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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울 Feb 28. 2019

예민한 딸

아빠와 방문 사이 

나에게 아빠란 흑기사 같은 존재이다. 

내 섬세한 감정을 모두 어루어 만져주지는 못하는 경상도 상남자이지만, 나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술에 잔뜩 취한 목소리로 '사랑하는 딸, 아깐 미안했다.' 라고 말해주는 따뜻한 남자이다. 어느덧 젊었던 아빠의 모습이 아득하고 저녁을 함께 먹을 때 아빠의 정수리 머리숱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보았을 때, 내가 어린 시절 잡고 놀았던 머리가 사라진 거 같아 울적해하며 밥을 먹곤 하는데, 우리 사이가 처음부터 이렇게 애틋했던 것은 아니었다.


고등학생 때였다. 그림 그리는 것이 좋아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를 꿈꾸고 있었는데, 안정적인 회사를 다니고 있는 아빠는 내가 미술학원에 등록하고 싶거나 그림을 그릴 때도 내 꿈을 탐탁지 않아했다. 그러다 어느 날 사건이 터졌는데, 아빠가 내 방에 있는 피아노를 옮기다 내가 한 달 동안 열정을 쏟아 그렸던 그림에 물을 흘린 것이다. 그때의 나를 돌이켜보면 어쩜 그렇게 못되게 화를 낼 수 있는지 놀라울 정도로 꽥꽥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나의 예술적 감각은커녕 현실적인 이야기만 늘어놓으시는 아빠가 너무 미워 '아빤 나랑 말이 안 통해'라고 하며 방문을 쾅- 닫아 버렸고, 시간이 흘러 대화가 사라지는게 익숙해질때즘 먼지가 쌓여 있던 나의 어릴 적 앨범을 발견했다. 

그리고  거기서 발견한 사진 하나.

다정하게 그림을 가르쳐주는 아빠

사진을 멍하니 보다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내가 그림을 좋아하게 만들어 준건 아빠 때문이었다. 회사 생활을 오래 한 아빠도 분명 꿈이 있었을거다. 하지만 나와 동생이 태어나고 우리 가족이 꿈이 돼버린 아빠에게 방문 하나를 두고 너무 외롭게 만들어 버린 건 아녔는지, 그 날 피아노를 옮겼던 것도 내 방에 작업공간을 만들어주려고 했던 거라는 걸 나중에서야 알았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나는 현실적이게 안정적인 직장을 선택했고, 회사를 다닐수록 아빠의 30년 직장생활이 존경스러우면서도 애잔하다. 어른이 되는 과정이려니 하는 날도 있었지만, 다양한 사람과 온갖 경험들이 생길수록 처음 겪는 감정이 나타나고 산 하나를 넘으면 더 큰 산이 나오는 것처럼 힘든 경험을 넘어서면 더 큰 고난이 나를 막아서는 날엔 집에 들어가는 택시 안에서 아빠에게 전화를 건다. 그럼 아빠가 항상 해주는 말 '난 항상 네 편이야' 


감정 표현이 서툴러도 한결같이 따뜻한 아빠, 

아빠가 우리 아빠여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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