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행기 첫 번째
일 년 만에 휴가를 가기로 했다. 목적지는 서울. 여행짐을 항상 출발 하루 전 날에 꾸리는 편이었는데 이것저것 챙기다 보면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촉박하게 짐을 싸다 보면 무언가 빠뜨리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이번에는 미리 준비를 시작했더니 훨씬 수월했다. 출발 전날에 너무 늦지 않게 잠자리에 들 수 있었고 몇 시간 제대로 잠도 잤다. 여행 가기 일주일 전부터 러기지를 펼쳐놓고 생각나는 걸 하나씩 던져놓는다는 친구들이 조금 이해되었다.
주말 아침 이른 시간이었는데 공항 가는 길에 도로 위에서 꽤 많은 자전거 라이더를 볼 수 있었다. 늦은 여름이었으니 뜨거운 태양을 피해 아침부터 서둘러 나왔구나 싶어 그 부지런함에 조금 감탄했다. 3월 초 마디 그라스 축제를 앞두고 있던 시기라 시드니 공항은 무지개 깃발이 펄럭펄럭했다. 아침 비행기였는데 배웅을 해준 친구 덕분에 편하게 공항까지 올 수 있었다.
공항에 올 때는 항상 시간을 여유롭게 계산하고 오는 편인데 이날은 택스 리펀을 위해 평소보다 더 서둘렀다. 검색해 보니 시드니 공항 택스 리펀은 시간이 오래 걸리기로 악명 높았고 그래서 최대한 시간 여유를 두고 공항에 도착하는 걸 많은 사람들이 추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택스 리펀 장소에 도착해 안내하는 대로 서류를 작성하고 줄을 서려는데 갑자기 시스템이 다운됐다며 물품확인 없이 서류만 제출하고 가면 된다는 게 아닌가. 한국에선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시드니라면? 충분히 가능할 일이다. 시드니가 시드니 한 덕분에 순식간에 택스 리펀을 마치고 그냥 공항에 일찍 도착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한국 국적기에 탑승하여 비빔밥을 한 입 먹는 순간 이미 내 마음은 서울에 도착해 버린다. 영화 [엘리멘탈]과 [보통의 카스미], 책 『마르타의 일』을 보며 비교적 수월하게 10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서울. 계절이 반대이고 비교적 따뜻한(춥지만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 나라에 살다 보니 한국 겨울에 휴가를 오면 코끝까지 시린 서울의 매서운 추위가 너무 반갑다.
휴가 갈 때마다 방울이가 나를 잊어버렸으면 어쩌지.. 하는데 다행히 격하게 반겨주는 모습에 살짝 감동해 버렸다. 알고 보니 고양이는 개처럼 충성심 있지 않을 뿐 기억력은 무척이나 좋다고 한다.
다음날은 파묘 무대인사에 다녀왔다. 개봉 둘째 주였는데 지금 영화 [듄 2]가 무섭게 치고 올라오고 있으니 파묘 많이 사랑해 주시고 소문도 많이 내달라는 김고은 배우의 말에 웃음바다가 되었다. 무대인사 다녀온 날, 파묘 관객수가 200만 명을 돌파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결국 올해 첫 천만영화가 되었다.
이날은 원래 보고 싶었던 요시다 유니 전시의 마지막 날이라 달력에 표시를 해뒀는데 파묘 무대인사와 일정이 겹쳐서 못 가게 되었다. 아쉽지만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지.
평일 오전에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커피 마시고 책 읽다가 다시 커피를 리필해서 한가롭게 블로그를 업데이트하는 휴가의 맛. 이후 점심은 좋아하는 우동집에 가서 상여자 코스(우동 하나, 돈까스 하나)를 즐겼다. 근처에 궁금한 돈가스 집이 있어서 잠깐 고민했으나 언제나 그리운 건 아는 맛이다.
3박 4일 동안 치앙마이에 다녀왔고 새벽에 도착하여 잠깐 눈을 붙이고 오후에는 친구를 만나러 망원동에 다녀왔다. 가려고 했던 카페가 만석이라 급하게 검색으로 찾아간 카페에 래브라도가 한 마리 있었는데 친구가 선물로 가져온 호두과자 때문에 주기적으로 우리 테이블에 와서 내 가방을 수색했던 탓에 자꾸만 웃음이 터졌다.
엄마 칠순맞이 비채나에서 가족 식사. 롯데타워에 있는 식당이라 전망을 기대하고 갔는데 방문한 날 미세먼지가 심해서 기대했던 뷰를 보진 못 했지만 벚꽃철에 이곳에서 석촌호수를 바라보며 식사를 하면 참 근사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는 내 나이를 보고도 가끔 놀라지만 모부의 연세를 생각할 때면 더더욱 그렇게 된다. 온 가족이 테이블에 빙 둘러앉아 생일 노래를 부르고 함께 축하를 했다. 두 분 다 지금처럼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파묘와 함께 한국 가기 전에 미리 예매해 뒀던 [듄 2]를 용아맥에서 관람하고 왔다. 캐릭터와 스토리, 음악과 사운드도 좋았지만 이 모든 걸 뛰어넘는 영상미가 정말 대단한 영화였다. 마치 혼을 빼앗긴 사람처럼 스크린을 보다 보면 어느 순간 영상에 잡아먹힐 것 같은 좋은 기분이 들게 하는 영화였다. 영화를 보면서 벅차오르다 못해 가슴이 뻐근한 게 얼마만이었는지. 영화를 보고 나니 대사보다 이미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드니 빌뇌브의 인터뷰가 자연스럽게 이해되었다.
그리고 다음날에는 2박 3일 동안을 모부와 부산을 다녀왔다. 다음 여행기는 부산 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