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 여행기 다섯 번째
새로운 장소가 조금 익숙해질 때쯤이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여행 마지막 날. 물안경과, 비치타월, 그리고 수영복이 널린 발코니 풍경을 좋아했는데 이제 이것도 마지막이란 생각이 드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하늘에는 아직 달이 떠있고 발코니에서 서서 아무도 없는 수영장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보내는 오전 시간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점심은 고대하던 뿌빳퐁커리와 똠양꿍. 태국 음식은 태국식 커리와 똠양꿍, 팟타이 정도만 알던 내게 새로운 타이 음식을 업데이트해 준 건 다름 아닌 예능 지락실이었는데 촬영지가 방콕이었던 시즌1에서 게임을 할 때마다 보상으로 주어졌던 태국 음식과 그걸 맛있게 먹는 멤버들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한 입만 소리가 절로 나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많은 태국 음식 중 한 멤버가 특히 목 놓아 부르던 메뉴가 있었으니.. 그 메뉴는 바로 뿌빳퐁 커리. 치앙마이에 왔으니 그렇다면 저도 한 번, 하고 미리 검색해 둔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똠얌꿍을 함께 주문하며 고수를 빼달라고 했더니 '아니, 그럴 거면 똠양꿍을 왜 먹나요?'라고 말하는 듯한 직원의 눈빛에 아랑곳하지 않고 밥 추가까지 완료. 첫 입이 가장 맛있는 뿌빳뽕커리는 계속 먹다 보면 조금 느끼해지는데 이럴 때마다 시큼한 똠양꿍 먹으면서 균형을 맞췄다. 이것 봐요, 고수를 넣지 않아도 똠양꿍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니깐요.
마침 도보 거리에 괜찮아 보이는 카페가 있어 바로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약간 경기권에 있을 법한 넓은 부지를 자랑하는 카페였는데 건물 자체는 규모가 무척 작았지만 앞에 드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있어서 원하는 자리에 의자와 테이블을 세팅해 주는 시스템이었다. 야외에서 사진을 찍으러 오는 카페 같았지만 너무 더웠기 때문에 에어컨이 있는 실내로 들어갔는데 안에는 오히려 사람이 없어서 무척 쾌적하게 커피 타임을 가질 수 있었다.
여행지에서 가능하면 서점에 들르는 편이다. 외국어의 바닷속에서 읽을 수 있는 책은 별로 없지만 서점이 주는 아늑한 분위기와 낯선 언어로 쓰인 종이책을 훑어보는 건 그 나름의 즐거움이 있으니까. 아랍어만큼이나 의미를 헤아릴 수 없는 글자가 태국어인데 꼬불꼬불한 글씨가 귀엽다.
묵었던 숙소가 올드타운에 위치했고 그곳엔 가끔 커다란 배낭을 메고 다니는 서양인들이 전부여서 치앙마이엔 생각보다 여행객들이 별로 없구나 했는데 대부분의 여행객과 많은 한국인들은 모두 님만해민 쪽에 있단 걸 깨닫게 되었다. 확실히 여러 음식점과 커다란 쇼핑몰이 모여있어서 여행 거점으로 삼기에 편리한 동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원한 생명수가 필요해 들어간 카페, Rost8ry. 콜드 드립이 있어서 시원하게 한 사발 들이켰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쇼핑을 하기 위해 님만해민 마야몰에 들렀다. 야돔이나 타이거 밤 등을 구입할 수 있는 왓슨스가 있고 지하에는 림핑 마트가 있어서 건망고, 코코넛칩, 과자 등을 쇼핑하기 좋았다. 여행지에서 가장 재밌는 것 중 하나가 마트 구경이다 보니 처음 보는 낯선 제품들에 눈이 빙글빙글 돌았고 부지런히 장바구니를 채웠다.
2018년 이후 (한국-호주를 제외하면) 줄곧 일본 여행만 갔는데 그래서 이번 치앙마이 여행은 개인적으로 의미가 큰 여행이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여행 가고 싶은 나라가 없었고 좋아하던 나 홀로 여행이 재미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장거리 비행이 너무너무 힘들었다. 3박 4일로 이탈리아 여행을 가던 사람이 이렇게 될 수도 있구나라고 혼자 꽤 여러 번 생각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뒤 찾은 치앙마이는 예전에 비하면 슬렁슬렁하고 느슨한, 계획이 덜한 여행이었는데 그래서 너무 많은 것을 하려고 하지 않았고, 하지 않아서 오히려 좋았다. 이러다가 다음번에는 또 가깝고 편한 일본을 선택할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조금 더 먼 다른 나라를 여행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어디가 되었든 즐겁다면, 그걸로 괜찮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