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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가 작심삼일로 끝나는 이유

by 김형준

우리는 늘 스스로를 조종한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뇌의 자동 반응을 따라 살아간다. 그 대표적인 모습이 합리화다. 작심삼일이 찾아오면 뇌는 기다렸다는 듯 핑계를 던진다. “야근 때문이야”, “오늘은 회식이니까”, “주말엔 쉬어야 하잖아.” 이 핑계들은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뇌가 우리를 당장의 편안함으로 밀어 넣으려는 생존 전략이다. 문제는 그 전략이 지금의 삶을 유지할 뿐, 더 나은 삶으로 이끌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서른한 살 독립 후, 나는 뇌가 시키는 대로만 살았다. 작은 원룸은 자유가 아니라 충동의 놀이터였다. 유흥가에서 나는 야식과 술에 매일 굴복했다. 배가 부른데도 먹고, 속이 더부룩한데도 마셨다. 다음 날이면 늘 후회했고, “오늘은 가볍게 먹자”라고 다짐했지만 뇌는 늘 다른 속삭임을 했다. “지금 맛있는 게 중요하지, 내일은 나중 문제야.”

뇌과학에서 이를 ‘즉시보상 편향’이라 한다. 인간의 뇌는 먼 미래보다 눈앞의 달콤함을 선택하도록 설계됐다. 나 역시 그 본능에 충실했다. 그 습관은 결혼 후 10년 동안 이어졌고, 몸과 마음 모두 무거워졌다.


마흔넷, 건강검진 결과지는 내게 다른 선택을 강요했다. 이는 두려움이 준 일종의 철학적 각성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두려움은 덕을 깨우는 감정”이라 했다. 그날 내 두려움은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했다. 그래서 즉시 결심했다.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내 삶을 지키기 위해서.

뇌과학에서 말하는 ‘내적 동기’가 생긴 순간이다. 외적 보상보다 훨씬 강력한 힘이다. 이 결심이 있었기에 단식과 운동은 작심삼일이 되지 않았다.


변화는 이유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변화된 미래의 나를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단식을 시작하고 3개월 만에 10kg가 빠졌을 때, 나는 오래 잊고 지냈던 감정을 느꼈다. 가벼움, 자부심, 가능성. 뇌는 이런 긍정적 자극을 기억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미세 보상’이라 부른다. 큰 보상이 아니라, 몸이 좋아지고 옷이 헐렁해지는 작은 변화들이 뇌를 다시 움직이게 한다.

변화된 모습은 또 다른 선택을 가능하게 했다. “이대로 살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고, 그 욕망은 예전 충동보다 더 강력했다. 이는 철학자 사르트르의 말처럼 “우리는 스스로 선택한 모습이 된다”는 걸 몸으로 깨닫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인간은 완벽한 절제의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나와 협상했다. 노력한 만큼 보상하는 방식이다. 몇 달에 한 번 먹는 자장면은 노력에 대한 축하였고, 치킨 한 마리는 도전의 피로를 풀어주었다. 이런 보상은 뇌가 변화의 고통을 견디게 하는 완충장치였다.

행동과학에서는 이를 ‘보상 루프’라고 한다. 작은 기쁨이 행동을 반복하게 만드는 구조다. 뇌는 보상의 종류에는 관심 없다. 기분이 좋아졌는지만 중요하게 여긴다. 이 단순함이 인간을 망치기도 하고, 구원하기도 한다.


습관은 의지로 되는 게 아니다. 구조를 만들면 된다. 이유가 있고, 긍정적 상상이 있고, 작은 보상이 있으면 행동은 자연스럽게 반복된다. 실패가 오면 다시 시작하면 된다. 하루 무너져도, 다음 날 다시 하면 된다. 습관은 성공의 연속이 아니라 실패와 재시도의 반복에서 만들어진다.

뇌는 오늘을 원하지만, 삶은 내일을 원한다. 뇌의 충동을 따를지, 삶의 방향을 따를지는 결국 우리가 선택해야 한다. 더 나은 나를 원한다면 뇌의 자동 조종 장치를 끄고, 삶의 운전대를 되찾아야 한다.


뇌는 단순하다. 하지만 인간은 깊고, 넓고, 가능성이 많다. 우리는 본능에 휘둘리는 존재가 아니라, 본능 위에서 삶을 설계할 수 있는 존재다. 변화는 뇌를 이기는 게 아니라, 뇌를 설계하는 일이다. 더 나은 이유를 만들고, 더 나은 상상을 하고, 더 따뜻한 보상을 선택하는 것. 그러면 삶은 어느새 달라져 있다.


뇌가 약해서가 아니라, 당신은 본능보다 훨씬 더 강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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