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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un 30. 2024

내 인생에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


우리의 삶을 형성하는 힘은 어떤 경험에 부여한 의미를 변화시키는 데서 비롯된다. 되돌아보면 그런 경험이 인생에 어떤 식으로든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다.

<거인의 생각법> 토니 로빈스



고등학교 졸업 이듬해부터 동창 모임을 가졌다. 얼떨결에 총무이자 회장이 됐다. 다음 해부터 매년 한두 번씩 모였다. 장소 섭외부터 개별 연락과 당일 진행까지 모두 내 몫이었다. 초반에는 연락해도 나오지 않는 친구 때문에 속앓이를 했다. 모두가 원해서 만든 자리에 각자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한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물론 그때는 사회 초년생이라 퇴근 시간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건 짐작됐다. 그래도 서운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고, 몇 번이나 그만두겠다고 했었다. 그러지 못했던 건 그래도 꼬박꼬박 나와주는 친구와 수고를 감사해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만나는 횟수가 쌓일수록 나오지 않는 친구들에 대한 서운함도 점점 사그라졌다. 그럴 수 있다고 이해했다. 



다만 모임 일정은 누구도 예외 없이 공유했다. 일정을 알고 못 나오는 것과 애초에 연락조차 받지 못한 건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누구도 소외감 갖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28년 동안 모임을 유지해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때 만약 수고를 몰라준다는 서운함에 연락을 가려서 했다면 아마 계속되지 못했을 수 있다. 


28년 동안 이어진 이 경험 덕분에 간단한 회식이나 술자리 잡는 건 일도 아니다. 누구는 약속 잡는 걸 어려워한다. 장소를 알아보고 시간을 정하고 일일이 연락하려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경험이 없으면 그럴 수 있다. 무슨 일이든 안 해본 일이 손에 익지 않는 게 당연할 테니까. 그래도 몇 번 해보면 요령이 생기기 마련이다. 다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딱 한 가지 방법을 꼽자면 남의 말 듣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일정을 정할 때 가장 걸림돌은 각자의 사정이다. 누구는 금요일은 안 된다, 누구는 강남이 멀다, 누구는 먹고 싶은 메뉴가 있다고 한 마디씩 거든다. 각자 사정 들어줬다가는 아무것도 못한다. 조율이 필요 없다. 일방적 통보 방식만이 모임을 장기간 유지하는 비결이다. 주최자가 스스로 결정해 통보하고 참석 여부만 확인하면 된다. 나오고 안 나오고는 그들의 몫이다. 한 번 만나고 끝나는 모임이라면 가급적 많이 나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참석자가 적어도 동요해서는 안 된다. 동요하면 주최자만 괴로울 뿐이다.

오랫동안 모임을 주관해 온 경험 덕분에 어제 진행했던 <삶, 책 속에>첫 모임을 수월하게 치러냈다. 장소는 이번에 파티룸을 새로 오픈한 지인에게 부탁했다. 지하철역과 가까웠다. 여기서 중요한 한 가지, 어느 역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장소를 통보하면 참석자는 알아서 찾아온다. 그렇기 때문에 이왕이면 역과 가까운 게 장점이다. 길눈이 어두워 헤매도 거리가 가까우면 그나마 기운이 덜 빠지기 때문이다. 찾아오는 게 어렵지 않다면 절반은 성공이다. 술자리든 모임이든 장소에 만족해하면 그 밖의 요소도 후한 점수를 주게 된다.


이번 모임 <삶, 책 속에>는 어떤 면에서 조금 무모하게 시작했다. 30명 모집될 줄 알고 넓은 장소를 빌렸다. 결과는 1/3을 겨우 넘겼다. 약속된 시간이 다가올수록 불안했다. 괜한 짓 한 게 아닐지 걱정했다. 되돌릴 수 없었다. 몇 명이 참석하든 치러내야 했다. 이런 불안한 마음은 동창회 준비 때와는 또 달랐다. 나를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또 무언가 얻고자 5시간이나 투자한 그들이었다. 그 시간 동안은 책임을 져야 했다. 만약에 이 불안감을 미리 경험해 보지 않았다면 중간에 포기했을지도 모르겠다. 다년간 동창회를 준비하면서 비슷한 불안감을 여러 번 경험했다. 그래서 버텨냈고, 아쉬운 부분은 있었지만 끝까지 마칠 수 있었다.













나쁜 경험은 없다. 우리가 나쁜 경험이라고 판단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경험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미래에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과거 경험의 가치도 다르게 판단될 수 있다. 30년 가까이 동창회를 운영하며 다양한 감정을 경험했었다. 그때 경험들이 차곡히 쌓여 지금에야 빛을 발하게 되었다. 새로운 모임의 시작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치러낼 수 있었다. 모든 게 이제까지의 경험 덕분이다.



인생에서 겪는 일들이 어렵든 쉽든, 고통스럽든 기쁘든 상관없이 그 안에서 의미를 찾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어떤 경험이든 값진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거인의 생각법> 토니 로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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