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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nald Dec 31. 2023

올해의 OOO

2023 연말결산

1. 올해의 영화 : <파벨만스>, 스티븐 스필버그 /  <애프터썬>, 샬롯 웰스 / <거미집>, 김지운


올해는 총 30편의 영화를 관람했고 그중 21편의 영화를 극장에서 만났다. 한 배우의 필모를 따라가다 보니 영화관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이 제한적이었고 그래서 OTT 서비스를 코로나 때보다도 적극적으로 이용한 한 해였다. 하지만 집에서 영화를 볼 때면 자꾸만 산만해지는 스스로를 보며 극장이 가진 최대 장점은 아무 때나 누를 수 있는 멈춤, 되감기 버튼의 부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아깝게 개봉시기를 놓쳤거나 이곳에서 개봉을 하는 않는 한국 영화들은 앞으로도 스트리밍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이용해 볼 생각이다.


파벨만스 : 코로나 이후 올해는 유독 자전적 영화가 많았는데 그중 스필버그의 파벨만스는 손에 꼽을 정도로 좋았다. 찬란한 재능이 막 싹을 틔우던 어린 시절을 보는 것도 좋았지만 후반부에 증오할 수도 있는 한 대상을 철저히 제작자의 입장에서, 우주 최고의 주인공으로 변모시키는 모습을 보며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극장에서 못 본 게 아쉽지만 올해가 가기 전에 이 작품을 만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애프터썬 : 올해 본 영화 중 잔상과 여운이 가장 진하게 오랫동안 남았던 영화. 영화에서 캘럼의 뒷모습이 비춰지고 그가 혼자 우는 장면이 있는데 그걸 보는 순간 가슴이 내려앉았다. 영화를 관람하고 나서 영화 삽입곡이기도 한 Blur의 Tender를 한동안 반복해서 들었는데 노래 한 곡만으로도 영화의 장면과 그 시대의 정서, 풍경들을 파도처럼 밀려오게 한다는 건 역시 조금 대단한 일 아닐까.


거미집 : 이곳에서 영화제를 통해 운 좋게 만날 수 있었던 거미집은 올해 가장 많이 웃으며 봤던 영화다. 코로나 기간을 지나는 동안 감독 스스로가 '영화는 내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탄생한 영화였는데 상영 후 감독과의 대화를 통해 영화의 배경이 된 70년대의 시대적 분위기와 풍경을 엿듣고 좋아하는 배우들을 한 화면에서 만날 수 있어 그저 즐기는 마음으로 봤던 영화였다.



2. 올해의 책 : 『인생의 역사』, 신형철 / 『어떤 물질의 사랑』, 천선란 / 『고요한 포옹』, 박연준

올해는 총 28권의 책을 완독 하였고 특히 한국 작가의 비중이 큰 해였다. 이북리더 생활 2년 차에 접어들며 발견한 이북의 장점은 종이책처럼 책 귀퉁이를 접거나 밑줄을 그을 필요 없이 좋았던 문장에 아낌없이 형관펜을 긋고 그것을 손쉽게 다시 들춰보고 한 페이지에 모아볼 수 있다는 점이다. 얼마 전에도 '종이책으로 읽을 때의 독해력이 디지털 기기로  읽을 때보다 낫다'라는 기사를 보았지만 이제 이북의 편리성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 어떤 사실은 적당히 흐린 눈을 뜨고 못 본 척하기로 한다. 내년에는 독서 편식을 줄이고 새로운 작가들을 많이 만나보고 싶다.



3. 올해의 팟캐스트 : [금개의 시도], [일기떨기]

올해도 출퇴근길, 점심시간, 주말 오전에 아침을 먹으며 혹은 저녁에 요리를 하며 좋아하는 팟캐스트를 열렬히 청취하였다. [필름클럽]과 [영노자]를 비롯해 5년 이상 청취해 온 팟캐스트가 대부분인데 올해는 운 좋게 구독을 시작한 팟캐스트가 두 개나 생겨서 혼자 내적 환호성을 질렀다.


금개의 시도는 게스트 때문에 청취했다가 구독을 시작한 케이스고 반대로 일기떨기는 진행을 하는 소설가 때문에 들었다가 요즘 거의 매일매일 에피소드를 부지런히 정주행 하고 있다. 영상을 시청하는 것보다 팟캐스트를 듣는 시간이 더 길다 보니 좋아하는 팟캐들이 계속되길 바라며 연말에는 [영노자]와 [비혼세]에 후원을 하기도 했다. (참고로 일기떨기는 다른 팟캐와 달리 팟빵에서만 청취가 가능하다.)



4. 올해의 드라마 : [브러쉬 업 라이프]

정말 오랜만에 본 일드였는데 재미와 감동, 그리고 90년대 추억팔이까지 해주는 종합 선물세트 같은 드라마였다. 어떻게 하면 아는 이야기가 매번 다른 디테일로 재밌을 수 있는지 그리고 같은 스토리지만 매회차 다른 인생을 사는 주인공과 그의 탁월한 연기 때문에 가끔은 다른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브러쉬 업 라이프가 얼마나 흥미로운 드라마인지는 따로 길게 리뷰를 남기기도 했으니 이쪽을 참고해 주세요. TMI를 덧붙이자면 저는 드라마 PD버전의 안도 사쿠라를 가장 좋아합니다.



