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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un 29. 2024

마흔여덟 무주택자, 생애 첫 청약 도전


개인회생 당시 매달 월급의 절반을 법원에 납부했었다. 1년 넘게 남은 월급으로 버텼다. 아무리 줄여도 네 식구 생활비는 다달이 적자였다. 아내와 고민 끝에 결혼하며 장만한 집을 팔기로 했다. 2008년에 1억 8천에 샀다. 2019년 3억에 팔았다. 손해는 안 봤다. 남은 돈에 대출받아서 전세살이를 시작했다. 

 

그 사이 부동산 시장은 난리 블루스를 쳤다. 내 손을 떠난 내 집은 얼마 뒤 5억까지 올랐다. 전세로 사는 집도 매매가 6억에서 10 억이 되었다. 주변 신축 아파트 33평이 15억에 거래되기도 했다. 집 살 엄두가 안 났다. 집을 사려면 살던 동네를 떠나거나 집살 욕심을 내려놓거나 둘 중 하나였다. 아내와 나는 욕심을 내려놓았다. 한 곳에 오래 살기를 택했다.


나는 집에 욕심이 있다. 5살 즈음, 태어났던 부산을 떠나 성남으로 이사 왔다. 단칸방도 못 구했었다. 전해 듣기로 시장 한편 평상을 얻어 얼마간 살았다고 한다. 남편에게 기대가 없었던 어머니는 시장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장사 수완이 좋아서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상가 건물 1층에 방이 딸린 분식집을 차리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오래 장사했다면 아마 지금쯤 '생활의 달인'에 출연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만큼 솜씨가 좋았고 단골도 많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서울로 전학 오면서 분식집도 접었다. 서울에서도 장사는 계속됐다. 주점, 밥집, 분식집 등 업종을 오갔다. 집은 애초에 없었다. 장사를 시작하면서부터 사글세로 살았다. 1년마다 옮겼다. 내 기억에 한집에 가장 오래 살았던 게 2년이었다. 그러니 친구도 많지 않았고 동네에 정을 붙이지도 못했다. 무엇보다 이사가 싫었다. 이삿짐 싸는 요령이 붙는 게 한편으로 대견했다. 이사 횟수가 늘수록 내 몫의 역할도 늘었다. 이사는 내 한 몸 건사할 만큼 철들게 했다.


내가 서른 살 때 어머니는 평생 처음 당신의 집을 가졌다. 반지하 방 두 칸 짜리였다. 그때 나는 독립해 혼자 살았다. 작은 형도 그보다 일찍 독립했고 그 집에는 어머니와 큰형만 살았다. 반지하여서 볕이 안 들고 습기로 축축했다. 어머니도 형도 자기 밥벌이로 낮동안은 집을 비웠다. 일에 찌든 몸으로 집에 돌아와도 집은 안락함을 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형광등을 켜야 밥을 먹을 수 있었고, 신발 신고 나가야 화장실을 쓸 수 있었다. 내가 일찍 독립한 것도 이런 집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다. 


아내의 오빠 덕분에 결혼하면서 내 집을 장만했다. 평생 이사를 안 가도 되는 건 집값의 절반인 빚을 감당할 충분한 이유가 됐다. 그렇게 신혼을 시작했고 그 집에서 두 딸을 낳았다. 네 식구가 되어 10년을 사니 19평은 점점 작아졌다. 초등학생인 두 딸을 위해 같은 동네에서 더 큰 집을 찾았다. 집을 살 형편은 안돼서 살던 집을 전세 주고 우리도 전세를 얻었다. 내 집값이 오르기 바라며 전세살이를 시작했고 얼마 뒤 개인회생에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뒤 내 집을 팔았다.    


일산에 산지 15년째다. 일산은 요즘 장항지구 개발로 오랜만에 활기가 도는 중이다. 이미 새 아파트에 입주한 사람도, 자기 집이 완공되길 기다리는 이도 있다. 또 새 아파트를 짓겠다고 광고하는 곳도 여럿이다. 비슷한 때 아내도 나도 같은 분양 광고를 봤다. 아내는 이미 모델하우스에도 다녀왔다. 호수공원 옆이라 위치도 괜찮다. 대출로 충당해야 하겠지만 분양가도 적당했다. 2014년 내 이름으로 가입했던 청약 통장을 쓸 기회라고 아내가 말했다.


마흔여덟, 일반 분양 1순위에 도전한다.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터라 경쟁률은 마음에 두지 않는다. 오로지 나에게 찾아올 운만 바란다. 이제까지 대운이 들어온 적 없었다. 이번 청약에 평생의 한 번 대운이 들어오기만 기도한다. 설령 이번에 안 돼도 상관없다. 아마도 다른 방법으로 대운이 오려나보다 생각하면 된다. 살다 보면 어떤 식으로든 대운이 한 번은 들어오지 않겠는가? 


전세살이 6년째, 주인 잘 만난 덕에 처음 집값 그대로 사는 중이다. 그 덕분에 가정 살림도 안정을 찾아가는 중이다. 대출이자는 여전히 부담이기는 하다. 나도 아내도 지금 사는 집과 동네에 만족한다. 물론 두 딸도 같은 학교를 다니며 친구도 많이 만들었다. 잘 정돈된 동네는 두 딸이 어디든 안전하게 다닐 수 있어 다행이다. 한 마디로 삶의 만족도가 높은 동네이다. 그러니 이곳을 떠날 이유가 없다. 부디 이런 마음이 전해져 우주의 기운을 끌어당겨 청약 당첨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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