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만치 앞서가던 박새 한마리
눈 위에 붙어있는 자기의 그림자를
뜯어내어 몸에 붙이고 불쑥 날아오른다.”
자기 발자국의 깊이를 보고 있던 박새를 뒤로 한채,
자기를 지워버리고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허공으로 날아간 새.
자기 발자국의 깊이를 바라보는 새도 눈부시지만
자기 발자국을 남기지 않고
그림자마저도 바닥에서 띄어내 날아간
그 박새와 허공은 더욱 눈부시다.
발자국과 깊이
오규원
어제는 펑펑 흰 눈이 내려 눈부셨고
오늘은 여전히 하얗게 쌓여 있어 눈부시다
뜰에서는 박새 한 마리가
자기가 찍은 발자국의 깊이를
보고 있다
깊이를 보고 있는 박새가
깊이보다 먼저 눈부시다
기다렸다는 듯이 저만치 앞서 가던
박새 한 마리 눈 위에 붙어 있는
자기의 그림자를 뜯어내어 몸에 붙이고
불쑥 날아오른다 그리고
허공 속으로 들어가 자신을 지워버린다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허공이 눈부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