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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sory Dec 01. 2020

나의 가족들.

올해 학교 친목회 총무를 맡았다. 코로나 시대라 회식도, 접촉할 일도 거의 없는 상황에서 친목회비를 통장에 소중히 품고 있는 것이 주업무이긴 하지만, 와중에도 경조사나 특별한 행사를 챙길 일은 생긴다.


이번 주에는 자녀들의 수능을 앞둔 선생님들께 응원의 선물을 제공하자는 친목회장님의 지시를 받았다. 언컨택트 시대에 맞게 카카오톡 선물하기 기능을 사용하기로 했는데, 선물만 띡 보내기엔 너무 삭막했다. 아날로그 감성에 늘 푹푹 젖어있는 나는 그래도 짧은 메세지라도 전달해야 되겠다 싶어 도화지와 크레파스를 셋팅했고 핸드폰 사진첩 폴더에 소중하게 품고 다니는 주옥같은 멘트들 중 하나를 골라 쓱쓱 써내려갔다.

수능대박 같은 압박적인 말보다는 이 하루가 삶의 모든 것을 결정할 것만 같은 무게감을 짊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고 싶었다.


우리 학년에는 금손 동갑내기 친구가 있는데 그림 하나 눈으로 쓱 본 뒤 그려내면 그렇게 똑같고 귀여울 수가 없다. 과거에 카카오톡 이모티콘 응모에 도전했으나 떨어진 후로 마음에 상처를 입어 다시는 하지 않겠다 선언했지만, 그 재능이 아까운 나는 옆에서 계속 재도전을 찌르는 중이다.


그런 그가 내 작업을 보더니 수능대박 부적도 하나 그려보자길래 "어? 그건 니가 하면 되겠다"며 부드럽게 토스했고 친구는 이내 작업에 착수했다. 라이언이 딱풀을 꼭 부여잡고 딱풀처럼 딱 붙으라는 귀여움이 강력한 메세지를 뚝딱뚝딱 잘도 그려내는 그를 동학년 선생님들은 마구마구 칭찬했지만 이 완벽주의자는 부족하다며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 그렇게 완성된 나의 문장과 그의 그림을 사진으로 찍어 선물과 함께 보내드렸고 받으신 분들의 반응도 좋아 흐뭇한 시간이었다.


한 땀 한 땀 정성이 들어간 작품. 라이언 미간 조정에 큰 공을 들이셨다.


친목회장님 역시 동학년인데 회장님은 이 멋진 작품들 한 번 쓰고 버리기 아깝다며 연구실 한 자리에 붙여주셨다. 그런데! 선물을 받으신 한 선생님이 실제 작품을 갖고 싶다며 연구실을 찾아오셨고 한 장만 가져가실 줄 알았더니 두 작품 다 가져가버리시는 게 아닌가. 회장님은 "어? 안되는데. 이거 여기 놓고 두고두고 볼 건데."라며 진한 아쉬움을 표하셨으나 수능 볼 자식도 없으면서 왜 욕심내냐는 수능당사자를 둔 엄마의 항변에 힘없이 내어주실 수밖에 없었다.


너무 아쉬워하시는 회장님에게 괜찮다며 회장님 맞춤형 문장을 써드리겠다고 했고 금손 친구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2차 작업에 착수한 우리는 1차 때보다 훨씬 성심성의껏 만들어냈고 고객님은 크게 만족하셨다. 그러다 갑자기 다른 선생님이 오늘 결혼기념일이라는 소식을 듣게 됐고 그렇게 우리의 3차 작업은 이어졌다.


결국 동학년 모든 선생님께 마음을 전하고서야 끝났는데, 누군가를 생각하며 문장을 고르고 글씨를 쓰고 마음을 담은 편지를 쓰는 이 시간이 주는 행복감이 참 벅찼다. 너를 위해 쓴다지만 그런 행동을 하는 나의 모습이 마음에 들고 좋은, 결국 내가 위로받게 되는 것이 마음을 나누는 일 아닌가 싶었다.


