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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아 Feb 24. 2019

방종과 자유, 그 사이

치앙마이에서는 매일매일이 축제다. 그말인즉슨 방종 역시 조심해야한다는 것이다. 첫째로, 물가는 저렴하고 맛있는 것은 지천에 널린지라 인간이 휘둘리는 것 중 제일 한심한 것으로 여겨지는 식탐의 지배를 받기 쉽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 아침은 생강홍차로 가볍게 시작한다. 저녁 식사 후로 잠자리에 들어 아침에 눈을 뜰 때까지 대략 12시간~15시간 정도의 단식 시간을 지키고자 함이다. 점심 저녁은 먹고 싶은 음식으로 맛있게 먹어준다. 두 달을 지내는 것 뿐인데 너무 옥죄는 것도 스스로에게 못할 짓이라는 핑계다. 서울에서보다 훨씬 많이 걷기는 하지만, 워낙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다보니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거나 헬스장에서 러닝머신 걷는 것으로 운동도 꼬박꼬박 챙겨준다. 지하가 아닌 지상에서 탁 트인 창문으로 수영장이나 정원을 보며 달리는 상쾌한 기분은 태생 자체가 죄수들의 고문 기구였다고 하는 트레드밀의 고통을 제법 줄여준다.



수영장에 사람이 없을 때는 아쿠아로빅하듯 열심히 뛰어다니고 점핑도 한다. 밖에서 움직이는 것보다 물의 저항으로 인해 칼로리 소모가 훨씬 높기 때문에 생각보다 운동이 많이 된다. 넓은 수영장이 있으면 사람들에게 물을 튀기지 않을 수 있는데다가 이리저리 뛰어다니고도 공간이 남아서 아쿠아로빅에 최적이다.



작년 방콕 한 달살이의 경우에도 이런 식으로 매일 관리를 해주었더니 디저트까지 꾸역꾸역 챙겨먹고도 체중이 도리어 빠져서 돌아왔다. 님만해민에 위치한 쇼핑몰 원님만에서 화, 목 아침마다 진행하는 무료 요가 클래스도 될 수 있으면 나간다. 원님만의 원살라 광장 무료 요가 클래스는 이미 여행객들에게 유명할대로 유명해진지 오래다. 그런데 사실 직접 가보면 80% 이상이 한국인인 것을 목격할 수 있다.



나는 치앙마이에 있다고 절대 게으르게 지내지는 않는다. 아니, 오히려 서울에 살 때보다 훨씬 부지런하고 건강하게 움직인다. 요가도 하고, 수영도 하고, 걷기도 많이 걷고, 식탐의 노예가 되지도 않고 (노력), 더운 나라라고 신나서 찬 것만 마시기보단 한국에서 챙겨온 생강홍차나 당귀대추차 등을 마시거나 곡물찜질팩으로 수시로 아랫배와 하체 찜질을 해주면서 에어컨 바람으로 찬 기운에 노출된 몸을 따뜻하게 살피기도 한다.


청소도 그때그때 자주 한다. 내가 지금 머무르는 콘도에는 청소기 대신 빗자루가 비치되어 있다. 처음에는 ‘고등학생 때 이후로 처음보는 빗자루와 쓰레받기군’ 이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바로바로 청소하기에 적절한 ‘잇템’ 이 아닐 수 없다. 알고보니 치앙마이는 식당이나 카페 등 업장에 대부분 빗자루와 쓰레받기가 마련되어 있었다. 빗자루가 아직까지 보편적인 것 같다. 아침에 눈뜨면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집 안 한 바퀴를 후루룩 쓸어준다. 빨래 건조대가 워낙 작아서 세탁기도 자주자주 돌린다. 쓰레기통도 작다보니 쓰레기도 열심히 비운다.

 

이 정도면 뭐든 할 수 있는 바람직한 인간형이 되어버린 것만 같지만, 이렇게 지내면서도 유유자적 여유롭게 매일매일 축제처럼 지낸다.



