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비행을 여행처럼 : 파리(Paris)
‘프랑스-파리’라는 장소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것은 의외로 많다. 파리의 대표적인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에펠탑과 루브르 박물관, 황홀한 해질녘 뷰포인트로 알려진 몽마르트르 , 미슐랭 가이드를 처음 발간한 나라답게 맛있는 음식 그리고 다양한 품종의 포도로 만든 와인. 이쯤 되면 프랑스어나 샹송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무식자라 할지라도 한 번쯤 ‘오~샹젤리제’ 라는 구절이라도 흥얼거리며 걷게 되기 마련일 것이다. 앞서 나열한 사실만 본다 하더라도 ‘로맨틱한 도시’ 하면 빼놓지 않고 순위에 오르는 이유로는 충분하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로맨틱=파리’라는 이미지는 단순히 몇 편의 영화나 마케팅에 의해 만들어진 분위기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 뒷받침하는 근거로는 고갱, 앙리, 모네, 피카소, 헤밍웨이 등 지금은 ‘세계적인 거장’이라 불리는 이들이 한 때는 이 거리를 걸었으며, 이 도시의 아름다움에 취해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겠다. 혹시 이 글을 보고 있는 독자들 중에 파리 여행을 늘 갈망하고 있거나 달콤한 여행을 회상하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미드나잇 인 파리’라는 영화를 강력하게 추천해 본다.
여기서 잠시 곁가지로 비행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유럽의 허브공항이라고 불리는 두바이에 위치한 우리 항공사 덕분에 유럽 비행의 수는 꽤 많은 편이다. 파리의 경우, 하루에 3편이 파리와 두바이를 오간다. 이 말인 즉, 내가 파리에 갈 기회 또한 매우 많다는 이야기이다. 그날의 날씨와 기념일에 따른 각종 불빛 이벤트 덕에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것이 에펠탑이라지만 가끔은 뭔가 색다른 경험을 해보고 싶은 게 사실이다. 그래서 오늘 하루는 앞서 소개한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인 Owen Willson (극 중 Gill 역)이 되어보기로 한다. 바로 파리의 밤길을 만끽하는 일. 영화 속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장소는 술집, 카바레.
카바레는 1880년대 프랑스에서 관객들이 무대를 중심으로 모여 앉을 수 있도록 한 작은 술집에서 유래되었으며 이곳에서 벌어지는 쇼를 카바레 쇼라고 하였다. 이 중 오늘날 프랑스 카바레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물랭루주는 프랜치 캉캉 춤이 최초로 공연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80-90년대 ‘제비’라고 불리는 청년들이 춤사위와 멋을 음탕하게 뽐내던 불륜의 장소로 알려진 왜곡된 ‘카바레’ 이미지와는 조금은 다른 셈이다. 흔한 술집 하지만 기라성 같은 예술가들이 매일 밤을 모여 술을 마시며 현실과 이상의 부딪힘에 대한 고뇌를 하던 장소, 그 괴리감을 잊어버리기 위해 이성을 잃어버리기도 했던 장소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예술적·역사적으로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장소답게 파리의 카바레는 여전히 존재한다. 파리의 대표적인 4대 카바레로는 영화 '물랑루즈’ 와 노래 ‘Pink lady marmalade'로 이름이 더 알려진 ‘화가 앙리가 머물다 간 카바레 Moulin Rouge 물랭루주’ , 에펠탑을 건립한 구스타브 에펠에 의해 재탄생한 걸로 알려져 내부 구조에 대해 많은 이들의 기대감을 일으키는 ‘Paradis Latin 파라디 라탱’, 라스베이거스에서도 카피했을 정도로 구성력 있는 'Lido 리도쇼’ 그리고 파격적인 누드쇼로 유명한 ‘Crazy Horse 크레이지 호스’가 있다. 80년대의 카바레에 비하면 훨씬 화려하며 공연적인 성격을 많이 갖추게 되었지만 깊은 밤의 고혹적인 파리의 면모를 느끼기엔 충분하다.
