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방울(암컷, 당시 3~4살 추정)을 처음 만난 건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간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었다. 나는 자칭 개파로 어렸을 때부터 개를 무척 좋아했지만 SNS의 순기능으로 고양이에게 어느 순간부터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각각의 고유한 무늬와 성격을 가진 작은 호랑이를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다 보니 어느새 이름을 알게 되는 고양이가 한두 마리 생겼고 핸드폰 화면 위로 그 털뭉치들이 나타날 때면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좋아요 버튼을 누르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새로 이사 간 집 근처에서 어느 날 귀여운 삼색 고양이를 발견해 버린 것이었다. 그때는 미처 알지 못 했다. 이 사건이 운명적 만남의 시작이었다는 걸.
동네 공터에서 혼자 몸단장에 열심히였던 삼색 고양이는 이미 성묘로 목에 방울을 달고 있었다. 주인 혹은 돌봐주는 사람이 있는 걸까 궁금해하며 조금 가까이 다가가봤는데 역시나 인간에게 별로 경계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냅다 드러누워 이리 뒹굴 저리 뒹굴거리며 한껏 귀여움을 뽐내는 게 아닌가. 그리고 곧 들려오는 "냐옹-"하는 작고 귀여운 목소리. 그렇구나, 고양이는 울음소리도 이렇게 귀엽구나하며 갑자기 집 가던 길에 넋 놓고 고양이 동영상을 찍었다. 그렇다고 한없이 고양이만 구경하고 있을 순 없어 다시 발걸음을 옮겼지만 그날 밤에는 방 안에서 낮에 찍은 동영상을 몇 번이나 돌려보았다. 정말이지 나도 모르게 귀엽다는 말이 나오는 영상이었다.
알고 보니 이 고양이는 우리 집 앞에 있는 자동차 밑에 주로 상주하며 동네에서 이쁨을 받는 고양이였다. 예전에 돌봐주던 사람이 있었는데 사정상 길냥이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동네 캣맘을 통해 듣게 되었다. 막 무더위가 시작된 여름이었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오늘도 자동차 밑 그늘에 삼색이가 있을까 궁금해하며 발걸음이 빨라지곤 했다. 삼색이와 그의 친구 고등어는 거의 매일 저녁밥시간이 되면 꽤 정확한 타이밍에 집 앞 공터에 나타났고 그러면 나는 신나게 사료와 물을 챙겨 고양이들의 밥차를 자처했다. 항상 나만 고양이 없어를 외쳤는데(안타깝게도 이때는 주변에 집사인 친구들마저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이렇게 아는 고양이가 생길 줄이야. 움직일 때마다 목에 달려 있는 방울에서 미세한 방울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에 이때부터 삼색이를 윤방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장마철이 지났는데도 늦은 오후부터 심상치 않을 정도로 비가 쏟아지는 날이었다. 저녁밥을 먹고 방울이는 고등어 친구와 함께 안전한 곳으로 피신했겠지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여전히 자동차 밑에 있는 방울이를 발견했다. 아이고, 이 비가 오는데 어쩌려고 이 시간까지 여기에 있는 걸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비가 많이 와서 조금만 더 있으면 방울이 있는 데까지 물이 찰 것 같은데..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서 엄마와 함께 커다란 널빤지 같은 것을 대고 어서 거기에서 나오라고 방울이를 구슬렸다. 다행히 애쓰는 인간들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널빤지를 밟고 밖으로 나오더니 자기도 안 되겠다 싶었는지 현관문 앞까지 우리를 따라오는 게 아닌가. 급한 대로 구석에 작은 방석을 깔아줬더니 그곳에 자리를 잡길래 일단은 됐다 싶어 집안으로 들어왔다. 늦은 밤이 되어 다시 밖으로 나가보니 방울이는 이미 자리를 떠난 상태였다. 쏟아지던 비가 어느새 조금 잦아들어 있었다.
폭우가 내리던 밤에 신뢰를 얻은 것인지 방울이는 그 이후로 종종 우리집을 찾았다. 동네 고양이에서 이웃 고양이 혹은 마당 고양이라는 호칭이 어울릴 정도로 우리 가족을 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어느덧 여름이 지나고 기온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고 엄마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현관문 앞에 방울이 보금자리를 만들어줬다. 오래전에 13년 동안 키우던 개를 떠나보낸 후로는 동물을 생각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이렇게 이웃 고양이가 생기는 건 엄마도 나도 예상하지 못 한 일이었다. 스트릿 출신 방울이는 우리를 신뢰하는 동시에 여전히 경계했고 그래서 밤이 되면 엄마가 만들어준 집에 와서 추위를 피했지만 아침이 되면 쏜살같이 밖으로 나가는 생활을 반복했다.
오늘은 추우니까 벌써 집에 왔으려나 하고 현관문을 열었더니 방울이가 자기 여기 있다고 "야옹"하고 인기척을 했다. 반가운 마음에 볼따구를 복복 긁어줬더니 이번에는 다리에 꿍꿍 박치기를 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더니 갑자기 방울이가 무릎 위로 훌쩍 올라와서 식빵을 굽기 시작했다. 방울이가 무릎냥이었다니! 아니 그것보다 한 번도 고양이를 안아보거나 무릎에 앉혀본 적이 없는 나는 그 상태로 잠시 얼음이 되었다. 수면 바지 위로 날카로운 발톱이 느껴졌지만 무릎 위에 앉은 방울이는 무척 따뜻하고 보들보들했다. 딴딴한 강아지와는 다르게 고양이는 말랑말랑했고 또 솜사탕처럼 가벼웠다. 고롱고롱 오도바이 소리를 내는 방울이를 무릎에 앉히고 반질반질한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그렇게 한참 동안을 바깥에 앉아있었다. 손이 곱을 정도로 추운 겨울이었는데 기억 속에는 한없이 따뜻하고 그리운 장면으로 기억되는 겨울밤이다.
그렇게 무사히 겨울을 난 후에 갑자기 시드니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방울이와는 작별을 해야 했지만 한국에 있는 모부는 여전히 방울이를 잘 돌봐주고 계신다. 그리고 이에 대한 응답처럼, 엄마를 향한 방울이의 사랑은 여러 가지 형태를 띠는데 때로는 잠자리, 어떤 날은 매미의 모습으로 찾아오곤 한다. 처음에는 이게 말로만 듣던 고양이의 보은이구나 했는데 잠자리나 매미를 생포해서 엄마에게 선물한다는 점에서 엄마가 사냥 실력을 길렀으면 하는 건가..? 하는 추측도 해본다. 고양이의 뇌 무게는 25g이라고 하는데 그 작은 머릿속에 엄마에 대한 생각이 일정 부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너무 기특해서 당장이라도 날아가서 궁댕이를 팡팡 두드려주고 싶다.
두 달 전에는 엄마에게 벌써 날이 꽤 더워져서 방울이의 겨울 이불을 빨래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여름단장을 마친 집에서 느긋한 표정으로 잠을 자고 있는 방울이 사진과 함께. 새집을 마음에 들어 하는 걸 보니 올여름에는 또 얼마나 열심히 엄마에게 사랑을 전할지 기대가 되지만 한편으론 약간 걱정도 된다. 방울아, 올여름에도 신나게 사냥하고 건강하게 지내길 바랄게. 하지만 제발 매미보다 큰 생명체를 엄마에게 선물하진 말아 주라! 곧 또 만나!
* 제목은 보경 스님의 책 <어느 날 내게로 고양이가 왔다>에서 따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