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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여행은 한 문장의 카톡과 함께 시작된다

울룰루 여행기 두 번째

by Ronald

친오빠에게 생각지도 못한 카톡을 받은 건 평일 늦은 저녁이었다. 갑자기 내가 살고 있는 시드니 여행을 생각 중이라며 이것저것 질문 공세를 잇는 오빠에게 답변을 해주다 보니 하나둘 의견을 보태게 되었고 이를 시작으로 산(블루 마운틴)으로 가고 바다(본다이 비치)로 가던 계획이 일주일 정도 지났더니 어느 순간 사막으로 방향을 틀어 정신을 차리고 보니 호주 중앙에 위치한 사막, 울룰루 여행 계획을 함께 짜고 있었다.


울룰루 여행 같이 가자


처음에는 울룰루를 같이 가자는 말이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오빠네는 호주 여행이 처음이었고 여행 기간이 일주일 정도로 길지 않아서 사실 시드니만으로도 충분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내심 저러다 포기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자꾸 틈만 나면 내게 울룰루 숙소 가격, 비행시간 등을 보내는 게 아닌가? 그러다가 결국 울룰루를 같이 가자는 카톡을 받은 후에야 오빠가 진심이란 걸 깨닫게 되었다. 사실 울룰루는 오래전부터 가고 싶은 여행지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런 멤버 조합(오빠, 조카 1호)으로 그곳을 다녀오게 될 거라곤 정말이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휴가를 다녀온 게 불과 두어 달 전의 일이었다. 한국으로 휴가를 간 김에 여수와 대전까지 들른 그야말로 바쁘고도 맛있는 여행이었고 올해 비행기를 타는 건 이걸로 마지막이라고 혼자 생각했다. 그런데 울룰루? 한여름의 뜨거운 사막을 생각하니 다시 한 번 여행 의지가 이글이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밤낮으로 의견을 나누고 계획을 조율하면서 비행기/숙소/투어 예약 같은 여행 준비를 하나둘 마쳤다. 그러다가 오빠와 조카 1호가 인천에서 시드니로 오는 비행기를 탔다는 소식을 듣고 나니 비로소 울룰루 여행을 한다는 게 실감 나기 시작했다. 내일이면 그 둘이 호주에 온다니...!



시드니 공항과 울룰루 공항

다음 날에는 도착 시간에 맞춰 이른 아침 시드니 킹스포드 스미스 공항으로 향했다. 딜레이 없이 비행기가 착륙했단 걸 확인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게이트를 빠져나오는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확인했다. 그리고 마침내 아는 얼굴이 등장하자 나도 모르게 손을 번쩍 들어 마구마구 흔들었다. 오빠와 조카가 시드니를 방문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호주 땅에서 가족 얼굴을 보는 게 오랜만이었고 그래서 이 상황이 조금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두 사람을 만나는 장소가 한국이 아니라 호주라는 게. 오빠와 조카는 인천발 10시간 비행을 막 마친 참이었지만 우리는 바로 3시간 후에 비행기를 타고 울룰루로 이동하는 스케줄이었기 때문에 서둘러 채비를 점검한 후 국내선 공항으로 향했다. 다시 짐을 부치고 아침을 먹고 비행기에 탑승한 후 밀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10시 35분에 이륙한 비행기는 어느새 울룰루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느껴지는 후끈한 열기. 다행히 40도까지 올라가는 더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사막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피부로 와닿았다. 상공에서부터 보이던 붉은 흙과 키가 작은 나무들이 시드니에서 보던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점심시간 즈음 도착하여 체크인을 마치고 리조트 내에 있는 식당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식사를 했다. 딱 5개의 숙소와 캠핑 그라운드가 있는 에어즈락 리조트는 작은 마을 같았고 마치 게임에서 새로운 맵에 도착한 여행자들처럼 우리는 자그마한 리조트 구석구석을 둘러보았다. 투어 업체와 기념품숍, 몇 개의 식당과 마트가 전부였지만 모험을 떠날 채비를 하기엔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아담한 곳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대망의 첫 일정은 울룰루 선셋 바베큐. 리조트에서 버스를 타고 목적지로 향하는데 어느 순간 울룰루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몇 시간 전에 도착한 여행자답게 '울룰루'라는 소리에 일제히 고개를 들어 창문을 바라본 후에 이내 핸드폰과 카메라를 들고 그 모습을 부지런히 담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머무는 내내 오가며 매일매일 울룰루를 보았지만 마주할 때마다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시선을 떼지 못했다. 3박 4일의 여행 기간 동안 가능한 한 최대한 많이 이 풍경에 담겠다는 어떤 다짐이라도 한 것처럼. 멀리서 봐도 압도적인 크기의 커다란 바위가 가까워졌다가 멀어졌고 이쪽에서 보였다가 저쪽으로 넘어갈 때면 차 안에 탑승해 있던 모든 사람의 고개가 같은 방향으로 돌아갔다가 제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선셋 바베큐는 말 그대로 해가 지는 울룰루를 배경으로 바베큐 저녁을 하는 투어다. 선셋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미리 목적지에 도착해 와인이나 음료로 가볍게 목을 축이고 있으면 준비팀이 한쪽에서 고기와 소시지를 굽기 시작한다. 지글지글 소리와 함께 테이블에 앉아 함께 투어에 참여한 이들과 간단히 소개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본격적인 저녁 식사가 시작되는데 여느 뷔페가 그렇듯 처음의 각오와는 달리 두 번째 접시를 겨우 비우고 나면 그때부터 서서히 해가 본격적으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한낮에는 갈색에 가까웠던 울룰루가 시시각각 점점 붉고 진하게, 그리고 마침내 타오르듯 붉게 달궈진 모습을 두 눈으로 봤을 때는 조금 감동이 밀려왔다. '그래, 내가 이 풍경을 보기 위해 여기까지 왔지!'라며.


여느 여행자처럼 우리는 일정표를 가득 채웠고 첫날의 마지막 일정은 대망의 별 투어였다. 리조트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밤하늘은 사방이 깜깜한 바다와도 같았는데 그 위로 정말 수많은 별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쏟아진다는 표현이 과하지 않게 느껴졌던 이유는 육안으로도 저기가 혹시 은하수가 지나는 자리일까 싶을 정도로 정말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이었고 환한 보름달이 아니라 눈썹달에 가까운 가장 가느다란 달이 뜨던 날이라 시기적으로도 밤하늘을 관측하기에 정말 안성맞춤이었던 시기였다. 그래서 어느 곳에서 본 밤하늘보다도 압도적으로 아름다웠던 사막의 밤.


별과 행성에 대한 투어 가이드의 긴 이야기를 듣고 둥근 띠를 두른 토성을 천체 망원경으로 본 후에 셋이 천천히 걸어서 숙소로 돌아오는 동안에도 시선은 계속해서 밤하늘을 향해 있었다. 까만 밤과 반짝이는 별들이 너무 예뻐서, 쉴 새 없이 감탄이 터져 나왔고 내가 숨 쉬고 있는 이 세상이 한없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렇게 숙소 앞에 서서 "정말 예쁘다"같은 시시한 말을 내뱉으면서 아쉬운 듯 밤하늘을 한참 바라봤다. 아마도 오랫동안 잊지 못할 한여름 밤이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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