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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nald Dec 25. 2023

이번주에는 뭐 해 먹지?

밀키트의 장점과 장점 (2)

그런 날이 있다. 평소에는 엄두가 나지 않아서 혹은 귀찮아서 등등 온갖 이유를 대며 하지 않던 일이 갑자기 해볼 만한 일처럼 느껴지는 날 말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밀키트 배달 업체인 부뚜막의 메뉴를 보며 스크롤을 천천히 내리고 있었는데 먹음직한 사진과 함께 LA 갈비 메뉴가 눈에 들어왔다. 흰쌀밥에 크게 자른 갈비 한 조각을 올려먹으면 얼마나 맛있던가. 그러던 중 생각은 갑자기 360도 방향을 틀어 이걸 집에서 해 먹으면 더 푸짐하게 먹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제법 이성적이고도 합리적인 판단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다 결국 LA 갈비 한번 만들어봐?라는 조금 용감한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인생 첫 갈비찜과 친구들의 리스펙

그런 메뉴가 있다. 재료 자체의 가격이 나가서 기본적으로 메뉴의 가격대가 높고 양이 적은 메뉴 말이다. 호주는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소고기 가격이 저렴해서 LA 갈비는 사 먹기도, 만들어 먹기도 부담이 덜한 메뉴다. 간편하게 사 먹어도 되지만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만드는 과정이 어렵지 않다고 해서 선뜻 도전해 볼 용기가 생겼고 마침 몇 달 전, 처음으로 갈비찜을 만들어봤는데 손질 과정이나 조리 과정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인생 첫 갈비찜을 만들고 나서 나는 친구들에게 얼마나 큰 존경을 받았던가. 그 짜릿함을 기억해 보니 이때가 LA갈비를 만들기에 더없이 좋은 타이밍처럼 느껴졌다.


LA갈비를 향한 대모험은 장보기부터 시작되었다. 일인가구로 살기 시작하고 본격적으로 요리를 하며 깨닫게 된 건 요리는 주방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라 장보기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이었다. 사야 할 품목들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적고 그걸 알맞은 장소에 가서 사 오는 건 생각보다 시간과 품이 드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날은 일요일 아침부터 부지런히 한국식 정육점이 있는 한인 타운으로 향했다. 약 한 시간을 걸려 도착한 그곳에서 LA 갈비용 고기 700그램과 국거리, 삼겹살, 그리고 항정살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소갈비용 시판 양념을 사용하면 생각보다 준비할 재료가 많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한쪽에선 모니터에 레시피를 띄워놓은 채 느릿느릿 엘에이 갈비 만들기에 착수했다. 갈비찜과 마찬가지로 갈비를 손질하고 핏물을 빼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만드는 법은 비교적 간단한 편이었다. 집요리의 장점은 당도를 포함해 내 입맛에 맞게 맛 조절이 가능하다는 점 아닐까. 좋아하는 건 많이, 빼고 싶은 건 과감하게 생략. 그리하여 내 입맛에 맞는 인생 첫 엘에이 갈비가 완성되었고 맛도 성공적이었다. 그 주에는 퇴근 후 집에 와서 지글지글 갈비를 구워 먹으며 행복한 한 주를 보낼 수 있었다.


밀키트가 가진 의외의 장점은 바로 이렇게 자꾸 요리를 해보고 싶게 만든다는 점이었다. 밀키트의 장점과 장점(1)에서 말한 것처럼 밀키트는 분명 요리의 많은 부분을 생략하게 해 주지만 결국 반조리 상태로 도착하기 때문에 반드시 볶거나 끓여야만 하고 특히 패키지를 뜯어 소분하고 분리수거를 하는 건 생각보다 번거로운 일이었다. 그래서 이럴 바에는 차라리 한번 만들어 볼까?라고 어떤 결심을 하게 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조금 하는 것(=밀키트)과 전부 하는 것(=요리)은 오히려 비슷했지만 조금 하는 것과 아예 안 하는 것(=외식)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큰 강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올 한 해 동안 갈비찜과 LA 갈비를 시작으로 해물 파전, 연어 솥밥 등의 요리를 처음으로 만들어봤다. 직접 해보고 나니 어떤 요리는 직접 해 먹는 게 훨씬 맛있고 저렴한 경우도 있었고 이럴 바에는 그냥 간편하게 밀키트를 주문하는 게 낫겠다고 깨닫게 된 메뉴도 있었다. 특히 해산물이나 소고기의 경우, 좋은 재료를 사다가 신선한 상태일 때 바로 요리하기만 해도 일단 가산점 100점은 먹고 들어간다는 비밀 레시피를 알게 되었다.


일인가구의 행복은 요리와, 밀키트, 그리고 외식의 적절한 조화에서 오는 게 아닐까. 요리를 너무 열심히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에너지가 고갈되고, 퇴근 후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은 날은 아무것도 묻고 따지지 말고 무조건 외식을 하는 게 정답이다. 그리고 그 편한 외식도 매일 하다 보면 거짓말처럼 물리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러니 더 이상 부지런히 집밥을 해 먹지 못하는 것에 대해 어떤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한다. 이번 주에는 어떤 밀키트를 주문해 볼까 고민하다 보면 이따금씩 그중 시도해보고 싶은 메뉴가 나타날 테고 그러다 보면 내 요리 실력도 차츰차츰 분명히 나아져 있을 테니까. 천천히 나만의 속도로 꾸준히 나아가는 것. 이제는 그거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 〰️ 밀키트의 장점과 장점 1탄은 이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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