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Fish Talk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베르 Mar 01. 2019

꽃 선물은 사양할게요.



04. 꽃 선물은 사양할게요.








그러니까 늙지 않는 여자가 '미술교사'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던 어느 해의 5월, 스승의 날이라며 어떤 아이의 엄마가 늙지 않는 여자에게 꽃다발을 선물했다.  


"선생님, 꽃 좋아하세요? 그동안 감사했어요. 고생 많으셨어요."


 아이와 엄마의 물음에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옅은 미소를 보이고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 일을 마치고 한 손에 꽃다발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던 여자는  생각했다. '아.. 이 꽃다발도 곧 말라죽겠구나...'  여자는 그날 아이와 아이 엄마에게 받은 꽃다발 선물이 제법 마음에 들었지만, 사랑을 받아본 적 없는 여자는 꽃을 키울 줄 모른다. 받아도 그저 바라만 볼뿐이었다.


 결혼을 하고 여자의 집에는 꽤 많은 식물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그녀의 취향이라기 보단 그녀 남편의 선택이었다. 여자는 우스갯소리로 자기는 식물을 죽이는 취미가 있다고 하곤 했다. 그런데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빨리 식물들은 그녀의 집에서 견디지 못하고 말라죽어갔다.

 여자의 남편은 여자에게 '식물 키우는 걸 좋아할 줄 알았어. 좋아하지 않았었나?' 하고 묻곤 했다. 그건 착각이었다. 여자들은 모두 식물을, 꽃을 좋아할 거라는 건 남자들이 하는 흔한 착각 중 하나. 여자는 꽃이야말로 자신이 받아본 선물들 중 가장 실용성 없는 선물이라고 말하려다 말았다. 그동안 남편이 선물 해준 꽃들이 생각나, 그가 상처 받을까 봐 차마 그렇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생각해보면 남편 말고도 결혼 전 만나던 남자들은 종종 여자에게 꽃 선물을 했다. 그때마다 여자는 사양하지 못하고 옅은 미소로 꽃을 받았다.


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늙지 않는 여자는 그것을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꽃 선물을 해줬던 남자들 중, 여자는 아직도 종종 떠오르는 몇 명의 남자들이 있다. 첫사랑은 정말 시답지 않은 남자였다. 스무 살이 갓 넘어 대학생활을 하면서 만났던 남자인데, 꽤 오랫동안 만나온 여자 친구가 있으면서도 밤이면 여자를 차에 태워 집에 데려다주고, 밤새도록 통화를 하고, 알 수 없는 문자들을 보내곤 했다. 그 남자에게도 종종 여자는 꽃 선물을 받았다. 여자는 차마 "이럴 거면 , 그냥 여자 친구 따위는 뻥 차 버리고 나한테 와!"라고  말하지 못했다. 여자는 그들의 행복을 빼앗는 짓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았다. 시답지 않은 남자가 시답지 않은 이유로 여자 친구를 정리하고 여자를 차지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싱겁게도 시답지 않은 남자와의 연애는 곧 끝이 났다. 여자는 다시 생각해도 그는 너무 웃기는 남자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의 결혼 소식에 시답지 않은 남자가 먼저 만나자고 연락이 온 것이다. 이미 결혼 날짜를 다 잡아 놓은 여자에게 책 한 권과 꽃 한다 발을 건네주었다. 그의 차 안에서 무슨 대화가 오고 갔는지 여자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날 처음으로 늙지 않는 여자는, 그의 차에서 내리자마자 자신이 받은 꽃다발을 쓰레기 통에 버렸다. 아마 그때부터 생각했던 것 같다.  '꽃은 정말 실용성 없는 선물이구나. '


 그 후로도 몇몇의 남자가 여자에게 꽃을 가져다줬다. 그림을 그리던 어떤 남자는 매사가 너무 진지해서 여자가 그 세계에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이 굴었다. 하지만 막상 여자의 세계로 그가 들어오기엔 그 역시도 시답지 않은 남자였다. 광고 회사에서 일하던 어떤 남자는 여자를 만나면 꽃다발과 함께 허세를 늘어놓기 바빴다. 눈앞에 있는 여자가 아니어도 자신은 잘 나간다는 식의 대화를 주고받곤 했다. 여자는 되물었다. 그러면 자신 말고 다른 여자를 만나는 게 어떻겠냐고. 그 남자는 '넌 참 이상한 여자야' 란 말을 남기고 여자를 떠났다. 사진을 하던 어떤 남자는 밥 사 주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식사 약속을 한 장소에 가면 여자에게 미리 준비해온 꽃다발을 건네주곤 했었다. 그 남자는 여자가 만나본 유일한 이혼남이었는데, 그에겐 초등학생 딸아이가 있었다. 늙지 않는 여자가 지금보다 훨씬 더 젊었을 때, 그러니까 훨씬 더 어리고 어렸을 때 만났던 그 남자는 자신의 딸과 여자를 제대로 구별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그 연애도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늙지 않는 여자에게 꽃을 주던 남자들은 사랑 대신 꽃을 주던 남자들이었다. 그래서일까, 사랑을 받아 본 적 없는 여자는 꽃을 키울 줄 모른다.




'꽃 선물은 사양할게요. 꽃은 사 오지 마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불행을 모르는 깨끗한 얼굴을 마주하는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