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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Oct 25. 2024

모기와 고장난 충전기도 글이 된다


노트북 배터리 잔량 49%, 고장 난 노트북 충전기, 앉은 자리 주변을 맴도는 모기 한 마리.

어제와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앉았습니다. 거치대 노트북을 얹고 화면을 열었습니다. 배터리 잔량이 절반을 가리킵니다. 충전기를 꺼냈습니다. 연결했습니다. 충전 표시로 바뀌지 않습니다. 자리를 옮겨 다시 꽂았습니다. 반응하지 않습니다. 스마트폰에 꽂았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10분을 잡아먹었습니다. 서서히 짜증이 올라옵니다. 정품 충전기를 새로 산지 6개월도 안 됐기 때문입니다. 


정품이 아닌 제품은 인터넷에서 2만 원정 도면 구매 가능했습니다. 대신 충전기로 인해 노트북에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져 주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정품은 두 배 가격이었지만 노트북과 충전기도 보증이 되는 이점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나중을 생각해 비싸더라도 구매했습니다. 6개월도 지나지 않아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장으로 제 역할을 못하니 속이 터집니다. 잔뜩 짜증이 오른 이런 제 주변에서 빨대 한 번 꽂아보겠다고 알짱이는 모기 한 마리에 더 신경이 곤두섭니다. 


자리 잡고 30분 만에 첫 줄을 씁니다. 그러는 사이 배터리 잔량도 5% 줄었습니다. 여전히 모기는 잡지 못했습니다. 줄어드는 배터리에 신경 쓰이고 날아다니는 모기 때문에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합니다. 눈에 띄면 때려잡을 각오를 다집니다. 목덜미가 괜히 가려운 것 같습니다. 발목을 물고 갔나 싶어 손으로 슥 문지릅니다. 이래저래 집중을 못 하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제시간에 끝낼지 의문입니다. 마음이 콩밭이니 글에도 집중을 못 합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날아다니는 모기는 내가 통제할 수 없다', '고장 난 충전기를 당장 고칠 수 없다', '그럼 지금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당장 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습니다.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건 빈 화면을 채워 나가는 겁니다.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짜증 부린다고 고장 난 충전기가 고쳐지지 않습니다. 허공에 손을 휘두른들 모기가 잡힐 리 없습니다. 그래봐야 에너지만 낭비할 뿐입니다.


억지로 최면을 겁니다. '해야 할 일에 집중하자.' 지금 내 상태를 글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글을 시작하니 쓸 말이 넘쳐납니다.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옮겨 적는 중입니다. 어떤 상황이고 내 마음은 어떤지 들여다보면서 말이죠. 이 상황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접니다. 그렇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쓰면 됩니다. 더하거나 뺄 것도 없이요. 쓰다 보니 어느새 다섯 단락이나 채웠습니다. 다행히 사건이 생긴 덕분에 오늘도 글 한 편 쓰는 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글을 쓴다고 해서 대단한 내용을 써야 하는 건 아닙니다. 앞에 적은 것처럼 나에게 일어난 사소한 일도 종이에 옮겨 적으면 한 편의 글이 됩니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상입니다. 살다 보면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일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이를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렇지 않고 글로 옮겨 적는 이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후자를 가리켜 '작가'라고 부릅니다. 맞습니다. 작가라고 대단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저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상에 조금 더 관심 갖고 그걸 자기만의 언어로 옮겨 적는 사람입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자기만의 언어 즉, 메시지를 담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일상을 옮겨 적는 걸 일기라고 말합니다. 일기는 자기만 보기 위해 쓰는 것이고요. 내가 쓴 일기가 사람들에게 읽히려면 나만의 언어로 메시지가 담겨야 합니다. 내가 쓴 글을 읽는 사람에게 적어도 한 가지 의미를 전달하는 겁니다. 그렇다고 대단한 철학을 담아야 하는 건 아닙니다. 내가 생각하고 느낀 걸 적는 걸로 충분합니다. '나는 이 경험을 통해 이런 점을 느꼈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여러분도 이런 고민을 해보면 어떨까요?'라는 식으로 말이죠.




노트북이 꺼지기 전에 이 글을 마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지금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은 덕분입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마음 뺏겨봐야 남는 후회뿐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 후회, 시간을 낭비한 아쉬움만 남았을 겁니다. 콩밭에 가 있던 마음도 그 사이 제 자리를 찾았습니다. 다만 여러 차례 죽을 기회를 넘긴 모기는 유유히 제 주변을 맴도는 중입니다. 그놈은 적어도 앞으로 몇 시간은 삶을 만끽할 것입니다. 저는 이제 제가 있어야 할 자리로 다시 돌아갑니다. 출근합니다. 배터리 잔량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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