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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Oct 22. 2024

마라톤과 책 쓰기의 공통점

책 쓰기 무료특강 10월 29일 화요일 21시부터


16킬로미터 지점, 수북한 턱수염 때문에 기억했던 그와 친구로 짐작되는 이가 나란히 걷고 있었다. 이미 숨이 찰 때까지 찼는지 말하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포기할 수 없었는지 옆의 친구를 다독였다.

"이제 2킬로미터만 더 가면 되니까 조금만 힘내 보자. 그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잖아!"

'아닌데, 5킬로미터 더 가야 결승선인데'라고 마음속으로 말했다. 어떤 이유에서 그렇게 말했는지 모르겠다. 그들을 지나치며 잠깐 생각했다. 그 자리에서 2킬로미터를 더 간들 결승선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만약 거기까지만 달리고 대회를 포기한다면 모를까. 18킬로미터 지점까지 가면 된다는 그 말의 뜻을 되뇌며 계속 달렸다.


다행이었다. 쓸데없는 생각이었지만 그 덕분에 적어도 3킬로미터 이상 더 달릴 수 있었다. 더 다행인 건 20킬로미터를 달렸어도 호흡은 일정했고 무릎에 통증도 없었고 허벅지 근육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왼쪽 종아리에서 경련이 일어날 듯 말 듯 했다. 조금만 속도를 냈다가는 종아리에서 쥐가 나 주저앉을 것 같았다. 고양이가 쥐를 잡을 때 살금살금 다가가는 것처럼 일정한 자세를 유지하며 달렸다. 결승선 1킬로미터부터 오르막이었다. 총총걸음처럼 보폭을 짧게 하고 뛰었다. 다시 평지에 접어들었 때 남은 힘을 쏟아내보고 싶었다. 단 몇 초라도 당기고 싶은 욕심이었다. 두 발 네 발 여덟 발 쥐! 아차 하는 순간 경련이 왔다. 재빠르게 속도를 낮췄다. 원래속도를 유지하며 결승선을 통과했다.

02:07:15초, 하프 마라톤 완주 기록이다. 하프를 뛰어보지 못하고 대회에 나갔다. 완주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이틀 전 헬스트레이너가 친절하게 하체를 조져줬다. 마라톤 뛴다고 말하지 않은 내 잘못이 더 크다. 덕분에 엉덩이부터 허벅지까지 근육통 때문에 걷는 게 불편했다. 참가비로 4만 원이나 냈다. 물릴 수 없었다. 한편으로 도전해 보고 싶었다. 근사한 말로 '한계에 도전'이라고 말하겠다. 운이 따라준 탓에 다행히 완주할 수 있었다. 완주 후에도 몸에 큰 무리가 없는 게 더 다행이다. 첫 도전이었지만 만족스러웠다.


16킬로미터 지점에서 지나쳤던 수염남은 아마도 오버페이스 했던 것 같다. 자신의 체력을 과신해 속도를 올린 탓에 호흡이 거칠어지고 체력이 떨어졌던 게 아닐까 싶다. 대회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게 오버페이스라고 많은 사람이 말한다. 옆에서 달리는 사람 따라잡겠다고 욕심부리다가 골로 간다는 말이다. 남이야 빨리 달리든 말든 자기 만의 속도로 달려야 끝까지 완주가 가능하다. 또 대회는 여럿이 달리다 보니 변수도 많이 발생한다. 그날의 날씨나 컨디션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페이스부터 지키는 게 우선이다. 섣불리 덤볐다가는 스스로 자멸하고 만다. 아마도 내가 완주할 수 있었던 건 평정심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를 지나쳐 가든 말든 나는 내 속도대로 달렸다. 호흡도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말이다.


'책 쓰기는 마라톤이다'라고 내가 말했다. 단거리 달리듯 질주하면 빨리는 출간 하겠지만 만족스러움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마라톤 코스도 속도낼 구간과 그렇지 않은 구간이 있다. 초반부에는 선두그룹에 뛸 만큼 속도를 맞춰야 한다. 중반부에는 체력을 안배하며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한다. 이제 후반부에서는 그동안 비축한 힘을 다 쏟아내며 기록을 당기고 등수 안에 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체력과 컨디션을 먼저 알아야 한다. 그래야 오버페이스 하지 않을 테니까.


책 쓰기도 다르지 않다. 주제와 목차가 정해지면 빠른 속도로 초고를 완성한다. 목차를 따라가면 내용은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분량에만 집중하며 모든 걸 쏟아낸다. 완성된 초고는 잠깐 묵힌 뒤 퇴고에 들어간다. 중반부 레이스처럼 안정된 호흡으로 고치고 다시 쓰기를 반복한다. 중요한 건 퇴고에는 정해진 기간이 없다는 점이다. 자신이 만족할 만큼까지 계속하는 거다. 마라톤은 결승선이 정해져 있지만 퇴고는 결승선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퇴고를 '끝낸다'라고 말하지 않고 '멈춘다'라고 표현하는 이유이다.

이제 마라톤 후반부에 해당하는 과정만 남는다. 비유를 하자면 출판사와의 퇴고 과정이다. 이때는 출간 일자가 정해지기 때문에 나도 편집자도 서두르게 된다. 남은 힘을 쥐어짜며 결승선을 향해 달리듯 말이다.


책을 쓸 때도 마라톤과 마찬가지로 자기 페이스대로 써내야 한다. 남이 빨리 쓴다고 따라가 봤자 자신의 흑역사만 만들 뿐이다. 성급하게 써낸 글에는 항상 미련과 후회가 남을 테니까.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역량에 맞는 속도대로 달려야 한다. 긴 호흡으로 써내는 책이 그나마 덜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만족스러운 레이스로 완주해도 아쉬움은 남기 마련이다. 남는 게 당연하기도 하다. 그래야 다음 책을 더 잘 쓸 수 있으니까.


마라톤을 위해 꼭 필요한 한 가지를 꼽으라면 지구력이라 할 수 있다. 지구력을 갖기 위해 체력도 기르고 폐활량도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장거리를 지치지 않고 달릴 수 있다. 책을 쓸 때 필요한 한 가지를 꼽으라면 인내심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주변의 유혹도 뿌리치고 반드시 써낸다는 각오도 필요하다. 그래야 끝까지 써낼 수 있으니 말이다. 마라톤도 책 쓰기도 결국 마지막까지 버티는 이에게 결승선이 허락되고 출간의 기쁨도 맛보게 될 것이다.


하프 코스 완주 했으니 다음은 풀코스 도전이다. 일 년 뒤에는 반드시 풀코스 완주할 것이다. 그 사이 책도 몇 권 더 쓰겠지. 나도 지구력과 인내심이 장점이다. 이를 살려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도전을 계속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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