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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아 Feb 24. 2019

초록색

나이가 들면서 자연의 색깔이 참 좋아진다. 그 중에서도 단연 기분을 좋게 해주는 색은 식물의 초록색이다. 희한한건 내가 그렇게 생각하면 동시대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내가 생각하던 것이 우연히 트렌드가 되는 것인지, 세상이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찌됐든 세계적으로도, 우리나라에서도 ‘Greenery’ 컨셉이 대세다. 카페든 레스토랑이든 트렌디하거나 힙한 곳은 보란 듯이 플랜테리어(Plant+Interior)를 선보인다.



빽빽한 서울의 아파트숲 한복판에서만 살아온 나로서는 자연의 초록이라는 것은 열대지방의 눈처럼 귀하고 값지다. 그렇다고 문화생활이나 각종 인프라에서 멀어져야하는 전원 생활은 원치않는 모순적인 현대인의 말로(末路)는 초록색을 이렇게 그리워만 하는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에게 치앙마이 생활은 그 간의 부족한 초록색 피를 잔뜩 수혈해준다.



도시의 편리함과 자연의 초록색을 함께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소중할 뿐이다. 님만해민 쪽보다는 올드시티나 산티탐이, 올드시티나 산티탐보다는 항동이나 매림 지역 같은 근교 지역이 더 자연적인 초록으로 가득하기는 하지만 작은 카페나 가게 곳곳에도 초록빛 생명력의 냄새가 모락모락 피어난다. 똑 같은 카페라도 천장 가득 동앗줄처럼 흐드러지게 내려오는 양치식물들을 바라보거나 새파란 하늘을 틈틈이 가리는 풍성한 야자수들을 바라보며 앉아있으면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다. 열대의 향이 가득 느껴지는 플랜테리어에 우드나 스톤으로 제작된 테이블을 채우면 어쩐지 차분해지면서 더더욱 휴양하는 기분이 나는 것이다.



아기자기한 플랜테리어가 아니라 현실의 자연으로 나가면 확실히 더운 나라라서 그런지 자연의 생명력이 한국과는 차원이 다르다. 덩굴이나 줄기들이 응집해 자라나는 모습은 간혹 싱그러움보다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증식이다. 거대한 대자연의 기운이 가득 느껴진다. 그 속도나 형상 자체가 자연 속의 작은 인간으로서 범접하기 힘든 기운이라는 것이 아마 맞을 것이다.



그 말인즉슨 자연의 초록을 즐기면 현실적으로 따라오는 벌레나 곤충들 역시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이다. 태국의 자연을 한국의 자연과 혼동하면 절대 안된다. 태국에서는 수풀이나 민물에 덤벙덤벙 쉽게 들어가지 않는 편이 좋다. 물론 아무 일 없이 멀쩡했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한동안 고생하는 사람들도 많다.



치앙마이는 분명 문명의 냄새가 가득 느껴지는 번화한 도시지만 나 같은 경우는 워낙 조심성도 겁도 많은지라 꼭 자연 속에 오래 머물다 온 것이 아니라도 손발을 철저히 씻고 위생에 더욱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맞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뼛 속까지 현대의 문명인이다. 이쯤되면 내가 사랑했던 자연의 초록이 진짜 자연의 초록이 맞는지 의심이 된다.


태국에서 한 달 이상씩 장기 체류하기 전까지는 스스로 내가 굉장히 자연 속에서 힐링하는 것을 즐기는, 자연형(?)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가증스러운 도시인의 철저한 착각이었다. 나는 ‘사람’ 에 의해 ‘잘 가꿔지고 잘 관리된 초록색’ 을 사랑했던 것이다. 동시에 그렇게 잘 가꿔진 자연 속에서 인력에 의해 안전하게 보호받아야하는 것은 덤이다. 생각해보면 리조트나 호텔이 아닌 진짜 철저한 자연 속에서 휴식을 취해본 적이 있었나? 자연은 그런 것이 아니다. 철저하게 자연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삶이란 하루하루가 전쟁같고 치열할 것이다.


방콕에 살면서도 느꼈지만, 번화한 도심지역을 벗어나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도 어쩐지 겁이 난다. 치앙마이나 방콕이나 외국인에게 익숙할대로 익숙한 세계 최고의 관광도시이며 번화한 곳은 반짝반짝하게도 번화하지만 여전히 엄지손가락만한 바퀴벌레가 유유히 지나가기도 하고 도로 구석으로는 쥐들이 떼로 소굴을 만들고 있기도 한다. 태어나서 쥐가 여러마리 모여서 한데 움직이고 있는 것은 치앙마이에서 처음 본 것 같다.


게다가 치앙마이는 밤만 되면 들개들이 떼로 몰려다니며 사람을 위협하기도 한다는 무서운 이야기가 여행객들을 통해 구전(?) 되어 온다. 님만해민과 올드시티, 센트럴 페스티벌 옆 콘도 지역에서만 머문지라 실제 경험은 한 번 밖에 없다. 워낙 개와 고양이를 좋아하는지라 아무 개한테나 다짜고짜 말을 거는 나지만 항동 지역 유명 카페 푸핀테라스에서 푸핀도이로 걸어가는 길에 만난 보스몹 같은 두 마리 개들에게는 항복하고 말았다. 등을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는 말이다.


여기까지 구구절절 늘어놓은 경험담들도 아마존에 사는 원주민들이 듣는다면 웃겨죽겠다고 면박을 제대로 줄 것이 틀림없다. 가끔 고대의 란나 왕국(1292~1774년까지의 태국 북동부 지역 왕국.)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이 무시무시한 열대의 자연을 아무 무기없이 맨 몸으로 헤치며 살아갔는지 궁금해진다.



나는 오늘도 플랜테리어로 상큼하게 꾸며진 카페에 앉아 잘 가꿔진 색색깔의 꽃들과 윤기나는 관엽식물들을 바라보며 초록색 피를 수혈받는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인간과 자연의 조화도 시대 흐름에 맞게 변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무시무시한 자연의 이면에 노출되지 않고 안전과 위생을 보장받으면서 자연과 공존할 수 있다는 것, 어디까지나 도시인인 나에게는 참 좋은 방안이라는 생각이 든다.



초록색이 좋다고 아마존으로 갈 수는 없잖아요.



내 몸 가득 부족한 비타민D와 초록색을 채우기에는 도시와 자연이 적절히 공존하는 치앙마이가 제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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