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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 Jun 20. 2021

어른들은 서로 사랑하라


한때 즐겨봤었던 고등래퍼란 프로그램의 영상 클립들을 복습했다. 본방 당시에는 이 사람들이 굉장히 큰 어른처럼 느껴졌었는데, 어느새 티비에선 내 또래가 출연하는 시즌을 내보내고 있다.


한때 꿈을 향해 달려가는 그들을 보고 가슴이 벅찼었다. 나도 저런 삶을 살겠지! 자신감이 가득 했던 때에 그렇게 생각했었고, 요즘도 종종 기분 좋은 날이면 그를 꿈꾸곤 한다.


그러나 이번엔 다른 종류의 감정이었다. 특별한 사람이 되고싶은데, 나도 특별한 길을 걸어야하나? 나, 너무 남들처럼 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러나 그런 삶을 내가 살 수나 있을까? 회의와 침울의 마음이었다. 아마 현재 내 진로의 윤곽이 서서히 잡혀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한다. 티비 속 그들과 나는 같은 y축 좌표를 공유하지만, x축의 방향으론 아득히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어떤 어른으로 커야할지 정말로 모르겠다.



베이컨은 4가지 우상을 경계할 것을 명했다. 종족의 우상, 시장의 우상, 동굴의 우상, 극장의 우상. 학교는 같은 종족의 아이끼리 모아놓은 동굴이자 극장이자 시장이다. 나도 모르게 이 무리 속에서, 국가가 지정한 목표를 향해 맹목적으로 달음박치게 된다. 그 경로상 다른 가치들은 목격되지도 못한 채 무참히 짓밟힐 뿐이다. 친구들과 웃고 떠들다 어느새 전국 대학들을 줄지어 서열짓는 내 모습을 발견하곤 하고, 혐오 표현을 곁들인 우스개소리에 가만히 웃음을 짓는 나를 발견하는 때가 있다.



"아이의 순수함"이란 말도 퀴퀴한 옛 이야기 같다. 동심과 이상에 충만하지 못할지언정, 조금만 성평등 지향적인 이야기를 하면 "너 페미야?"하며 그게 나쁜 것이나 되는 것 처럼 날아오는 떨떠름한 질문들, 욕 없이는 완결되지 못하는 미성숙한 문장들, 약자를 멸시하는 호탕한 웃음들. 다 너무 싫증난다. 누가 학교를 이렇게 만들었나. 무엇이 아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나.


아이들은 아닐 것 같으면서 어른들이 하는 것을 여과없이 잘 따라하기 마련이다. 신문 기사나 책에서 주워섬긴 어른들의 말을 잘 받들고, 유튜브나 sns의 악의적인 연설에 홀라당 넘어가곤 한다. 최소한 나 자신과 내가 봐온 또래 아이들은 그렇다. 이런 의미에서 아이들은 순수하다. 아이들에겐 죄가 없다.



14살인가에 어떤 카페에 가입했었다. 한문과 관련해서 정보 공유하고, 친목을 도모하는 카페인데, 아무래도 카테고리가 한문인지라 카페의 멤버는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가운데 14살 소년이 한문에 관심이 있다고 기웃거리는 게 그들 보기에 어찌나 기특하였을까. 회원님들의 사랑에 힘입어 한떄 열심히 활동을 했었다. 그러다 어느새 발길이 뜸해졌었고, 그것이 오늘날 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며칠 전, 갑자기 생각이 나 오랜만에 들어가 글을 올려보았다. 좋아하는 송대의 사작가 이청조의 작품에 대한 글이었다. 다들 한문에 거의 통달하신 분이라 내까짓게 뭘 공유한다는 게 주제넘은 일일 수 있지만, 생각이 복잡해지기 전에 그냥 올려버렸다.


얼마 되지 않아 댓글이 달렸다. 오랜만이라고, 잘 읽었다는 내용이었다. 이 간단한 두마디가 얼마나 따뜻하게 다가왔다.


따뜻한 말 한마디는 굉장히 간단하다. 이런 간단한 행동에 아이는 크게 감복한다. 안타깝게도 많은 어른들이 이 간단한 것을 못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평등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고작 광고속 손가락 모양 하나로 난리 굿을 벌이는 행태가 지긋지긋하다. 너네도 그랬잖아!는 어줍잖은 말을 근거로 아주 볼만한 푸닥거리가 펼쳐진다.


이제는 싫어하지만 한때 즐겨 봤던 작가 김진명이 쓴 고구려라는 소설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군사 강국 고구려답지 않게 자존심을 굽히면서도 전쟁을 피하고, 침략을 당해도 방어 이외의 앙갚음은 하지 않는 고국원왕을 개탄하는 황후에게, 태자(훗날의 소수림왕) 구부가 하는 비유인데, 예컨대 형벌 중에 서로의 뺨을 번갈아가며 치게 하는 형벌이 있다고 한다. 이 형벌은 제가 때릴 차례 때 때리지 않으면 집행이 종료된다. 이 형벌이 무시무시한 데는 사람들이 항상 때리고 끝내려고 한다는 것이다. 제 차례 때 때리지 않고 끝내는 법이 없다. 그러나 고국원왕은 맞고 끝내려 한다.


이제껏 때려패던 대상이 참다못해 방망이를 한 번 들었소이니, 제발 홍두깨로 앙갚음 할 생각일랑 말고 -한 대 맞았으니-평화로이 끝냈으면 한다.



제발 사랑했으면 한다. 맹모삼천의 헌신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다들 멋진 어른이 되어 행동 하나하나에 유념했으면 하고, 세속적 가치에 경도되어 사랑을 저버리지 않았으면 한다. 노래 가사처럼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건 오직 사랑 뿐"이라도 좋다. 사랑을 보여주고 아이들을 감복시켜 주었음 한다.



어린시절 라즈니쉬-라즈니쉬만의 말은 아닐테고, 또 라즈니쉬의 책이 맞는지도 확실치 않지만-의 책에서 이런 문장을 보았다. "노인의 지혜와 아이의 순수함을 두루 갖추어야 한다." 지혜와 순수함, 노인과 아이. 문득 생각난 문장에서 이런 단어들을 여러번 뇌까려 본다. 그리고 다짐해본다.



나는 폭닥하고 따뜻한 대용량의 어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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