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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Emilia Moment Jun 22. 2024

깨어 있는 사람만이 자기 삶의 주인공 - 김창흡

#오늘하루영감문장

그 누구인들 나이 들며 망령되고 천하고 싶겠는가. 삶이라는 게 모두에게 처음이듯. 늙음이라는 것도 이 세상에 와 처음 겪는 낯설고 어려운 삶의 과제이기에 때론 망령되고 때론 천해지기도 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적응해 가는 것일 뿐...


'늙음을 탄식하는 자는 천하다'라는 김창흡의 말에 괜히 속마음을 들킨 듯하여 발끈했지만 인정하고야 만다.


나이 들고 늙는다는 것은 어쩜 이런 것이겠지. 받아들이기 싫지만 결국엔 받아들이고야 마는 것.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 돌이키고 싶지만 이제는 영영 그럴 수는 없는 것.


빠져버린 이처럼.



심연 김창흡(1653 - 1722)은 낙론계의 대표 학자로 성리학에 정통하고 수학과 장자 철학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문학에도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겼다.

1623년 진사시에 합격하지만 이후 과거 시험장에는 발을 끊고 죽기 전까지 산수에 은둔하며 학문과 문학에만 침잠했다. 수암 권상하는 이런 김창흡에 대해 "죽은 다음의 이름을 위하지 않고 산수의 즐거움을 지난 사람은 내가 보기에는 심연 선생 하나뿐이다."라고 평했다.


김창흡은 시학 방면의 성취로 더 주목을 받았지만 산문의 성취도 지나칠 수 없는데 유연한 정신과 호한한 학식으로 투식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격식을 창조하고자 했다. 그의 문장은 참신성이 어우러진 독특한 풍격을 보여주는 데 <이가 빠지다>는 일상에서 깊은 통찰을 이끌어 내는 사유의 힘이 두드러진 산문으로 평가된다.


학문이 높은 옛 선현이라 해서 늙음을 처음부터 쉽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닌가 보다. 김창흡은 이가 빠지자 "깜짝 놀라 거의 눈물이 줄줄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라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러고는 짧은 산문에서 몇 번을 '다시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라고 말한다. 그런 그의 모습에 왠지 모를 친근함과 늙음의 서러움은 비단 나만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심한다.  

그러한 몇 번의 사유 끝에 그는 이가 빠진 것의 장점 중 하나로 "형체가 일그러지니 고요함에 나아갈 수가 있고 말이 헛나오니 침묵을 지킬 수가 있다."라고 말한다. 그러고는 "그 손익을 따져 보면 얻는 것이 훨씬 더 많지 않겠는가?"라고 자문도 한다. 그러고는 이를 위한 시를 남기며 산문을 마무리한다. 재밌고 멋진 분이다. 이 분은 필시 이가 빠졌어도 멋진 웃음을 가진 선비였을 듯하다.


이여! 이여
자네 나이 얼마던가?

한 갑자를 보내면서
온갖 진미 다 맞봤지

공 이루자 물러나고
보답 다해 떠나가네

나는 내 이를 통해
조화를 깨달았네

찬란한 저 별들도
떨어져 운석 되고

무성한 나뭇잎도
서리 맞아 낙엽 되니

이로부터 모든 일에
근심 걱정 없게 되어

고요히 자취 거둬
묵묵히 도 지키리

탑상 머리 편안하니
온갖 인연 부질없다

고기 없이 배부르고
통안도 필요 없네

깨어 있는 사람만이
바로 주인공이라네

- ​김창흡 <이가 빠지다> 중에서

출처: (출처: 한국산문선 5 - 보지 못한 폭포 | 김창협 외 | 정민, 이홍식 편역 | 민음사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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