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ng Crosby - Winter Wonderland
세상이 말세다. 밀가루 값은 30%가 뛰고 딸이라는 것이 기후위기 운동을 한다고 비싼 고기반찬을 그대로 남기질 않나, 또 자꾸 옛날 운동권 마냥 온몸에 띠를 두르고 허구한 날 밖으로 돌아다닌다. 아들놈은 80년대 히피 마냥 머리는 죽 길어가지고 아주 꼴 사납기가 말이 아니다. 토요일 아침엔 모름지기 온 가족이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아침을 먹어야 하는데, 아들놈은 아홉 시가 돼도 일어날 생각을 안 하고 딸년은 한쪽에 블루투스 이어폰을 꽂고 밥을 퍼먹는지 핸드폰을 퍼먹는지 영 모르겠다. 요오즘 애들이 말이야, 소리라도 할라 치면 아내는 '당신, 요즘 그런 소리 하면 큰일 나. 완전 틀딱 되는 거야. 조심해'라며 입을 막아버리니 원.
이런 나에게 유일한 낙이 되는 건 라이딩이다. 최근에 큰맘 먹고 고가의 로드바이크를 하나 장만했다. 또 이런 고급 자전거를 탈 때 후줄근할 순 없으니 헬멧도 같은 브랜드에서 샀고, 자외선 차단이 되는 쌔끈한 디자인의 고글도 하나 장만했다. 이런 답답한 집구석에 박혀있을 바엔 빨리 아침 먹고 한강변으로 라이딩을 가는 게 여러모로 정신 건강에 좋은 일이다.
"어어어어?"
싸구려 MTB를 탄 어린 남자애가 가양대교 쉼터에 들어오는 데 속도도 줄이지 않고 내게 마구 돌진했다. 어? 그리고 나한테 사과도 안 해? 요즘 애들이 아무리 요즘 애들이라도 정도가 있지.
"야이 새끼야 일로와 이 새끼야. 너 나 들어오는 거 봤어, 못 봤어. 부딪힐 뻔했으면 사과를 해야 할 거 아니야 이 새끼야."
"아저씨, 나 아저씨한테 죄송하다 했잖아요. 근데 반말을 까네 이 아저씨가? 야, 나도 성인이야. 똑바로 말해, 이 아저씨야."
"뭐 이 새끼야? 너 말뽄새가 그게 뭐야 이 새끼가 보자 보자 하니까. 지가 잘못하고 바락바락 대드네?"
사람 칠 뻔하고서도 뻔뻔한 이 새끼에게 말로 다그치는 게 불가능하다 느낀 나는 곧바로 멱살을 잡았다. 이 새끼는 뻔뻔하게 나를 똑바로 노려보며 따박따박 말대답을 했다.
"똑바로 사과하라고, 이 새끼야."
"이야, 나이 어리다고 멱살 잡고 반말 찍찍 뱉는 게 어른이라고. 니가 혼자 빡치느라 내 사과 못 들었겠지. 이거 놔라."
이 어린 새끼랑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달려와 나와 이 새끼를 떼어놓으려 했다. 어림도 없지. 요즘 애새끼들은 이렇게 싸가지가 없어서 큰 일이야. 말세야, 말세. 아주 호되게 가르쳐야 해.
"아, 선생님, 제가 이 학생 수업 조교인데, 제가 상황 파악이 안 돼서요, 혹시 저랑 이야기하지 않으실래요? 저희가 단체 라이딩을 하는 수업이라 조금 불편을 끼쳤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랑 이야기하시죠!"
어쩌다 호들갑 떠는 어린년까지 붙어서 쌍으로 지랄이다. 남자들은 남자들의 언어로 대화를 해야지, 이런 년들은 남자의 언어는 추호도 이해 못한다.
"선생님, 제가 이 학생 수업 강사입니다. 저랑 이야기하시죠."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건장한 남자가 기어코 이 새끼와 나 사이를 분리했다. 이 강사라는 양반을 보아하니 덩치도 크고 꽤나 힘센 사람처럼 보였다. 음, 남자 대 남자로 말이 통할 진정한 상대를 찾았다. 나는 강사 양반에게 저 싸가지 없는 어린아이의 행태를 설명했고, 강사는 자기가 잘 타이르겠다며 남자애를 기어코 데려왔다.
"자, 이 상황이 들어보니 일방적인 잘잘못을 따지는 상황은 아닌 것 같으니, 서로 사과하고 각자 갈 길 떠납시다. 학생, 사과하세요."
강사가 근엄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바로 이거지. 아직 쓸만한 젊은이들이 많군.
"죄송합니다. 그래도 다짜고짜 멱살 잡은 것에 대해선 사과하세요."
"뭐, 이 새끼야? 잘못했다고 빌어도 모자랄 새끼가 정신을 못 차렸네. 야, 니가 어른이야? 어른이면 어른답게 행동해."
"내가 사과했는데 니가 멋대로 화내느라 못 들은 거잖아. 똑바로 사과하라고. 반말 찍찍 뱉고 멱살 잡는 게 어디 어른이라고"
나는 강사를 쳐다봤고, 강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뭐야, 강사면 지도를 해야 할 거 아니야.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젠장.
"내가... 하... 내가 멱살 잡아서 미안합니다. 됐지요?" 눈을 질끈 감고 대답했다.
"네, 아저씨~ 저도 옆에 안 보고 급하게 들어와서 죄송합니다^^. 안전한 라이딩 하세요~" 남자아이는 세 톤 높은 목소리로 정중하게 사과했다. 나는 급격한 태도 변화에 놀라 벙 찌고 말았다.
"... 어우 싸가지 없는 개저씨 좀 보소."
"개저씨한텐 저렇게 해야 해. 잘했어."
"... 개저씨한테 잘못 걸렸네. 고생했다."
멀리서 들려오는 무리의 목소리들이 귓가를 스쳤다. 젠장... 세상이 말세긴 말세다. 내가 열심히 일해서 다시 세워놓은 대한민국이 저런 싸가지 없는 새끼들에게 넘어간다니...
집에 돌아온 나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막걸리를 벌컥벌컥 마시며 좋아하는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따라 불렀다. 그때 아들놈이 방에서 튀어나와 잔뜩 찡그린 얼굴로 내 귀에 이어폰을 꽂아놓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이 어린 노무 섀끼들이 감사함을 몰라서 큰일이다. 안방에서는 때 이른 크리스마스 캐롤이 흘러나온다. 여보! 시끄러우니까 당장 TV 소리 좀 줄여! 아직 11월인 거 몰라? 여기가 미국이야? 뭔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야. 정말 나라가 어찌 될라고 이래!
Nov. 14th of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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