둘째는 두 달을 살든 세 달을 살든, 치앙마이에 있는 동안 우리는 외국인이라는 점이다. 이 점이 상당한 방종을 야기하기 쉽다. 실제로 이 같은 방종에 빠져서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상당수다. 물가가 저렴하다고 해서 흥청망청 쓰다가 치앙마이가 아니면 좀처럼 살아남기 힘든 잔고를 가지게 된다거나, 가끔 들리는 풍문으로는 중장년 서양인들의 경우 태국 호스티스나 태국인 여성들에게 애정공세를 퍼붓다가 재산을 탕진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세상은 요지경이다. 해가 지고 길에 어둠이 내려앉을 무렵이면 치앙마이 구석구석에 위치한 수도 없는 술집들이 영업을 시작한다.



서양인들이 즐겨찾는 어둑어둑한 펍이나 라이브바들도 많고 젊은이들이 즐겨찾는 재즈바, 라운지, 클럽 같은 펍들까지 끝도 없다. 치앙마이는 가만 보면 진짜 로컬 치앙마이 출신이 있긴 있는건지 궁금해진다. 마치 외국인들을 위한 도시 같다고 여겨질 때가 참 많다. 특히 밤이 되면 화려한 불빛으로 불나방들을 유혹하는 유흥거리를볼 때면 더더욱 그렇다. 내일도, 모레도, 일주일 후에도 규칙적으로 가야할 곳이 있거나 해야할 일이 있는게 아닌 외국인 신분이라면 이런 유흥에 탐닉하기 정말 쉽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밤거리의 치안도 좋은 편이고, 치앙마이 사람들 자체가 유하고 쿨한 편이라 크게 부딫칠 일도 없어서 술취해 혼자 걸어다녀도 마음이 놓이는 것 역시 한 몫한다. 이국적인 골목의 풍경과 어두운 밤거리 속 아른아른 비치는 오렌지빛 조명들, 살랑 불어오는 밤바람, 저절로 리듬을 타게 되는 음악 소리와 값싸고 달콤한 술 한잔이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어진다.



나 같은 사람은 워낙 겁이 많고 소심한 편이라 혼자 왔어도 유흥에 중독될 일은 없었겠지만, 남편과 같이 와서 더더욱 깔끔하게 즐기고 파하게 된다. 혼자 오는 사람이면서 유흥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유혹을 조심하라!


게다가 말이 안통하고 문화를 잘 모르고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굉장히 사람을 풀어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외국에 나가면 어쩐지 용감해지는 경험은 누구나 한번쯤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오히려 3박 4일, 4박 5일 여행이라면 일탈처럼 행해볼 수 있겠지만 한 달 이상 머무를 경우에는 이런 유형의 방종을 가장 조심해야 한다.


앞서 말한 규칙적인 생활 습관이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다. 새롭게 충전하는 것은 좋지만 한국에서의 나와 180도 다른 나처럼 행동하는 것은 도전이 아니라 충동이다. 한 때의 불장난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나는 치앙마이에서 사는 두 달동안 건강하고 긍정적이고 활력있는 삶을 살고, 또 그런 힘을 받아 한국에서도 이어서 살아가고 싶은 사람이다. 치앙마이 두 달 살이를 끝내고 나서 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에. 앞으로의 더 나은 내가 되는 데에 보탬이 되고 싶어 온 것이기 때문에 방종을 끊임없이 경계한다.



경계해야 할 것을 강조해서 쓰다보니 숨막히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당연하게 지켜지다보면 여유와 공존하는 삶 역시 자연스레 따라온다. 나는 지금 누구보다 하루하루가 기대되고 즐겁기 때문이다. 매일이 축제같다는 것이어떤 것인지 치앙마이에 오고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아침에 눈을 떠서 양치를 하고 생강홍차를 끓여 마시는 모습은 서울에서의 나의 아침과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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