5. 올해의 프로그램 : 지구오락실, 스트릿 우먼 파이터 시즌1

지락실은 [이걸 왜 이제 봤을까] 부문, 그리고 스우파1은 [늦은 입덕은 한 사람을 얼마나 멀리까지 데려가는가] 부문에서 수상을 하였다. 2년 만에 돌아온 스우파 때문에 매주 화요일 본방을 기다렸는데 기다리다 지쳐 스우파1을 다시 보기 시작했고 그렇게 한 댄서에게 입덕. 덕질은 뭐니 뭐니 해도 제철덕질이 최고라지만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간 걸 뒤늦게 좋아하면 그만큼 주워 먹을 떡밥도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6. 올해의 여행 : 도쿄

서울과 시드니 외에 마음 편히 여행할 수 있는 도시가 있고 그곳에 아는 맛이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위안인지. 얼마나 마음 편하게 갔냐면 공항에 도착하고 나서야 공항에서 숙소로 가는 길을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부랴부랴 검색을 했고 3일짜리 메트로 패스를 구입하여 무사히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3박 4일 여행 내내 시간이 부족한 느낌이었는데 그만큼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풍성한 곳이 도쿄라서 그런 거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즐거웠습니다. 그럼 다음 기회에 또-



7. 올해의 디저트 : Lavie & Belle

친구를 통해 알게 된 동네 프랑스 베이커리를 참새방앗간처럼 자주 드나들었고 이곳의 밀푀유 덕분에 행복한 한 해를 보낼 수 있었다. 밀푀유는 자르다 보면 항상 엉망이 되어 버리지만 겹겹이 쌓인 밀푀유가 ‘바삭’하고 쪼개질 때의 사운드를 참 좋아한다. 크리스마스 한정으로 나왔던 초콜릿 로그도 만족스러웠고 가을 즈음에 몽블랑만 내주신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8. 올해의 랜선 털친구들 : 범이, 아보, 민지, 또또

탐라에 사진이 뜨면 나도 모르게 홀린 듯 하트를 누르게 만들었던 털친구들을 소개합니다〰️



9. 올해의 말 : ‘좋아하는 것들로 곁을 더 채워야지’

아마 책장을 채우며 했던 말 같은데 책뿐만 아니라 주방용품, 생활용품 등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들인 한 해였다. 적당한 걸 구매하기보다는 필요하고 마음에 드는 것들을 신중히 구입했고 그렇게 나만의 공간을 채우니 실내 생활의 만족도도 더 높아졌다.


특히 한국에서 선편으로 받은 13kg의 박스에는 그릇과 면기, 냄비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걸 부지런히 사용하며 예전보다 조금 더 잘 차려먹게 되었다. 그러니까 라면은 냄비째로 먹는 게 국룰이지만 부러 라면 그릇에 담아 파를 송송 올리면 더 먹음직스러워 보이고 덩달아 기분마저 좋아진다. 역시 사소하지만 작은 것 하나에도 갑자기 기분이 환해지는 게 사람 마음이구나 한다.



10. 올해의 쉼 : 연말부터 연초까지 10일간의 연휴

연말에 회사에서 갑작스레 12월 27, 28, 29일에 헤드 오피스를 닫는다는 공지를 받았고 그렇게 크리스마스부터 새해까지 10일간의 연휴가 생겨버렸다. 이미 어디를 가거나 부킹을 하기엔 늦은 시간이라 그냥 시드니에 머물기로 했는데 처음에는 지루하면 어쩌나 걱정했던 게 우스울 정도로 하루는 비치에 가고 하루는 쇼핑을 하고 어떤 날은 도전해보고 싶었던 요리를 하면서 연휴를 알차게 보냈다.


사실 일주일 이상 휴가를 쓰고 (다른 곳으로 여행을 가지 않고) 시드니에 머문다는 건 생각하기 어려운 옵션인데 이렇게 갑작스레 생긴 연휴로, 그간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해보기도 하고 미루던 일들을 하나씩 해치울 수 있었다. 시간이 충분하니 삶과 생활이 있는 곳을 오랜만에 여행자의 시선으로 너그럽게 볼 수 있었고 무엇보다 시간에 쫓기지 않았다는 점에서 어쩌면 휴가보다 더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올해는 일상을 보내며 순간순간 행복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이를 테면 주말 아침에 내린 커피를 마시다가, 창밖으로 보이는 녹색 뷰가 너무 아름다워서, 읽고 있던 책의 문장이 너무 좋아서 혹은 챙겨보는 예능이 너무 재밌어서 등등. 쓰고 보니 그야말로 너무의 향연이긴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꿈도 기준도 점점 너무 소박해지는 게 아닌가 싶지만 행복은 금방 녹아버리는 아이스크림 같은 거니까, 커다란 행복보다 작은 순간들을 자주자주 마주하는 게 오히려 더 좋은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내년에는 올해와 같이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유지하면서 조금 더 단단한 삶을 꾸려나갈 수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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