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가지 템플릿을 배웠습니다. 글감이 되는 소재도 차고 넘치게 압니다. 작정하고 쓰면 1시간 도 안 걸려 A4 한 페이지 채웁니다. 그분이 오신 듯 몰입해 쓰는 날도 더러 있습니다. 내가 쓰고도 내가 쓴 게 맞는지 의아할 정도로 근사한 글을 써내기 도 합니다. 7년째 매일 썼다면 이제는 시작이 편해질 때도 되지 않았을까요?
유난히 마음이 갈피를 못 잡는 날 있습니다. 뚜렷한 이유 없이 당장 해야 할 일을 먼 산 보듯 바라보게 됩니다. 손을 놓은 채 말이죠. 떠다니는 마음을 아무리 붙잡으려고 해 봐도 잡히지 않습니다. 키보드로 손이 가지 않습니다. 이런 마음을 알리 없는 시간은 무심히 흐릅니다. 잡히지 않는 시간에 속은 더 타들어 갑니다.
꾸역꾸역 몇 줄 적습니다. 쓰면서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러니 딴생각으로 빠집니다. 근근이 쓴 몇 줄마저도 백스페이스를 누릅니다. 다시 빈 화면만 남습니다. 다시 마주한 빈 화면은 처음보다 더 무겁게 다가옵니다. 무게감 때문에 손도 생각도 꿈쩍하지 않습니다. 출근해야 할 시간은 점점 가까워집니다.
7년을 돌아보면 마음먹은 대로 글이 써진 날이 많지 않았습니다. 의무감에 억지로 쓴 날도, 생각을 쥐어짜 겨우 써낸 날도, 말도 안 되는 내용을 대충 써낸 날도 있었습니다. 그렇게라도 썼기에 7년을 버텨왔습니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모든 순간이 좋은 건 아니었습니다. 회의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여태까지 내가 내가 아니었던 순간은 단 한순간도 없었습니다. 어떤 상황에 있어도 오롯이 나로 존재했습니다. 글을 잘 써낸 나도 나였고, 한 글자도 못 쓴 나도 나였습니다. 버리고 싶다고 버려지지 않고, 도망가고 싶다고 도망 처지지 않습니다. 좋든 싫든 내 옆에는 항상 내가 있었습니다.
어떤 날은 내가 너무 자랑스러웠습니다. 다른 날은 자신에게 엄청난 실망도 했습니다. 또 한없이 자존감이 높아지는 순간도 만끽했었습니다. 내 안에도 이런 모습이 있었나 싶을 만큼 낯선 나를 만나기도 했었지요. 종잡을 수 없지만, 모두 결국엔 나였습니다. 스스로 만들어낸 모습들이었습니다.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건 불편합니다. 자신이지만 자신이길 부정하고 싶을 때가 더 많습니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이라며 더더욱 그렇습니다. 눈을 감는다고 세상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앞만 보이지 않을 뿐 모든 건 제 자리에서 아무 일 없듯 돌아갑니다. 피한다고 피해 지지 않죠.
글이 써지지 않는 날 온갖 고민에 빠지는 것도 결국 글을 더 잘 쓰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몸부림치다 보면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돌아오기 싫었다면 몸부림조차 치지 않았을 겁니다. 포기하는 거죠. 내 안에 나는 아직은 포기하고 싶지 않은가 봅니다. 다행입니다.
오랜만에 넋두리를 늘어놓은 것 같습니다. 속에 담아두었던 말이었나 봅니다. 가끔은 이렇게 투정도 부리고 자책도 하고 반성도 하는 시간도 필요합니다. 마음에 드는 모습으로만 살 수 없으니까요. 오히려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을 끌어안고 다독여 주는 게 더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래야 내가 나를 더 아껴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