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병리적이지 않을 만큼만 산만하다.
나는 병리적이지 않을 만큼 산만하다. 나는 모더레이트한 산만함에 손쉽게 ADHD 따위의 병명을 갖다 붙이는 걸 굉장히 경계한다. 나는 낭만적인 모더니스트로서, 휘발하는 현상을 명료하게 언어화하는 것에 집착한다. 나는 책임감 있게 산만하다.
나의 산만함은 여태까지 꽤나 많은 이름으로 불렸다 - 멀티태스킹, 그냥 존나 바쁨, 정신없음, 일 많음. 하지만 난 별로 바쁘지 않은 - 싱글 태스킹 - 정신 다소 존재 - 일 적절히 있음 상태일 때도 산만하단 사실을 이제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적절한 메타인지의 시간 끝에 나는 꾸준히 불안하고 생각이 너무 많아서 산만하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나는 업적으로 삶적으로 모든 것을 언어화하고 가시화하는 일을 해와서인지, 나의 산만함은 꽤나 뚜렷한 오디오비주얼로 기술된다. 나의 생각은 적을 땐 쓰리채널(3-channel), 평소엔 식스채널(6-channel), 많을 땐 나인채널(9-channel)로 프로젝션 된다. 어두운 방 안에서 여러 대의 CCTV를 지켜보는 야간 경비원처럼 나는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의자에 앉아 주체적으로 방사되는 생각들을 목도한다. 스크린 속 방사되는 생각들은 분명 나의 생각들이지만 나는 의자에 손발이 묶여 그 생각들을 제어할 수 없다. 오 쏘 무기력.
이게 어떤 현상인지 감이 안 잡힐 지루한 그대들이여, 이것은 당신이 보고서를 작성하며 보고서에 적히는 사건들이 일어났던 시간들을 복기하고, 그 기억 속 등장인물의 생애에 대해 생각하는데, 그걸 사고하면서 듣고 있는 음악이 있다. 그 트랙이 실린 앨범의 위대함에 대해 감탄하고, 그 음악을 내가 베이스로 연주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보다가 베이스 커버가 있는지 검색해 보고, 없으면 그냥 그 음악을 귀로 따기 시작한다. 동시에, 넷플릭스/유튜브로 다소 가벼운 영화/드라마/예능을 시청하면서 새로운 정보가 입력되면 친구한테 그 내용을 카톡으로 바로바로 보내는 것이다. 이게 데일리 싱글태스킹이다.
지금 산만함에 대한 고찰을 하는 와중에도 넷플릭스에서 전자담배 쥴(JUUL)의 흥망성쇠를 다룬 다큐를 보며 나의 쥴 첫 구매부터 (약수역 6-3호선 환승구간 GS편의점) 흡연 기간 동안의 경험을 돌아보면서 반영구 눈썹 문신 제거 후기를 찾아보고 있다. 나의 눈썹문신을 지우고 싶어서는 아니고, 간혹 눈썹을 아예 빡빡 민 나의 얼굴을 상상하는 것을 즐기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갑자기 <헤어질 결심>에 나오는 서래가 해준의 주머니에서 립밤을 꺼내 발라주는 것이 은유하는 것에 대해 저릿하게 감탄한다. 아, 나는 쥴 팟 중에서는 민트맛을 가장 좋아했다.
다시 메인 채널로 돌아와서, 나는 이 산만함을 쫓아내기 위해 다양한 솔루션을 찾아다녔다. 가장 많이 추천을 받은 게 요가와 명상인데, 요가와 명상을 통해 삶의 여유와 의미를 성공적으로 찾은 사람들은 평생 산만한 적이 없는 사람이다. 생각을 비워라 / 하지 마라 / 없애라는 건 나의 머리에는 성립되지 않는 전제이다. 그럼에도 나는 도전을 했었다. 한 번은 3분짜리 명상 음악을 틀어놓고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을 못함에 대해 생각하다가, 오늘 오전 7시 30분부터 순차적으로 해야 하는 일들에 대해 생각하다, 그 일들에 관여되어 있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다, 음악이 너무 지루하고 끝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눈 한쪽을 살짝 떠보니 고작 음악이 30초가량 흘렀더라. 오케이, 3분 명상 실패는 '신체적 움직임의 부재'에서 기인한다. 따라서 요가소년 유튜브를 따라 모닝 요가 20분 루틴을 도전했다. 어느 순간 요가소년 유튜브를 1.75배속으로 보고 있는 나 자신 발견. 지루하다, 지루해. 실패!
어프로치가 잘못되었다. 생각을 소거하는 방향으로 갈 수 없다. 그렇다면 더 큰 파도로 생각의 잔물결을 눌러야 한다. 그것은 공포. 공포로 생각을 눌러버려야 한다. 나에게는 어렸을 적 문화센터 수영강사로부터 시작된 어마무시한 물 공포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없애기 위해 수영을 시작했다!
수영은... 정말 좋은 운동이다. 지면운동만큼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아 근골격계에 미치는 부담도 적어 노인이나 장애인도 상대적으로 평등하게 접근할 수 있는 운동이다. 물에 저항하고 순응하며 몸을 미끄러뜨리는 행위는 달리기나 웨이트와는 다른 중독성이 있다. 이딴 말을 지껄이는 이유는 나는 이제 수영장 바닥에도 식스채널 생각을 방사할 수 있을 만큼 수영에 능해졌다는 뜻이다. 잔류하는 물 공포는 나의 사고채널을 압도할 만큼 크지 않다. 수경을 끼고 하늘색 수영장 바닥에 생각을 방사하면 마치 자동차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처럼 생경하고 낭만적이다. 그래서 프로젝션 하는 채널이 늘고 물에서 공상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지금은 하루에 약 2-30분 정도만 생각을 짓누를 수 있다. 2-30분은 크로스핏 와드를 하는 시간이다. 이것도 매번 성공적이지 않아 사고채널을 압도할 새로운 파도를 찾고 있다. 태경이는 프리다이빙을 추천했다. 프리다이빙을 잘하게 되면 맨 몸으로 물아래 30m까지 내려갈 수 있다는데, 그때는 정말 아무런 생각 없이 "살아야겠다"는 단일한 본능만이 존재한다고 했다. 아주 매력적이야. 혼자 시도하기엔 나는 다소 샤이하고, 소중한 친구와 함께 도전해보고 싶다. 올해가 가기 전에 꼭!
나의 산만함은 나의 얕고 넓은 지식에 기여했다. 내가 멀티채널로 삶을 운용했기 때문에 향유하고 감탄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다. 나는 나의 산만함을 굉장히 사랑하는데, 모든 사랑에는 혐오와 불안과 집착이 따를 수밖에 없다. 이것조차 나의 사고를 향한 러브레터야. 산만한 내 바디 앤 소울, 요즘 좀 별로지만 그래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