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익은 가을에 영근 가슴이,
껍질을 벗지 않은 외투 안의 나의 모습이,
처음 만난 개처럼 어색하지만
조금씩 익숙해져 간다.
하지만 여름에 대한 미련이 남아
주머니를 뒤져본다.
이 익숙해짐이 낯설고 싫을 수 있다.
“미련이 많은 사람은
어떤 계절을
남보다 조금 더 오래” 살기 때문이 아닐까.
계절감
오은
귀퉁이가 좋았다
기대고 있으면
기다리는 자가 되어 있었다
바람이 불어왔다가 물러갔다
뭔가가 사라진 것 같아
주머니를 더듬었다
개가 한 마리 다가오고 있었다
처음 보는 개
개도 나를 처음 봤을 것이다
내가 개를 스쳤다
개가 나를 훑었다
낯이 익고 있다
냄새가 익고 있다
가을은 정작 설익었는데
가슴에 영근 것이 있어
나도 모르게 뒤돌아보았다
땀을 흘리는데도
개는 가죽을 벗지 않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
땀을 흘리는데도
나는 외투를 벗지 않고 있었다
어찌하지 않은 일
우리는 아직 껍질 안에 있다
뭔가 잡히는 것이 있어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꼬깃꼬깃 접힌 영수증을 펴보니
다행히 여름이었다
미련이 많은 사람은
어떤 계절을 남보다 조금 더 오래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