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영화를 한편 봐야겠다 맘먹은 게 12시다.
한 장의 포스터가 내 호기심을 이끌기에 충분했다.
한 여인이 해변에 앉아있는데, 왼쪽 다리는 멀쩡하고, 왼쪽 다리는 쪼그라들다가 발가락은 뼈가 앙상한 그런 포스터였다.
뭐지? 뭘 의미하는 거지?
하며 와인 한 잔과 쥐포를 준비하고는 시작 버튼을 눌렀다.
다음날 일정이 있어 딱 한 시간만 보자고 했던 것이 끝을 보고야 말았다.
이 정도면 말 다 했지 뭐,
너무너무 너무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생각했다.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영화로 식스센스와 언브레이커블을 연출한 적이 있는
반전의 연출을 너무도 기가 막히게 하는 감독이자 배우이다
결말에 너무 힘을 싣지 않은 채,
과정에 충실한 영화였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그 점이 참 맘에 들었다.
내용은 그렇다.
호텔에서 제공한 프라이빗하고 또 신비로운 해변에서 해수욕을 하는 관광상품에 참가한 사람들이
겪게 되는 기이한 현상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그곳에서 현실과는 다른 시간의 흐름으로 인한 변화를 감당해야 하는 그런 내용이었다.
3cm 밖에 안되었던 종양이 순식간에 멜론만 해져버리고,
첫 경험을 나눈 아이들에게서 생겨난 아기씨는 20분도 안 되는 순간에 태동이 오고,
만삭이 되고, 출산을 하고,
밤에는 노화로 세상을 뜨는 과정,
그러니까 인생의 한 사이클을 하루아침에 겪게 되는
다시 생각해 보면 끔찍하고 무서운 일이었다.
그저 신체의 노화로 인한 급속한 변화가 무서웠던가 생각했지만,
다시 되짚어 보면
인간은 죽을 때까지 배움이 끝이 없으며,
인생이라는 것은 우리의 인식이 확장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주지 않는다는 에크하르트 톨레의 말처럼 인생이 천천히 나아가며 내면 성장하고, 또 배워가는 배움이라는 것이 있을진대,
급속도로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노화, 죽음뿐만 아니라 내면의 성장이 단단해지기에도 어려움이 있다는 걸 이야기한다.
충분히 경험하고 성숙해지지 못하는,
다시 돌이켜 생각해 보면 오십 년의 인생을 하루아침에 마무리하는 악몽이었던 것이었다.
사랑하는 이를 짧은 시간에 보내야 했고,
나의 나이 듦을 순식간에 느껴야만 했다.
그들을 그렇게 두고 지옥의 해변에 두고 떠나버린
인간이라는 탈을 쓰고, 이익만을 챙기려던 이들에 의해
인생이라는 나의 소중한 삶을 희생당했다.
나는 관객이었지만
나의 소중한 삼십 년, 사십 년을 그렇게 허망하게 보내게 만든 그들이 역겨웠다.
그러고는 실험체들로 인해 신약 개발이 가능하다는 둥 헛소리를 지껄이는 그들을 보고 싶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부모를 잃고 어른이 되어버린 그 아이들을 누가, 무엇이 위로해 줄까
내가 되려 억울했다
내가 되려 슬펐다.
전혀 슬프지 않게 영화를 마무리했지만 나는 눈물이 났다.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그저 그렇게 영화는 마무리되지만,
내 입에서 와 참 잘 만들었다. 하며 혼잣말하고 있었다. 힘을 뺀 마무리가 마음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