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유학생의 워킹홀리데이 (1)
January 5, 2022
나는 지금 밴쿠버를 떠나 밴프에 와 있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글을 썼더라면 글에서 느껴지는 흥분감이 엄청났겠지만, 지금은 밴프에 온 지 12일이 지났기 때문에 한결 안정된 상태에서 글을 쓸 수 있다.
밴프에서 2주 살기는 캐나다에 오기 전부터 생각해 뒀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지만, 일을 하면서 지낼 것이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 했다. 내가 지원한 프로그램은 Festive Season Support로, 여름과 겨울과 같은 성수기 시즌에 부족한 스탭을 충원하는 단기 포지션이었다. 내게 주어진 방학 기간을 이용해 단기 Seasonal 스태프로 들어가는 것이지만, 캐나다에서의 첫 워킹 경험을 밴프에서, 그리고 페어몬트라는 큰 회사 안에서 하게 되니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다.
밴쿠버에서 밴프로 가는 항공권 비용은 성수기라 평소보다 몇 배로 비싸긴 했어도, 페어몬트에서 항공권의 일정 비용을 지원해 주고, 지내는 동안 숙소 비용이 전혀 들지 않으며, 하루 한 끼씩 직원 전용 식당에서 식사도 제공되는 베네핏이 있었다. 이러한 조건들을 생각하면 이미 떠날 이유는 충분했다.
인생을 통틀어 호텔 경험이 전무한 현직 유학생이 캐나다의 4성급 호텔에 지원할 수 있는 직무는 다소 한정적이었지만, 지난 휘슬러 필드트립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발판 삼아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포지션으로 골라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떨리는 마음으로 F&B 부서에 지원했고, 호텔 안의 중심부에 자리 잡은 한 레스토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온통 새하얀 겨울왕국, 캐나다 밴프에 도착하다
도착하고 바로 다음 날, 일어나서 창밖의 동화 같은 풍경을 바라보니 내가 진짜 밴프에 와 있다는 것이 실감 났다. 캘거리에서 밴프로 들어오는 버스에서는 나는 이번 2주간의 시간에서 무엇을 느끼고 돌아올지 궁금해졌다. 유학생으로서는 느끼지 못했던 언어 장벽을 실전에서 겪고 좌절해서 돌아올지, 아니면 처음 경험해 보는 이 나라의 기업 문화에 만족하고 돌아올지. 두 가지 중 하나일 것 같았다.
친구가 나에게 떠나기 전에 너무 기대를 많이 하면 실망이 크지 않겠냐며 나의 텐션을 낮추려고 했지만, 기대감 낮추는 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되물었다. 내가 내린 결정을 온 힘을 다해 믿고 그에 기대하면, 다 그만큼 돌아온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호텔에서 다운타운까지는 버스로 5분, 걸어서 20분 거리였다. 요즘은 매일 버스를 타고 다니지만, 다운타운으로 나가는 첫날만큼은 날씨와 공기, 경치를 천천히 만끽하고 싶어서 고민도 없이 걸어가기로 했다. 눈으로 보면서도 믿어지지 않는 새하얀 겨울 풍경들에 감탄하며 혼자서 한참을 돌아다녔다.
산이 바로 앞에 보이는 카페에 앉아 여유롭게 글을 쓰고 책을 읽었다. 이렇게 행복할 수가 있나? 지난 가을 학기는 정말 바빴던 터라 그렇게 마음의 부담 없이 앉아 있는 것이 4개월 만이었다.
캐나다가 내게 알려준 ‘차별 없는 채용‘
3일 차에는 설레는 마음으로 신규스탭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했다. 두 시간이 넘게 진행되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은 채용 관련 부분이었다. 담당자는 ‘우리는 직원을 뽑을 때 그 사람의 능력 밖의 어떤 것도 궁금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이, 국적, 결혼 여부 등 한국 사회에서는 지극히 기초적으로 요구되는 사항들을 전혀 알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러한 정보들은 지원자에 대한 차별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캐나다에 와서 놀랐던 것 중 하나가 이력서에 나이를 적는 칸이 없다는 점이었다. 왜 한국에 있을 때는 이렇게 생각하지 못했을까?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룸메이트인 미셸과 저녁을 먹었다. 미셸은 온타리오에서 온 캐나다 여자애로, 이야기해 보니 나와 관심사가 비슷해 쉽게 친해졌다. 로컬 코워커들과 일을 하고 캐나다인 룸메와 함께 방을 쓰니, 4년 전의 밴쿠버 어학연수 때보다 더 좋은 영어환경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때의 경험이 결국 나를 여기로 데려온 것이니 둘 다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