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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Nov 26. 2024

맨정신에 술 취해 중얼중얼

술 없이도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중입니다. 바꿔 말하면 술로 스트레스를 이겨내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웠던 적 없었습니다. 술은 나에게 한여름 밤의 꿈처럼 달콤한 일탈을 선사해 줬습니다. 그게 중독인 줄 알면서도 쉽게 끊어내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벗어나는 방법은 스트레스받지 않는 일상을 살거나, 술이 없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술을 끊은 지 1,092일, 그동안 스트레스가 없었을까요? 술을 마셨을 때나 지금이나 고만고만한 일상을 사는 중입니다. 스트레스 회수나 강도 면에서 달라진 건 없습니다. 오히려 하는 일이 더 많아졌기에 그만큼 스트레스도 다양하고 깊이도 달라졌습니다. 그래도 술 없이 꿋꿋이 이겨내는 중입니다. 단순히 술을 끊었기 때문에 이렇게 태도가 달라진 걸까요? 


저는 스트레스받는 상황을 바라보는 태도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문제에 더 집중한다는 의미입니다. 이전에는 스트레스로 인해 만들어지는 겉모습에만 집중했었습니다. 문제의 원인에 집중하기보다 그냥 그 상황이 싫고 회피하고 싶었습니다. 당장 나를 귀찮게 하는 것에서 벗어나는 데 술만 할 게 없었던 거죠. 정작 술을 퍼마셔도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었는데 말이죠.


지금은 스트레스를 만드는 문제에 더 집중합니다. 예를 들면, 오프라인 강연에 모객이 잘되지 않으면 무엇이 문제인지 파고들고 해결책을 찾으려고 더 집중한다는 겁니다. 이때 술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문제만 키울 뿐입니다. 도망치는 심정으로 하룻밤 술을 마시고 나면 아마 다음 날 더 큰 절망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그럴수록 스스로에게 더 실망만 할 뿐이고요.


때로는 술기운을 빌려 넋두리를 풀어내고 싶은 때 있습니다. 오늘 같은 날이 딱 그렇습니다. 하루 종일 비는 추적대고, 찬바람에 움츠려들 때 뜨끈한 아랫목에서 막걸리 한잔 하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알딸딸한 기운으로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속마음을 풀어내고 나면 그나마 속은 후련했을 텐데요. 이렇게 멀쩡한 기분으로 술에 취한 듯 넋두리를 적으려니 기분이 묘합니다. 


3주 내내 모객을 위해 매일 포스팅을 올렸습니다. 반응이 뜨거울 줄 알았습니다. '내 아이의 미래를 준비하는 부모 공부'라는 주제가 자녀를 둔 부모의 이목을 끌기 충분할 거로 짐작했습니다. 뚜껑을 열어보니 아니었습니다. 몇몇 이웃이 관심과 응원의 댓글을 남기는 게 전부였습니다. 물론 시간이 안 맞고 개인 사정과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 등 다양한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맞습니다. 맨 정신에 술주정입니다. 속상합니다. 답답합니다. 내가 원망스럽습니다. 왜 시작해서 스스로를 괴롭히냐고 묻고 싶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면 이렇게 속 끓일 이유도 없었을 텐데요. 가만히 잠자코 있었으면 더 많은 글을 쓰고 더 많은 책을 읽었을 텐데 말입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스스로 불구덩이 속으로 걸어 들어왔을까요?


한편으로 시도하는 과정에서 많은 걸 배웠다고 위로합니다. 시도하지 않았으면 알지 못했을 것들을 알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깨달았달까요. 돈 주고 살 수 없는 경험입니다. 뜻대로 되지 않았기에 차선, 차차선책을 궁리할 수 있었습니다. 가만히 있었으면 절대로 배울 수 없는 것들이죠. 좌절을 보기 좋게 포장하는 멘트이기도 합니다. 같은 빈대떡이라도 이왕이면 해물 몇 개 넣은 게 보기도 좋고 맛도 좋은 것처럼 말이죠.


10시, 손님이 없는 카페 구석에 앉아 말차 라테 홀짝이며 주저리주저리 떠들었습니다. 글로 쓰고 나니 기분이 풀리는 것 같습니다. 굳이 술을 마시지 않아도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글로 쓰는 행위에 이런 힘이 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백지에 옮겨 적는 게 술주정보다 낫습니다. 술값도 안 들고 술 때문에 몸도 안 상하고 살도 찌지 않으니까요. 혹시 모르죠 이 글 덕분에 또 다른 기회가 생길지도요. 


내일 새벽 5시에 눈 뜨면 제일 먼저 스마트폰부터 확인할 겁니다. 요 몇 주 버릇이 됐습니다. 이 버릇은 이번 주가 끝날 때까지 계속될 것 같습니다. 희망은 절대 놓지 않습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니까요. 같은 희망을 품고 내일 아침을 맞을 겁니다. 그러기 위해 이제 이 글을 정리하고 집으로 갑니다. 괜히 알딸딸한 척 비틀대며 집으로 가야겠습니다. 이왕 기분 낸 거 제대로 취한 척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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