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부터 방치된 모든 것들에 대한 사과문.

by 승민

이 글은 생각해보면 한때의 쓰임으로 그 소명을 다하고 나로부터 점차 잊힌 것들에 대한 사과문이다. 그들은 한 시절 편리함이라는 고마움을 내게 남겨줬고 노쇠함과 불필요함에 점차 잊혀가는 순간까지도 불평 한마디 없이 묵묵히 자리를 지켜주었다. 모두를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음에 가슴이 아프지만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그들에게 큰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제일 먼저 생각나는 자전거에게 미안하다 말해주고 싶다. 작년 봄. 처음 네가 집으로 도착했을 땐 커다란 박스에 쌓여 분해되어 있었지. 하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설명서를 보며 차근히 조립하여 완성하였고 거울과 라이트를 달아 실용성을 높였던 기억이 나는구나. 중식 레스토랑에서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일 할 당시. 출퇴근 시간을 15분 이상 줄여준 점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하며 네가 아니었다면 출근 전의 여유도, 퇴근했을 때의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내리막길을 달리는 행복감도 없었을 거야. 현재 왼쪽의 브레이크의 파손과 바퀴의 바람 빠짐 현상으로 인해 현관 복도에서 방치하고 있는 점 진심으로 사과하며 빠른 시일 내로 너의 부상을 치료하여 전처럼 함께 달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도록 노력할게.


그리고 안경집에 넣어져 3층 서랍장의 맨 아래 칸 깊숙한 곳에서 잠들고 있는 선글라스에게도 사과의 말을 전한다. 네가 잠든 지가 햇수로 9년에 접어드는구나. 내가 참으로 무심했다. 너를 처음 만난 건 2009년 라섹 수술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자외선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한 핑계로 당시 유행했던 너를 어머니에게 부탁드려 내 손에 넣었을 때의 행복감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지. 그 이후 어딜 가든 넌 내 눈에서 떠나지 않았으며 직사광선으로부터 날 지켜주었단다. 더불어 패션으로도 한몫 단단히 했던 너의 모습이 눈에 선하구나. ‘3일 그리고’라는 독립영화의 동반 출연을 끝으로 너는 3층 서랍의 그것도 맨 아래층의 감옥 안에서 태양과는 거리가 먼 어둠 속에 잠들어 갔고 너를 대체하는 다른 녀석이 등장함에 얼마나 시기 질투하며 아파했을지 네 맘을 헤아리지 못한 점 정말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내가 다시 잠든 너를 언제쯤 보듬어 줄지 기약할 수 없구나. 현재 너를 대체하고 있는 녀석의 디자인이 퍽이나 마음에 들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언제고 너를 사용할 날이 온다면 그 간의 시름을 날려버릴 만큼 멋진 순간에 너와 함께 하고 싶구나. 가장 아플 때 나의 눈을 지켜주어 감사하고 이렇게 방치해서 정말로 미안하다.


마지막으로 내가 한때 무척이나 아꼈던 크로스백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한다. 너를 처음 만났던 건 2009년 가을 무렵이었을 거야. 뒤로 매는 백팩에 질려갈 때쯤 우연히 백화점의 한 코너에서 너를 만났지.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망설였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놓치면 후회하겠다 싶어 너를 구입했단다. 그렇게 한참을 너와 함께 많은 곳을 거닐었지만 나의 오른쪽 어깨는 한쪽으로 기울어만 갔었어. 너에게 너무 무거운 짐들을 의지 했던 건 아닌지 새삼스레 미안하구나. 배우에게 어깨 비대칭은 외관적으로 보기 안 좋기 때문에 그때부터 너를 멀리 했던 것 같아. 그래도 넌 자전거와 선글라스보다 나은 편이라고 생각해. 너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잊지 못해 가끔 장을 보러 갈 때 너를 사용하곤 하니 말이야. 언제고 내 곁에 있어주는 점 늘 고맙고 앞으로도 큰 짐은 지우지 않겠다고 맹세할게.


PS. 끝으로 이밖에도 거론하지 못한 나로부터 잊힌 많은 물건들에게.


“토사구팽 당했다는 생각에 많이들 서운하지? 그동안 무심하게 방치했던 점 진심으로 미안해. 하지만 너희들로 인해 현재의 내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좋겠어. 앞으로 너희들에게 더 큰 관심을 가지며 돌보도록 노력할 테니 너무 노여워 말았으면 좋겠고, 모두가 빛난 던 한때를 떠올리며 멋지게 재회할 날이 오길 기대해 볼게. 언제나 곁에 있어준 점. 진심으로 고마워.”

앞으로 많은 시간이 지나 이러한 사과문을 또 쓰고 있을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때도 지금처럼 쩔쩔매며 구구절절 사과를 하겠지? 갑자기 생각난 연극 ‘아트’의 대사의 한 구절로 이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그게 아니야, 내 말은 그게 아니라고!... 친구는 그냥 내버려 두면 안 돼. 항상 돌봐줘야 돼. 안 그러면 멀어진다고...”

사람도 물건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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