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omen in the fifth.

by 승민

아빠를 다시 못 본다고 속상해하지 마렴. 나의 어둠으로부터 너를 보호하기 위해서란다. 하지만 나의 선한 부분은 항상 네 곁에 있을 거야. 그리고 우린 항상 같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거란다. 사랑하는 아빠가.’

영화 ‘파리 5구의 연인’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자신과 함께 있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불행이 찾아온다고 믿는 소설가의 이야기.

영화가 끝난 후 내 가슴속의 울림과는 상관없이 엔딩 크레딧은 영화의 주인공에게 주어진 현실처럼 차갑게 올라갈 뿐이다. 그리곤 자문해 본다. 내 안의 어둠에 대해서. 차마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내 안의 깊숙한 곳에 숨겨진 두려움에 관해서 말이다.

두려움. 우리는 살면서 많은 두려움에 맞닥뜨린다. 외부로부터 강한 경계심을 느낄 때, 나의 추함이 온 천하에 드러나려 할 때, 죽음과 직면할 때 등등 우리는 매일 이 두려움이란 녀석과 사투를 벌인다.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는 두려움과의 전쟁. 이 전쟁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서는 무지를 잡아야 한다. 하지만 무지란 녀석도 결코 만만치 않다. 알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내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 등등. 그럼 대체 어쩌란 말인가. 승률 0%의 싸움을 죽을 때까지 해야만 하는 인생은 참으로 고달프지 않은가. 한 번쯤은 이겨보고 싶은데 공략할 방법이 없다니...

그래서 무서운 것일까? 하루하루 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고민하고 생각하며 판단한다. 그 과정에서 내가 인지하고 있든 그렇지 않든 난 무수한 실수를 범하고 있다. 문제는 이 실수가 얼마만큼 큰 영향으로 내 인생에 관여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저 받아들여야 한다. 감내해야만 한다. 참으로 가혹하지 않은가. 잠깐의 실수라 할지라도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사납게 몰아쳐 날 코너로 밀어붙이니 말이다.

삶의 맷집을 키우는 방법 외엔 별다른 도리가 없어 보인다. ‘바르게 살아서 실수를 줄이자’라는 취지도 좋아 보인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고 실천하는 바름이 상대방에겐 안 좋은 그 무엇으로도 작용할지 모른다고 생각해본다면 그리 완벽한 방법은 아닌 것 같다.

순간의 실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수밖엔 그리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한다. 방어율 100%의 두려움을 잡기란 힘들겠지만 적어도 대적했을 때 위축되지 않는 맷집을 기른다면 어느 정도 해볼 만하지 않은가?

오늘도 난 이 녀석과 한판의 경합을 벌이는 중이다. 결과는 중요치 않다. 삶의 맷집으로 내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을 묵묵히 인정하고 받아들일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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