이 중 내가 관람한 것은 에펠 구스타스에 의해 리모델링되었다는 ‘파라디 라탱 쇼’. 티켓에 따라 Pick-up/drop-off가 포함되어있는 패키지가 있으며 공연장에 들어가면 웨이터가 자리를 안내하고 샴페인을 놓아준다. 표를 구매하는 경로에 따라 변수가 있을 수 있지만 보통의 경우, 2시간가량의 공연을 보는 동안 반 병의 샴페인이 주어진다. 물론 조금의 돈을 더 지불하면 한 시간 정도 일찍 들어가 식사도 하며 공연을 볼 수도 있다. ‘파라디 라탱’의 경우 맛있는 식사로 유명해 되려 식사를 하러 가는 김에 쇼를 보러 가는 사람이 있을 정도라고 하니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은 2시간 정도 일찍 가서 식사를 하는 것도 좋겠다. 내부는 2층으로 되어있으며 붉은색과 흰색 계열의 화려한 조명이 앙상블을 이루고 있었다. 가장 호기심을 일으키는 파트인 내부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겠다. 직접 가서 구스타브 에펠의 손길을 느껴보길 바란다.
공연 내용은 장르가 생각보다 다양했다. 팝, 샹송, 댄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하다고 빨간 펜으로 꾹 눌러 표시해야 할 부분은 당신이 무엇을 기대했던 그 이상의 ‘매혹적인 판타지’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가죽부츠와 가터벨트만을 걸치고 오토바이를 타는 여성, 머리가 젖은 채로 가운만 두르고 나온 글래머 여성, 에로 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농장에서 일하는 농부의 탄탄한 근육질 몸매. 벌써 몇 가지 장면의 간략한 설명만으로도 떨리는 심장과 벌어져 다물어지지 않는 입은 벌써 당신이 본능적으로 동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몇 가지 예일 것이다. 걸치고 있는 것을 세는 것이 빠를 정도로 시원하게 입고 나오는 배우들 덕에 눈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모를 수 있으므로 선글라스를 챙겨가는 것도 심장 폭격에 대비하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겠다. 하지만 공연에 빠져들수록 적나라하게 보이는 배우들의 몸이나 신체의 특징보다는 공연 구성을 보게 되므로 너무 염려는 하지 말자. 공연의 마지막은 모든 배우들이 나와 펼치는 합동 공연 및 이 쇼의 하이라이트인 캉캉 공연이 장식한다. 쇼의 끝을 알리는 ‘펑’하는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흩뿌려지는 종이꽃가루 또한 놓쳐서는 안 될 순간이다. 공연 내내 부득이하게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있지만, 이 순간만큼은 카메라에 담을 수 있으니 미리 준비했다가 셔터를 눌러보자.
이 공연에서 나름 공연 호응 유도 등 비중 있는 역할을 맡고 있는 웨이터인 ‘Agunes 아그네스’는 이렇게 말한다. A : “이 공연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공연일 것이다. 그 이유는 카바레라는 것이 이곳으로부터 시작했기 때문이다. 파리의 카바레만이 가지는 분위기가 있다. 그것은 어느 나라에서도 따라 하기 힘든 것이다.”
완강하고도 다부진 말투로 내뱉는 공연에 대한 아그네스의 이야기로부터, 한 때는 흔한 펍 안에서의 유희 거리가 장소의 보전뿐만이 아닌 공연 정신까지도 이어져 내려올 수 있었던 이유는 어쩌면 현재 공연을 하고 있는 이들의 쇼에 대한 강한 자부심이 원동력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공연이 끝난 후, 마치 신데렐라가 호박마차를 타고 돌아가듯 일상으로 되돌아가는 길. 에펠탑 사이로 가녀린 핑크빛 벚꽃들이 흩날릴 것만 같은 파리에 대한 이미지로부터 완벽한 일탈을 한 기분이었다. 만약 혹시 글을 읽는 당신 또한 아직 여리고 낭만적인 파리의 이면만을 이미지로 가지고 있는가? 그렇다면 오늘 그런 당신에게 매혹적이고 파격적인 ‘파리의 밤’으로 가는 초대장을 띄워본다.
* 공연 장소 및 관람 관련 홈페이지
- 물랭루주 : www.moulinrouge.fr
- 파라디라탱 : www.paradislatin.com
- 리도 : www.lido.fr
- 크레이지호스 : www.lecrazyhorseparis.com
- 한국 여행·액티비티 사이트 : www.okthere.com, www.socuripass.com
* Jennifer.S의 꿀팁!!
화려한 공연보다 파리의 7080 감성이 물씬 담긴 카바레를 선호하는 이들이라면 Tv 프로그램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서도 소개된 적 있는 작은 펍 같은 느낌의 ‘Au lapin agile 라팽 아질’을 가보길 추천한다. 분위기만큼은 100% 보장. 대신 처음부터 끝까지 프랑스어로만 진행된다는 사실. 어떤 곳에서 파리의 어떤 모습을 경험할지에 관한 선택은 늘 당신의 몫!
* 2019.03.14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