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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순댕 Feb 10. 2021

[그빵사]98. 시나몬 롤

오늘은 '카모메 식당'

[그냥 빵을 사 먹으면 안 되는 걸까?]
초보 홈 베이커의 빵 만들며 드는 생각들




어제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만들면서 생각나는 영화 하나가 있었다.


바로 영화 '카모메 식당'이었다. 헬싱키에서 작고 아담한 식당을 운영하는 이야기인데 스토리 및 소품 그리고 음식들이 아주 먹음직스러워 보여서 음식 영화 중에서도 많이 회자되는 영화이다. 나 또한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과 함께 생각날 때마다 보는 영화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주인공이 만드는 시나몬 롤은 어찌나 먹음직스럽던지 홈베이킹을 시작하기 전에 원데이 클래스로 배우러 갔던 적도 있었다. 그땐 베이킹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때라 수업을 들으면서 내 머릿속에는 '시나몬 롤 = 고난이도 베이킹'이라는 인식이 박히게 되었다. 그리하여 시나몬 롤을 만들어 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는데 어제 리틀 포레스트에 나오는 케이크를 만들어보니 문득 카모메 식당의 시나몬롤도 만들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시피 영상을 찾아보았더니 '무반죽 접어서 만드는 빵'이라고 해서 짧은 시간에 많은 힘을 들이지 않고도 시나몬롤을 만들 수 있는 영상을 발견했다. 그래서 계획된 건 아니었지만 오늘은 시나몬 롤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이 레시피는 특이하게 빵인데 강력분을 쓰지 않고 중력분을 써서 이스트, 우유, 계란, 버터, 설탕, 소금을 넣고 섞은 뒤 많이 치댈 필요 없이 뭉쳐준 다음 15분을 발효하고 나서 말 그대로 반죽을 사방면으로 접고 다시 20분 발효, 그다음도 동일한 방법으로 접은 뒤 15분을 발효하면 끝이었다. 마지막 발효 때 손가락을 넣어서 다시 되돌아오지 않아야지 발효가 잘 된 건데 테스트를 해 보니 덜 된 것 같아서 30분 정도 더 발효를 해주었다. 그 사이 계피가루와 설탕을 섞어서 필링도 만들었다. 반죽을 가져와서 밀대로 밀어 가로로 긴 직사각형 모양으로 핀 다음 말랑한 버터를 얇게 펴 발라 준 뒤 필링을 가득 뿌려주는데 원데이 클래스 때 선생님이 필링이 많이 들어가야지 맛있다고 조금이라도 테이블로 떨어뜨리지 말고 다 쓸어 담으라는 목소리가 계속 맴돌아서 피식피식 거리며 필링을 최대한 떨어뜨리지 않도록 뿌려주었다. 이제 시나몬롤의 가장 재밌는 시간이 다가왔다. 시나몬 롤은 오직 이 과정을 위해 직접 만드는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도 있겠다. 반죽을 김밥처럼 돌돌돌 만 뒤 사다리꼴 모양으로 자르고 가운데를 양 손의 새끼손가락으로 푹 누르면 영화에서 보던 그 시나몬 롤 모습이 된다. 클래스 때는 이 모양을 나비모양이라고 말했던 것 같다. 온전한 나비모양이 8개 정도 나오고 양옆 잘라낸 것을 모아서 또 하나의 나비를 만들었더니 총 9개의 시나몬 롤이 나왔다.

굽기 전 반죽

또다시 10분 발효 후, 계란물에 우유를 섞은 것을 바르고 영화의 비주얼과 완전히 똑같이 만들려면 우박 설탕이라는 굵은 설탕이 필요한데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의 슈게트를 만드느라고 사뒀던 우박 설탕이 있어서 똑같이 만들 수 있었다. (제39화. 슈게트 참고) 오븐에서 굽고 난 뒤 식힘망 위로 바로 옮겨서 식히는데 외출하시고 부모님께서 집에 들어오시면서 오늘도 빵 냄새가 너무 좋다고 하셨다. 구움 색도 맛깔나게 잘 나오고 위에 뿌린 우박 설탕이 그 멋을 더하였다. 커피와 함께 맛을 보는데 가득 넣은 필링이 너무 달달하면서 맛있었다. 출출한 날의 간식으로는 정말 딱이겠다 싶었다. 부모님께서도 맛나게 드시면서  "엄마 외출한 사이 이거 다 만든 거지? 요즘 많이 익숙해졌나 봐. 손이 빨라졌네."라고 하셨다. 오후 2시에 시작해서 4시 반에 끝났으니 빵 치고는 굉장히 빨리 한 것에 속했다. 물론 영상 자체가 간결한 레시피로 알려준 덕도 있지만 확실히 엄마 말씀대로 처음 베이킹을 했을 때보다 시간도 많이 단축되고 힘도 덜 들었다. 성장이란 걸 했구나 하고 새삼 느끼는 시간이었다.


극 중에서 시나몬 롤은 주인공이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중간 타협점 역할을 맡고 있다. 헬싱키의 작은 마을에서 일식을 소개하고 싶었으나 낯선 이국인이 하는 식당에는 쉽사리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았다. 언제든 가볍게 들러서 먹고 갈 수 있는 동네 식당을 원하는 주인공이 그 중간지점으로 생각한 것이 '시나몬 롤'이었다. 커피와 함께 시나몬 롤을 파니 사람들이 경계심을 낮추고 들어오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그렇게 원하던 오니기리까지 소개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 스토리라인을 매우 좋아한다. 소신을 지키면서도 타협을 하는 고상한 자세가 매우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상과 현실 사이 어느 지점에 와있을까?

나에게 '시나몬 롤'은 어느 것일까?



냄새도 좋고 맛도 좋은

시나몬 롤이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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