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키트의 장점과 장점 (2)
그런 날이 있다. 평소에는 엄두가 나지 않아서 혹은 귀찮아서 등등 온갖 이유를 대며 하지 않던 일이 갑자기 해볼 만한 일처럼 느껴지는 날 말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밀키트 배달 업체인 부뚜막의 메뉴를 보며 스크롤을 천천히 내리고 있었는데 먹음직한 사진과 함께 LA 갈비 메뉴가 눈에 들어왔다. 흰쌀밥에 크게 자른 갈비 한 조각을 올려먹으면 얼마나 맛있던가. 그러던 중 생각은 갑자기 360도 방향을 틀어 이걸 집에서 해 먹으면 더 푸짐하게 먹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제법 이성적이고도 합리적인 판단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다 결국 LA 갈비 한번 만들어봐?라는 조금 용감한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런 메뉴가 있다. 재료 자체의 가격이 나가서 기본적으로 메뉴의 가격대가 높고 양이 적은 메뉴 말이다. 호주는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소고기 가격이 저렴해서 LA 갈비는 사 먹기도, 만들어 먹기도 부담이 덜한 메뉴다. 간편하게 사 먹어도 되지만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만드는 과정이 어렵지 않다고 해서 선뜻 도전해 볼 용기가 생겼고 마침 몇 달 전, 처음으로 갈비찜을 만들어봤는데 손질 과정이나 조리 과정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인생 첫 갈비찜을 만들고 나서 나는 친구들에게 얼마나 큰 존경을 받았던가. 그 짜릿함을 기억해 보니 이때가 LA갈비를 만들기에 더없이 좋은 타이밍처럼 느껴졌다.
LA갈비를 향한 대모험은 장보기부터 시작되었다. 일인가구로 살기 시작하고 본격적으로 요리를 하며 깨닫게 된 건 요리는 주방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라 장보기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이었다. 사야 할 품목들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적고 그걸 알맞은 장소에 가서 사 오는 건 생각보다 시간과 품이 드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날은 일요일 아침부터 부지런히 한국식 정육점이 있는 한인 타운으로 향했다. 약 한 시간을 걸려 도착한 그곳에서 LA 갈비용 고기 700그램과 국거리, 삼겹살, 그리고 항정살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소갈비용 시판 양념을 사용하면 생각보다 준비할 재료가 많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한쪽에선 모니터에 레시피를 띄워놓은 채 느릿느릿 엘에이 갈비 만들기에 착수했다. 갈비찜과 마찬가지로 갈비를 손질하고 핏물을 빼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만드는 법은 비교적 간단한 편이었다. 집요리의 장점은 당도를 포함해 내 입맛에 맞게 맛 조절이 가능하다는 점 아닐까. 좋아하는 건 많이, 빼고 싶은 건 과감하게 생략. 그리하여 내 입맛에 맞는 인생 첫 엘에이 갈비가 완성되었고 맛도 성공적이었다. 그 주에는 퇴근 후 집에 와서 지글지글 갈비를 구워 먹으며 행복한 한 주를 보낼 수 있었다.
밀키트가 가진 의외의 장점은 바로 이렇게 자꾸 요리를 해보고 싶게 만든다는 점이었다. 밀키트의 장점과 장점(1)에서 말한 것처럼 밀키트는 분명 요리의 많은 부분을 생략하게 해 주지만 결국 반조리 상태로 도착하기 때문에 반드시 볶거나 끓여야만 하고 특히 패키지를 뜯어 소분하고 분리수거를 하는 건 생각보다 번거로운 일이었다. 그래서 이럴 바에는 차라리 한번 만들어 볼까?라고 어떤 결심을 하게 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조금 하는 것(=밀키트)과 전부 하는 것(=요리)은 오히려 비슷했지만 조금 하는 것과 아예 안 하는 것(=외식)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큰 강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올 한 해 동안 갈비찜과 LA 갈비를 시작으로 해물 파전, 연어 솥밥 등의 요리를 처음으로 만들어봤다. 직접 해보고 나니 어떤 요리는 직접 해 먹는 게 훨씬 맛있고 저렴한 경우도 있었고 이럴 바에는 그냥 간편하게 밀키트를 주문하는 게 낫겠다고 깨닫게 된 메뉴도 있었다. 특히 해산물이나 소고기의 경우, 좋은 재료를 사다가 신선한 상태일 때 바로 요리하기만 해도 일단 가산점 100점은 먹고 들어간다는 비밀 레시피를 알게 되었다.
일인가구의 행복은 요리와, 밀키트, 그리고 외식의 적절한 조화에서 오는 게 아닐까. 요리를 너무 열심히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에너지가 고갈되고, 퇴근 후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은 날은 아무것도 묻고 따지지 말고 무조건 외식을 하는 게 정답이다. 그리고 그 편한 외식도 매일 하다 보면 거짓말처럼 물리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러니 더 이상 부지런히 집밥을 해 먹지 못하는 것에 대해 어떤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한다. 이번 주에는 어떤 밀키트를 주문해 볼까 고민하다 보면 이따금씩 그중 시도해보고 싶은 메뉴가 나타날 테고 그러다 보면 내 요리 실력도 차츰차츰 분명히 나아져 있을 테니까. 천천히 나만의 속도로 꾸준히 나아가는 것. 이제는 그거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 〰️ 밀키트의 장점과 장점 1탄은 이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