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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 Oct 27. 2021

노후도시에서 청소년을 산다는 건


복잡한 일이다. 정확히는 복잡한 기분이 드는 일이다.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한다. 과거의 추억이 담긴 물건, 손에 쥐기만 해도 머리 속에 누군가의 모습이 그려지는 물건, 그 자체만으로도 나를 나타내 줄 수 있는 물건… 여러 가지 꼬리표를 애써 달아 주며 잡동사니를 꾸역꾸역 모으는 사람이다 내가. 심지어는 몽당연필, 플라스틱 병뚜껑(이건 환경적인 이유에서지만), 차를 마신 후 남은 엽저(葉底)마저 말려 봉투에 모으는 지겨운 인간이다. 버려지고, 잊히고, 바스러져 가는 것을 편히 지켜볼 단단한 인간이 못 되는 때문이다.

사회 시간에 도시화에 대한 내용을 배웠다. 도시의 인구가 근교로 빠져나가는 교외화 현상을 배우며, 부산의 예시를 드셨는데, 부산엔 젊은 사람이 없다고, 일자리도 없다고, 우리가 설 자리도 없다고, 등등 요약하자면 생기를 잃었다는 얘기였다. 한국 제2 대도시가 부산이람서, 그렇게 초라해도 되는 거야?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 부산은 이제 노후도시가 되었지. 서울이야 계속해서 팔방면으로 뻗어나가고, 신선함이 창출되는, 평생 젊기만 한 도시로 남겠지. 고고한 역사와 경력은 갖고서. 그런데 부산은

부산 또한 매일마다 무언가가 많이씩 바뀌곤 한다. 하루도 거르지 않으며 건물을 쌓아 올리고, 또 무너뜨리고, 마구 개발하고, 또 마구 갈아엎어버리고… 그렇지만 이런 바쁜 변화가 생기를 돋워주기는커녕, 뭐랄까 죽지 못해 기어이 사는 듯 너절할 뿐이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자꾸만 빈자리를 자투리 누더기로 기우고, 천천히 바스러져가는 것을 두고 보지 못해 산산이 부서뜨리고, 쉬지 않고 갖은 효모들을 밀어 넣으며 진행을 촉진시키려 든다.

매일매일 바스러져가는 것을 팽개쳐두고 앞으로, 앞으로만 황망히 뛰어가는 우리네 고장을 보고 있자면 마음 한편이 먹먹해진다. 왕왕 지겨운 부산에서 뛰쳐나와 서울로, 혹은 해외의 삐까번쩍한 도시로 도피하고픈 마음이 들지만, 바스러져가는 것들을 뒤에 두고 어떻게 혼자서 어딘가로 떠날 수 있을지 머뭇거려진다. 이것도 내가 단단하지 못한 탓이겠지. 그치만

바다-라는 건 결국, 떠나간, 그러니까 쓸려간 모든 파도들 하나하나가 모여서 이루어진 거라 한다. ‘낯선 무화과’라는, 좋아하는 밴드의 인터뷰에서 본 말인데, 꽤나 감동적인 말이었다.

나는 이제 모든 버려지는 것들에 애정 어린 시선을 건네고, 잊혀져 가는 것들을 애써 붙잡아 기억하려 들고, 바스러져 가는 것들을 함께 추모하며 살아야겠다는 마음이다. 쓸려간 파도가 바다를 이루듯, 물러서는 것들을 애도하고 기억하는 마음이 우리들을 띄워 놓을 수 없게 튼튼히 결속시킨다.


물렁한 사람이 되어도 괜찮겠다는 마음이다. 그렇게 모든 것을 잃지 않으려고, 내놓지 않으려고 집착하는 기벽(奇癖)을 애써 고치지 않겠다는 마음이다. 그저 따뜻한 것들을 죄다 품을 수 있을 만큼 넓은 마음을 가져야겠다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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