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유학생의 워킹홀리데이 (2)
January 17, 2022
캐나다 첫 워킹 경험을 밴쿠버가 아닌 밴프에서 하게 되었다 라는 이야기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전개였다. 내 짝꿍도, 우리 엄마도, 나조차도 상상하지 못했으니, 누가 날 말릴 수 있을까?
밴프에 도착한 다음 날, 학생비자와 함께 받아 놓은 소중한 워크퍼밋과 지난 여름 방학에 미리 발급받은 신넘버 페이퍼를 들고 페어몬트 채용부서 오피스로 걸어가면서, 그동안 내 서랍에서만 아껴두던 워크퍼밋을 드디어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에 여러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처음에 의미 부여를 많이 하는 편인지도 모른다.
레스토랑에서 내가 맡은 포지션은 Food Porter였다. 인터뷰 때는 키친에서 나온 음식을 서버에게 가져다주는 업무라고 설명받았지만, 운 좋게도 우리 레스토랑은 키친 구조 특성상 내가 따로 서버들에게 서빙을 할 필요가 없었다. 대신 조식과 브런치 뷔페 구역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쉽게 말해 음식이 떨어지면 다시 채워주고, 그 구역이 항상 깔끔하게 유지되도록 하는 일이었다. 4성급 호텔 안에 있는 레스토랑인 만큼 화려함이 남다른 곳이었고, 특히 레스토랑 안에서 바라보는 뷰는 믿기지 않을 만큼 아름다웠다. 포토스팟의 중심에서 손님들에게 다가가 사진을 찍어주고 싶은 오지랖을 간신히 참아야 했던 기억이 난다.
하루 이틀 지나면서 내가 맡은 일에 점점 더 적응해 감을 느끼니 퇴근길이 그렇게 신날 수가 없었다.
학교는 수업이 끝나도 끝이 아니지만, 이 일은 퇴근하면 끝이었다. 이 점이 너무 좋았다. 해야 할 과제가 없고 준비할 시험이 없으며, 게다가 돈까지 버는 상황에서 퇴근 후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것이 나를 자유롭게 했다. 흔히 한국에서 하는 말이 있다. 졸업하고 취업하면 학교 다닐 때가 좋았구나 할 것이라고. 물론 한국에서 그 말은 맞았다. 그렇지만 스물아홉을 바라보고 있는, 2021년 1번 목표가 과탑이었던 캐나다 유학생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었다. 나는 이제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싶었다.
살면서 크리스마스이브와 크리스마스에 일을 한 것은 처음인데, 귀엽고 소소한 이벤트들이 있어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페이에 포함될 holiday fee도 살짝 기대가 되었다. 스탭 식당으로 가는 길은 내부가 너무 크고 복잡하게 되어 있어서 처음 오티 받는 날 유니폼을 받으러 가는 길에 다 같이 길을 잃고 난리도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면 다소 바보 같지만, 매니저는 신입들에게 흔히 일어나는 일이라며 공감해 주었다.
크리스마스에 진심인 가게도 있었다. 밴프 다운타운 중심지에 위치해 있어 오다가다 여러 번 구경했었다. 예전에 퀘벡에서 갔었던 크리스마스 굿즈로 유명했던 곳보다도 더 한 곳이었다. '이 가게는 과연 여름에도 영업을 할까? 영업을 하면 매출이 얼마나 나올까?' 낭만적인 곳에서 다소 낭만적이지 않은 생각을 했다.
밴프에서의 2주 워홀 경험은 여러 가지를 동시에 느끼게 했다. 첫째, 함께 일하는 코워커들이 모두 좋았다. 지나가다 마주치면 “Judy, you good?” 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주던 사람들. 이게 진짜 별 것이 아닌데 누군가 나를 신경 써주고 있다는 기분이 계속 들었다. 둘째, 한국인을 만나면 나이가 제일 먼저 궁금해지곤 하지만, 한 한국인 셰프를 제외하고는 전부 외국인이어서 나이와 상관없이 모두 친구처럼 지냈다. 심지어 매니저와의 관계에서도 큰 어려움이 없었다. 무엇보다 영어가 존댓말이 없는 언어이다 보니, 매니저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편하게 느껴졌다. 흔히 말하는 수평적인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실감할 수 있었다.
셋째, 나는 네 가지 영역 중 스피킹이 제일 약하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리스닝이 더 약했다. 내가 말하는 건 다들 무리 없이 알아들었지만, 동료들이 이야기할 때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특히, 팬데믹 때 밴프가 속한 알버타주의 확진자 수를 보고하는 방식에 대해서 그들끼리 열띤 토론을 하는데 끼어들 수가 없어 정말 난감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나는 왜 저렇게 못하지?”라기보다는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는 거였다. 영어 실력을 더욱 향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밴프에서의 2주, 내게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뚜벅이로 다운타운, 캔모어, 레이크루이스까지 다녀왔다. (겨울이라 호수 구경은 큰 의미가 없었다.) 예쁜 에메랄드빛 호수를 봤으면 좋았겠지만, 지금은 다 얼어 있어 가봐야 흰색 빙판일 것 같았다.
또한, 짧은 기간이었지만 마음 맞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 감사했다. 캐나다 동부에서 온 Vicco와 Kiersten과 함께 칠흑같이 어두운 저녁, 버스를 타고 다운타운으로 나가 칵테일을 마시며 나름의 일탈을 즐겼던 기억이 오래 남을 것 같다.
헤어짐을 앞두고, 매니저와 몇명의 특별한 코워커들에게 줄 선물과 카드도 준비했다. 사실 이런 걸 챙기는 세심한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만큼 고마운 마음이었다.
마지막 날, 매니저 덕분에 50% 할인을 받아 브런치를 즐길 수 있었다. 그동안 일을 하면서 이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보통 아침 6시에 일을 시작해 오후 1시에 퇴근했기 때문에 브런치 시간에 맞추기가 은근 어려웠다. 처음에는 1인당 80불이라는 가격을 듣고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직접 먹어보니 가치 있었다. 주말마다 호텔 레스토랑에 다니며 브런치 먹는 삶을 꿈꾸게 된 순간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쉽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찾아온 기회였다. 여러 가지로 동기부여도 많이 받고 스스로 자부심도 느낄 수 있었다는 점에서 2021년 통틀어 제일 소중한 경험이었다. 성수기 시즌에 밴프로 가는 비행기 티켓과 2주간 집을 비운 탓에 하늘로 날려버린 밴쿠버의 렌트비를 생각하면 밴프로 돈을 벌러 갔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밴프에서의 2주 살기를, 게다가 전공과 관련된 분야에서 일을 하며 워킹&홀리데이를 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값진 경험이었다. 다음번에는 다른 특정 포지션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하면서 스스로 체득한 것이라 더 의미가 있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모든 선택에서 뭔가를 얻을 가능성을 보는 사람과, 모든 선택에서 뭘 양보해야 하는지 보는 사람이다. -우연제작자들 중
모든 선택에서 무엇을 양보해야 하는지를 보기보다, 모든 선택에서 무언가를 얻을 가능성을 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짐을 싸서 밴쿠버로 돌아가는 길, 이렇게 홀가분할 수가 있을까? 싶었다. 모든 일을 마무리할 때 늘 이런 마음이라면 그게 바로 좋은 인생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차근차근 밴쿠버로 돌아갈 준비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