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서 행복하다고 말했는데 왜 불안해지는가? '행복'이라는 말이 실제 행복 그 자체가 아니라 이를 대신한 언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언어는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그 뜻이 달라질 수 있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사람은 세 부류로 나뉜다. 행복하지 않으면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 행복해지고 싶어서 행복하겠다고 말하는 사람, 행복이라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일상에 만족을 느끼는 사람이다. 이 셋 중 가장 행복한 사람은 당연히 세 번째이다. 행복을 원해서 말하고 표현한다는 의미는 이미 결핍을 인정하는 것이다. 내 안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기에 행복을 끌어당기려고 말하고 행동한다. 그러니 행동이 부자연스럽고 생각의 폭이 좁아지고 점점 조급해진다. 어떤 식으로든 결핍을 채워야 행복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정말 행복한 삶을 사는 이들은 어떤 모습일까? 내가 알기로 적어도 그들은 행복한 순간조차 행복이라고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 순간조차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하루 세끼를 먹을 수 있으면 당연히 행복한 거다. 일하고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도 행복이다. 데면데면해도 매일 학교에 가는 자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축복이다. 매달 카드값으로 순식간에 사라지는 월급이라도 받을 수 있다는 게 다행이다. 이런 당연한 일상이 누군가에겐 꿈이고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행복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 게 '감사'이다. 일상 모든 것들에 감사해하면 덩달아 행복해진다고 진리처럼 말한다. 맞는 말이다. 내가 누리는 사소한 것조차 누군가에게 평생을 두고 바라는 것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누구나 더 많은 걸 바란다. 당장 내 손에 쥔 것보다 갖지 못한 것들에 눈을 둔다. 더 넓은 집, 더 비싼 차, 더 높은 직급, 더 많은 돈, 더 젊은 피부 등등. 욕심 내는 건 인간 본성이다. 욕심 때문에 인류가 발전해 왔고 지금보다 더 나은 삶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결국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때로는 스스로 화를 자초하기도 했다.
행복을 손에 쥐고도 행복인 줄 몰랐기에 일순간 불행해지는 게 아닐까? 내가 가진 것들에 감사해할 때 당연하지 않게 된다. 당연하게 여기지 않을 때 비로소 행복이라고 인정하게 된다. 어쩌면 '행복'이라는 단어로 정의하는 게 무의미할 수 있다. 가진 것에 만족해하는 것, 평범한 일상에 감사해하는 것, 내가 누리는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걸 굳이 행복이라고 정의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행복해하는 것도 어쩌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이미지 아닐까? 마치 쇼윈도에 새 옷을 걸친 마네킹이 환하게 웃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오늘을 살 수 있다는 자체로 이미 행복을 바탕에 두고 시작하는 거다. 왜냐하면 어제 죽은 이에겐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었으니까. 그런 내일인 오늘은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안 든 누리게 되었다. 하루 동안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숨을 쉬는 이 순간에 무엇을 할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 그게 나를 즐겁게 만드는 일일 수도,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 수도, 나와 주변 사람을 웃게 만드는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왕이면 모두가 좋아할 걸 선택하면 어떨까? 내 선택으로 인해 내 주변까지 영향을 주는 건 꽤 근사한 일이니까.
"말로는 골백번을 더 깨달았어도 우리 인생이 이다지도 괴로운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깨달은 사람은 굳이 행복하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반대로 '행복하다'라고 표현하는 사람은 불행히도 행복에 닿지 못했다. 이들은 행복을 누리면서도 또 다른 행복을 바란다. 그러니 누가 봐도 행복해 보이지 않는 삶을 사는 게 아닐까 싶다. 정작 본인은 그 불행을 행복이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행복은 주어진 삶 그 자체로 인정하는 것이다.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더라도 그 자체로 행복이라고 말이다. 물론 말처럼 쉽지 않다. 이 말도 그저 공자님 말처럼 들릴 수 있다.
다시 생각해 보면 좋겠다. 이런 판에 박힌 글을 읽으면서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면 어떨까? 앞에 예를 든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모습에서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면 이 또한 행복이지 않을까?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에서 진리를 발견한다면 말이다. 대신 말로만이 아니라 진심으로 느껴보는 거다. 진정으로 감사해 보는 거다. 마음이 움직인다면 이 또한 행복이지 않겠는가? 별 것 없는 일상에서도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는 과정 속에 우리가 바라는 행복이 숨어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걸 하나씩 찾을 때 비로소 나만이 누리는 참다운 행복을 손에 넣을 수 있을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