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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 이모야 Nov 01. 2023

그럼, 삼촌이랑 결혼해!

순수한 조카의 깜찍한 발언

때는 코시국 초기, 백신 없는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학교와 어린이집은 집합인원을 줄이기 시작하더니 재택이라는 제도가 널리 퍼졌다. 조카들이 다니는 서울에 어린이집도 그랬다.


제주 촌에 살던 나는 이웃 주민이라곤 나무와 잡초, 가끔 출몰하는 꿩과 뱀이 전부였다. 사람을 만나는 게 오히려 어려웠던 지라 마스크도 거의 사용하지 않고 나름 평화로운(?)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맞벌이를 하던 언니는 조카들만 집을 지키는 시간이 길어지자 사태가 잠잠해질 때까지 당분간 나와 함께 지내기로 했다. 쌍둥이 조카들은 생후 2개월부터 나와 함께 쭈욱 같이 살았던지라 내가 엄마대행하는 일은 서로가 익숙했다.


이제 막 7살이 된 녀석들은 엄마의 잔소리를 떠나 마냥 즐거워했다. 택배로 집 앞까지 보내겠다 하면 떼쓰다가도 의젓해졌고 울면 집으로 바로 보낸다 하니 넘어져서 피가 철철 나도 웃음으로 눈물을 꼭 참는 바보같이 순진한 녀석들이었다.


매일 밤 쌍둥이 녀석들은 둘이서 꽁냥꽁냥 떠들다 잠이 들었다. 오늘 뭐가 정말 좋았다고도 하고 엄마랑 떨어진 지 벌써 며칠이 넘었다고 헤아리면서 본인 스스로를 기특해하기도 했다.


하루는 문득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 이모는 왜 여기서 혼자 살아? 이모는 한국(서울) 사람이지?(많은 아이들이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오면 외국으로 혼동한다)

- 여기서 일하니까~ 여기 제주도에서 살지.

- 우리랑 같이 살면서 일하면 안 돼? 같이 살았었잖아.

 

태어나서부터 거의 6년을 함께 살았으니 온 가족이 다 같이 사는 게 더 자연스럽고 좋았나 보다.


- 음.... 어른이 되면 엄마아빠랑 떨어져서 살아. 결혼해서 따로 살기도 하고 일을 다른 데서 하기도 하고. 너희 엄마아빠도 할머니 할아버지랑 따로 살지? 어른이 되면 그렇게 하는 거야. 대신 종종 다 같이 모여서 같이 밥도 먹고 그러잖아. 그렇게 독립이란 걸 하는 거야.

- 그럼, 이모도 결혼할 거야?

- 좋은 사람을 만나면 언젠간 하겠지?


녀석들은 낯선 아저씨에게 이모를 뺏기고 또 다른 아이를 본인들보다 예뻐하는 걸 몸서리치게 싫어했다. 그래서 내 대답에 분위기는 무거워졌고 한동안 입을 닫고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방방 뜨는 목소리로 외친다.

Photo by Sookyong Lee

- 이모, 그럼 삼촌이랑 결혼해라! 그럼 되겠다!


둘은 까르르 웃으며 흥분가 듯한 박수를 쳐댔다.


생각지도 못한 기발한 방법을 생각해 내니 나도 할 말이 없어졌다. 본인들과 가장 잘 놀아주는 삼촌이랑 이모가 결혼하면 둘 다 붙잡아 둘 수 있는 그들에겐 금상첨화인 조건이었다. 가족끼리 결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하나 잠시 고민하다 문득 장난기가 솟 말장난을 시작했다.


- 너네 삼촌 너무 어리잖아~ 나보다 9살이나 어린데?

- 괜찮아~ 삼촌 키가 더 크니까 더 나이 많아 보여. 그냥 오빠~하고 부르면 아무도 모를 거야.


하고 말하더니 둘이서 또다시 꺄르륵 웃는다. 일단 삼촌의 의사를 물어보기로 하고 이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나도 모르게 풋 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나도 내 동생 같이 내 말 잘 듣는 사람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30년 가까이 내 입맛대로 훈련시키면서 키운 아이인데 서른 살 넘은 어른을 내 구미에 맞게 세팅한다는 건 상상 속에나 있을법한 일이니까.


해프닝이 있고 3년이 지난 지금, 쌍둥이 조카는 아직도 이모가 늙으면 본인들이 부양할 테니 결혼하지 말란다. 엄마한테는 미안하지만 필요하다면 이모딸 하겠단다.

백번양보해서 남자친구 있어도 되고 결혼은 해도 되는데 아기는 절대 안 된단다. 이모 아기 생기면 사랑을 뺏기니 그건 절대 싫단다. 귀여운 녀석들이다



결혼을 안 해도 아기는 생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가 조카들은 멘붕이 왔었다. 조카들이 언제까지 나를 엄마처럼 친구처럼 대해줄지 모르겠지만 순수한 마음은 가능한 오래오래 간직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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