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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과 이데올로기

그들은 인류의 희망인가 절망인가

by 권사부

머스크는 분명히 인류를 기술적으로 진보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런 진보가 과연 인류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트럼프의 집권 4년 동안 머스크는 타 기업들과 초격차를 벌릴 가능성이 크다. 사람들은 그의 비전에 열광하며, 치솟는 코인과 테슬라 주식으로 부를 축적하거나,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고 있다. 자본주의적 시각에서 본다면 머스크는 초월적인 성공을 이룬 위대한 인물이라는 것에 의심에 여지가 없다.

히틀러가 나치주의로 세계 정복을 추진했듯, 머스크는 기업가 정신이라는 탈을 쓰고 세계적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방식과 목적은 당연히 다르지만, 본질적으로는 일정 부분 닮아 있는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히틀러는 아리안 민족의 우월성과 질서를 앞세우며 방해가 되는 존재들을 제거했다. 머스크 또한 기업 성장이라는 명분 아래 한순간에 수많은 직원을 해고한다. 그것도 이메일 한 통으로. 그들에게는 생존의 기반이었을 삶의 터전이 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무너졌다. 자본의 논리가 인간의 가치를 초월한 지금, 이러한 모습은 자본주의의 극단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이성을 도구화했다. 이는 전체주의와 제국주의와 같은 반인류적 행위의 이데올로기적 토양이 되었고, 오늘날 우리는 그 극단적 형태를 경험하고 있다. 사람들은 서로를 자본적 척도로 평가하며, 이성을 자본을 위한 도구로만 사용하는 경향이 강하다. 기술 발전으로 외형은 달라졌지만, 인류의 본질은 오히려 악화되었고, 개인의 소외는 더욱 심화되었다. 그래서 지금의 세계 정세는 90여 년 전과 매우 비슷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인간의 존재적 본질을 성찰해야 한다. 극단적 자본주의는 인간성을 퇴색시키고, 이성을 몰살시키며, 결국 인간다움의 몰락을 야기한다. 기술과 자본이 지배하는 세계 속에서도, 우리는 인간 고유의 가치를 되찾고 지켜내야만 한다. 생존과 인간다움의 공존을 위해, 존재적 존재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이 절실히 필요하다.

자본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진심으로 깨닫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인간다움이 중심이 되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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