기를 하며 엎치락 뒤치락 살아간다.



사실 나는 해외 한 달 살기, 두 달 살기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앞서 말했듯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는 일은 절대 시도하지 않는 편이었고, 여행이란 아무쪼록 짧고 굵게 즐기는 것이 매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일단 해외에서 한 달, 두 달씩 머무르기 위해 노마드적인 일거리를 생각해봐야하는 것도 여간 골치아픈 일이 아니었다. 그 전부터 시도해오던 것들이 있었지만 지긋지긋했고 때려치고 싶은 지경이었다. 그렇게 불안감 반, 설렘 반으로 떠난 방콕에서의 한 달은 생각보다 멀쩡했다. 아니, 더 나은 내가 되었다고 하면 자랑일까.


나랑 정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을뿐더러 자신없었던 일도 그 때부터 나의 직업이 되었고, 꽤나 좋은 (내 기준으로는) 수입도 가져다줬다. 계기를 만들고, 그냥 했더니, 아무 일 없이, 생각보다, 좋았던 것이다.


그 때 알았다. 내가 정말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 길이 될 수도 있구나.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삶의 태도는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걸수도 있겠구나. 꺼려지고 어려워보여도 한 번쯤 다시 돌아보자. 작은 기회라도 놓치지 않도록 항상 유연한 태도를 유지하자. 미약하고 허름한 이 시작이 내가 꿈꾸는 멋진 미래로 가는 첫 걸음일지도 모른다. 일단 내 생각과 환경을 싱그럽고 여유롭게, 뭐든 해보고 싶게 만들어보는거다. 그게 나에겐 방콕 한 달살이와 치앙마이 두 달 살이였다.



치앙마이 님만해민에서 맞이한 둘쨋날인 오늘, 의외로 과거에 사로잡혀 불안과 한탄에 보낼 시간은 거의 없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일찍 눈이 떠졌고, 빨래를 돌렸으며 집안 구석구석을 빗자루 질하며 청소했다. 택시를 타고 반캉왓 마을로 나가 온통 초록으로 둘러쌓인 가게에서 밥을 먹고 어딜봐도 널찍하고 탁 트인 카페에서 차를 마셨다.



늘어져있는 강아지들을 만났고, 다짜고짜 내가 먹고 남은 소다를 뺏어 마시는 귀여운 꼬마아이도 만났다. 숙소로 돌아와 수영을 하고 썬베드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봤다.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가 길을 잃었고 관광객의 발길이 뜸한 골목에서 현지인들의 살림살이를 구경했다. 긴 골목 끝으로 보이는 오렌지빛 하늘이 자연스럽게 쪽빛으로 스러져가는 풍경을 바라봤고, 담벼락 밑으로 그런 나를 바라보는 고양이를 만났다. 해 질 무렵의 내가 본 그 풍경들은 마치 그 때의 하늘빛을 닮은 물 속에 그대로 적셔진 그림 같았다.



그 때의 그 공기가 한지에 스며든 물감처럼 가볍고 촉촉했기 때문이리라. 숙소로 돌아와 짐을 꾸려 24시간 카페에 나와 글을 쓴다. 오늘 나는 끊임없이 현재에 살았다. 무엇을 하든 현재에 충실히 산다는 것은 정말로 사람을 생산적으로 만들고, 효율적으로 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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