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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un 27. 2024

잔소리도 기분 나쁜데, 참견은 더 기분 나쁘다


한 여름에도 긴팔 옷만 입는 친구가 있습니다. 시원하게 입으라고 참견하고 싶습니다. 보고 있으니 답답하다면서 말이죠. 참견한다고 들을까요? 아닐 겁니다. 아마도 사정이 있기 때문에 긴팔 옷을 입을 겁니다. 만약에 정말 참견하고 싶다면 반팔 옷을 사주면 그나마 이유라도 알게 되지 않을까요? 겉모습만 보고 참견하려는 사람 많습니다. 상대방의 속 사정은 생각지 않고 내 기준에서만 판단하는 것입니다. 


참견이 많은 곳 중 직장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참견의 대부분은 윗사람의 잔소리나 다름없습니다. 애정을 담은 잔소리가 있는 반면, 대책 없이 비난만 내뱉은 상사도 있기 마련입니다. 참견을 넘어 강요나 다름없습니다. 아랫사람의 생각, 감정은 아랑곳 않고 내 할 말만 합니다. 안 그래도 미운데 더 밉상이 됩니다. 하다못해 삼겹살에 소주라도 사주면 모를까 주는 것도 없이 듣기 싫은 말만 주야장천 떠들어 댑니다. 





참견을 하려면 대안도 함께 주라고 했습니다. 긴팔 옷만 입는 친구에게 반팔 옷을 사주든가, 실수한 후배에게 당근이라도 주면서 혼을 내든가 하는 식이죠. 이런 것 없는 참견은 상대방에 대한 보이지 않는 폭력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디까지나 자기만 좋은 것일 테니까요. 


참견에 토를 달지 못하는 유일한 관계가 부모 자식 사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는 자식의 성장을 위해 모든 면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습니다. 부모의 지원과 관심 덕분에 아이도 성장합니다. 또 아이는 부모를 통해서 세상을 배우게 됩니다. 물질뿐 아니라 정신적인 면에서 부모의 영향을 받습니다. 건강하고 올바른 방법이라면 서로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일 것입니다. 아쉽게도 일부 부모는 이를 악용하기 때문에 서로에게 상처만 남는 관계가 되고 맙니다.





참견은 다른 표현으로 관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관심 있기 때문에 참견하고 싶어 집니다. 다만 방법이 틀려서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기도 합니다. 건강한 참견은 앞에서도 말했듯 대안까지 함께 제시해 주는 겁니다. 그 대안이 정답이 아닐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원한 게 아닐지언정 서로에 대한 마음은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적어도 내가 관심받고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됩니다.


부모 자식 사이에는 참견보다 관심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관심은 내 아이가 더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참견도 의미는 같습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받아들이는 아이의 마음일 것입니다. 대안도 없이 무턱대고 참견만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참견은 분명 다르다고 했습니다. 부모도 아이에게 대안을 주기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내 아이를 건강하게 키울 수 없을 테니까요. 






내가 지금 아이에게 '참견'만 하는지, 아니면 '애정과 관심'으로 키우는지 생각해 볼 필요 있습니다. 아이의 입장에서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나는 애정이라고 표현하지만 아이는 참견이라고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을 테니까요. 수학 공식처럼 정해진 자리에 맞는 숫자를 넣어서 답을 찾듯 부모 자식 관계도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람이라서 불가능할 것입니다. 결국 어렵고 힘들더라도 매 순간 부모는 부모 자리에서, 아이는 아이 역할로 최선을 다하는 것뿐입니다. 물론 모든 부모는 매 순간 진심을 다한다는 걸 아이도 알 것입니다. 그 진심이 참견으로 포장된 게 아닌 애정과 관심으로 표현된다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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