'그래, 나에게 이런 사람들이 있었지.' 내 곁의 사람들과 그들의 애정을 확인하고 확인받는 작업. 이런 일상들이 나를 지탱해줄 수 있다는 것. 삶은 특별한 이벤트들로 굴러가는 것이 아니라 소소한 일상 조각들의 미동으로 조금씩 나아가는 일이라는 걸 그날 다시 느꼈다.


교직생활 하면서 전에 없던 경험을 올해 참 많이 했다. 정체성에 혼란이 왔고 흔들릴 때도 속상할 때도 많았다. 그렇지만 다정하고 마음 맞는 동학년 덕분에 올해도 이렇게 지나갔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내 정체성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이 영역이 조각나 많이 위태롭고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 감사하게도 나는 인복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나로 서 있기 힘들어 휘청이는 시기마다 항상 어떤 식으로든 동앗줄이 되어준 존재들이 내 곁에 있었다.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만큼 내게 많은 상처를 줬던 제자들이 있던 해에는 동학년마저 내 편이 되어주지 않아 외딴 섬처럼 지냈었는데, 그때 새롭게 꾸리게 된 모임에서 만난 친구들이 기적처럼 내게 힘이 돼줬다. 그 친구들과 보낸 무수한 시간들이 나를 괜찮은 사람처럼 만들어줬고 학교에서 무너져도 친구들과 있을 때의 내 모습을 떠올리면 다시 힘이 났다. 그러한 마음의 순환이 그 어떤 것들보다 애틋하고 소중했던 때였다.


그 다음 해에는 너무나도 사랑스런 아이들이 내게 와줘서 1년동안 정말 아무 걱정없이 무탈하고 행복하게 보냈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학교에서의 생활이 선물같아서 이 아이들로 따뜻한 에너지를 참 많이 채우고 또 채웠다.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을 품고 있는 것만으로도 벅차 어쩌지 못할 때에도 벅참을 자체적으로 덜어가준 친구들 덕분에 숨 쉬고 살았다.


이제 와 떠올리면  '그때 어떻게든 버티고 살았네'라 여겨지는 시기마다 함께 해주고 기다려준 사람들이 있었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이 가족'이라는 문장을 알게 된 이후로는 그 문장만큼 내게 진짜 가족의 의미를 설명해주는 문장은 없었다. 나는 때마다 내 마음의 가족들에게 큰 사랑과 힘을 받았다.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 모습은 없었을 것이다.


대학생이 되고나서부터 내 혈연가족들과 오랜 시간 떨어져 지내다보니 그들을 곁에 둘 시간이 없었다. 시간이 없었다기 보다는 학창시절 해결하지 못하고 도망쳐버린 문제들 탓에 감정적 연결이 끼어들 새가 없었던 것이지만. 그들과 나의 접점을 좀 더 심어뒀다면 좋았겠다고 이제 와 생각해보지만 그러한 생각이 드는 것도 현재니까 가능한 것임을 안다. 마음이 가는 것도 그렇지 못한 것도 다 이유가 있으니까.


나의 가족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혈연이든 마음의 가족이든). 그리고 내게 기꺼이 정신적 연결의 끈을 내어준 이들에게 나 역시 언제든 곁을 내어주어 그들에게 '가족'이 되어주고 싶다. 가족이라는 단어가 고정불변이 아닌 서로의 마음을 위해 진정으로 노력하는 자들에게 유동적으로 칭해지는, 그렇게 연결의 선들이 사방팔방 가지치기되는 그런 존재들에게 다양하게 쓰여지면 좋겠다. 언어의 힘은 그런 것이고, 그런 단어들이 서로를 연결할수록 우리는 서로를 더욱 깊이 들여다보려 하지 않을까.


이 글은 나의 가족들에게 쓰는 러브레터다. 앞으로도 나를 잘 봐달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고맙고 제가 많이 좋아합니다.



2020.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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