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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아 Feb 27. 2019

힙스터의 도시 치앙마이

치앙마이는 말 그대로 ‘힙’하기 그지 없다. 서울의 트렌디하다는 것들도 치앙마이에 가져오면 어쩐지 애매모호한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요즘의 젊은 층이 힙하다고 느끼는 것들은 아무래도 다듬어지지 않은 러프한 느낌, 그 장소나 물건만이 낼 수 있는 자연스러움이 대세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치앙마이는 낡고 오래된 것들과 푸릇푸릇한 자연환경, 섬세하고 감각적인 플레이팅이나 데코가 한데 어우러져 ‘힙’한 감성이 충만하다.

무심한 듯 자연스레 툭 늘어진 식물 덩굴이며 패션프루트, 아보카도, 각종 허브류나 식용꽃 등의 시각을 사로잡는 식재료, 치앙마이 등지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우드 및 라탄 식기 또는 제품들까지.

지금 모습을 가만 보면 세상의 모든 ‘힙’ 이 치앙마이에 다 모인 것 같다. 간혹 사람들이 “치앙마이는 수도도 아닌데 너무 낙후된 것 아니야?” 라고 묻는다. 낙후되었다면 되었을 수도 있고, 첨단이라면 첨단일 수도 있다. 두 모습이 공존하는 것이 진정한 치앙마이의 ‘힙’ 한 모습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스타일링과 인테리어에 굉장히 예민하고 까다로운 나에게 치앙마이의 여느 카페나 레스토랑이 서울보다 더 트렌디하고 감각적이라고 느껴질 때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늦은 기상, 따뜻한 차, 아침 수영, 느즈막한 아점, 예쁘고 따스한 카페, 그리고 언제나 함께하는 여유로움, 이 모든 것이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것들이다.

눈길을 사로잡는 예쁘고 감각적인 가게들 뿐만 아니라 길거리에서 플라스틱 의자를 늘어놓고 앉아 먹어야하는 좌판대 국수집이나 투박한 하얀색 플라스틱 접시에 할머니가 해 준 반찬처럼 무심하게 나오는 로컬 음식점 역시 치앙마이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성이 가득해 ‘힙’ 그 자체다.

어떤 것 하나 ‘촌스럽고 구질구질하다’ 라고 구박하지 않고 ‘그러려니’ 하며 공존할 수 있는 그 여유와 무심함이 참 부럽다. 웨스턴 스타일 식당이나 브런치 카페에도 늘 타이음식이 메뉴로 끼어있는 것도 그 일환이다. 그래서 치앙마이 메뉴판은 항상 쪽수가 많다. 물론 치앙마이도 요즘 워낙 외국인 유입이 늘어난지라 인스타 팔로우를 늘리기 위한 비슷비슷한 가게나 자본의 냄새가 물씬나는 가게들도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그래도 어쩐지 그런 것들에 밀려 원래의 것들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는 이상한 믿음이 있는 곳이 또 치앙마이다.

 치앙마이에 와서 내가 느낀 진짜 ‘힙’ 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여유다. 다 똑같아지는 분위기, 컨셉, 이야기, 삶, 정말 매력이 없다. 치앙마이에는 오늘은 이렇게, 내일은 저렇게, 모레는 다시 또 이렇게 선택할 선택지가 참 많다. 그런 생기와 활력이 매일매일이 다른 치앙마이 두 달 살이를 완성해준다. 그렇다고 치앙마이는 나와 다른 무언가를 꼭 이해하고 포용하려고 참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그냥 있는 그대로, 나와 다르면 다른 그대로 신경쓰지 않고, 힘들이지 않고 고양이처럼 지나간다. 어쩌면 치앙마이 사람들은 마인드 자체도 힙한 것 아닐까.

치앙마이에는 외국인이 워낙 많다보니 님만해민이나 올드시티같이 관광지화된 지역에서 일하는 상인들은 웬만하면 기본적인 영어에 능숙한 편이다. 계속 지켜본 결과 치앙마이 사람들은 영어로 문법이 틀리거나 잘못 알아듣고 엉뚱한 대답을 해도 전혀 개의치 않고 신나게 이야기만 잘한다. 그런 모습도 어쩐지 속시원하고 재치있다. 치앙마이에 계속 살다보면 원어민 같은 영어실력은 아니지만 적어도 주눅들지 않는 영어회화는 가능해질 것 같다. 그들의 그런 태도가 상대인 나까지 당당하게 만들어버린다. 언제부턴가 나도 필터링되지 않고 뇌에서 막 나오는 대로 주문하거나 질문하기 시작했다. 헛소리를 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것은 덤이다.


요즘의 가장 힙한 도시 치앙마이에서 지내다보니 이 곳에서 나고 자라는 아이들은 유행의 선두에 서는 힙스터로 자라는 것은 아닐까 내심 궁금해지기도 한다. 자라면서 다양한 인종을 매일같이 보고 영어를 포함한 다양한 언어를 들으면서 한 집 건너 한 집 나오는 힙한 가게들을 지나다니자니 웬만한 곳에 가서는 ‘이 나라 감각있네’ 하는 맘이 안들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대한민국 서울에서 온 나의 생각일 뿐. 이들에게는 매일같이 보고 듣는 것이 아닌 또 다른 생경함과 생소함이 새로운 니즈일지도 모르겠다.


다른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한국에서 카페투어와 인증샷 찍기를 즐기는 젊은이들이라면 분명 치앙마이는 힙하고 트렌디한 도시일 것이다. 사실 내 경우 평소에 ‘sns 인증용 감성’ 을 한껏 뽐내며 날림으로 지어진 가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잠깐 사진찍고 즐기기엔 좋을지 모르지만 굳이 두 번 가고 싶지 않은 맘이 들 때도 많고, 무엇보다 음식이나 음료의 퀄리티에 실망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사진으로 봤을 때는 그럴 듯 해 보였던 인테리어도 막상 현장에서 보면 부실하고 허술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치앙마이에도 그런 곳이 아예 없다고는 못하지만 적어도 우후죽순이라는 느낌은 없다. 요즘 ‘힙하다’ 는 말을 너도나도 쓰기 때문에 아무데나 ‘힙’ 을 가져다 쓰는 경우가 많은데 내가 생각하는 ‘힙’ 은 확실히 치앙마이 같이 자기 색깔을 가진 도시에게 어울린다. 겹치고 겹쳐 시간이 지나도 마르지 않는 유화 같은 도시.

부처님 힙함이 이 세상 힙함이 아니다.


시각적인 즐거움과 쾌적함과 자연스러움이 함께 따라다닌다는 것은 아무 도시에서나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그 어느 곳보다 치앙마이에서 느끼는 감정이 풍요롭고 다채롭다. 오랫동안 잊혀졌던 다양한 감각 세포가 깨어나 반응하는 느낌. 서울이라는 곳에서 억눌리고 지워졌던 감각들이 이 곳에 오니 ‘나 사실 여기 있었어.’ 라며 생존 신고를 한다. 그렇구나. 완전히 거세된 것은 아니였어. 하지만 언젠가 치앙마이 거리 곳곳이 거대자본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프랜차이즈들로 가득 채워진다면 그에게 하사한 ‘힙스터의 도시’ 라는 애칭을 슬며시 거둬야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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