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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애를 잃어버린 인류

아들의 졸업식을 보며

by 권사부

어제 아들의 유치원 졸업식을 다녀왔다. 아들이 다니는 유치원은 졸업 발표가 있다. 주제는 반 마다 달랐는데, 어느 반은 장래희망에 대해서 발표를 했다. 축구선수, 엔지니어, 농부, 의사, 간호사 등 다양한 장래희망을 발표했는데, 그 사이 내용에는 인류애가 담겨 있었다. 세상에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는 의사가 꿈이라는 아이, 사람들의 먹는 것을 해결하겠다는 아이 등 세상에 대한 염려와 인류에 대한 마음이 기본으로 자리 잡힌 장래희망이었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언제부터 인류애를 잃고 이기주의적으로 변하게 되는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게 됐다.


우리는 언제부터 인류애를 잃고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자들이 되었을까?

그 답은 아마도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특히 자본주의라는 경제 시스템 안에서 점차 형성된 가치관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는 본래 이윤 추구와 경쟁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체제다. 이 체제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생산성과 효율성을 강조하고, 자원을 최적으로 분배하는 방식에 맞춰 살아간다. 이건 말하자면, 도구적 이성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고, 해결하려는 모든 문제들은 점차 수단과 목표의 관계 속에 갇히게 된다. 이성이 도구로만 활용되는 것이다.


어릴 때, 우리가 꿈꾸던 것은 인류애였고, 다른 사람을 돕겠다는 순수한 마음에서 출발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 마음이 점차 자기 계발과 성공이라는 개념으로 바뀌게 된다. 경쟁의 구조 속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스스로를 더 효율적인 도구로 만들어야 한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라는 존재가 점점 더 도구적이어야 한다. 결국,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것, 심지어 인간관계나 감정마저도 경제적 가치로 환산되고, 자본과 자원처럼 효율적으로 배분될 수 있는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 순수한, 타인과의 연결을 중시하는 마음일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이라기보다, '자신이 이겨야 한다'는 부담에 시달린다.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경쟁을 요구하고, 그 경쟁은 결국 나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주의로 변질된다. 결국 다른 사람을 돕겠다는 마음은 사회적으로 더 이상 중요한 가치로 다뤄지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을 위한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이기적인 논리가 강조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우리는 도구적 이성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인간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취급된다. 이성은 점차 인간의 본질적인 요구를 넘어서는 기능을 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더 빠르고, 더 효율적이고, 더 많은 것을 원한다. 그래서 이기주의는 단순히 개인의 본성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시스템이 만들어낸 필연적인 결과일 수 있다. 우리가 인류애를 잃고, 자신만을 생각하는 존재로 변해가는 것은, 결국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이 사회 시스템이 만들어낸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까지 이 도구적 이성에 따라 살아야 할까? 사실,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형태의 사회적 구조가 등장한다면, 우리의 가치관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체제 안에서 살아가는 한, 우리는 계속해서 더 효율적이고, 더 성공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 싸워야 한다. 우리가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그 속에 숨겨진 시스템의 압박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출처: Industrial Workers of the World (IWW), Pyramid of Capita

*자본주의 피라미드 그림에 대한 추가 설명


위 포스터는 1911년에 Industrial Workers of the World (IWW)라는 노동조합에서 출판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반자본주의 선전 포스터이며, 노동자 계급의 착취 구조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대표적인 사회주의, 아나키즘 성향의 작품이다. 해당 그림은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이데올로기적 관점으로만 봐주길 희망한다(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한다고 하여, 좌파 또는 사회주의자가 아님을 알린다).


포스터 내용을 설명하자면,

WE FEED ALL(우리는 모두를 먹여 살린다): 노동자 계급 중 가장 취약한 계급을 상징


WE WORK FOR ALL(우리는 모두 일한다): 일반 노동자 계급을 상징


WE EAT FOR ALL(우리는 먹는다): 부르주아(자본가) 계층이 사치스럽게 식사하는 모습을 상징


WE SHOOT AT YOU(우리는 너희를 쏜다): 군대와 경찰이 대중을 억압하는 모습을 상징


WE FOOL YOU(우리는 너희를 속인다): 종교 지도자와 정부 지도자가 대중을 속이는 모습을 상징


WE RULE YOU(우리는 너희를 지배한다): 자본과 부를 독점하는 은행가(당시) 및 산업 자본가를 상징


자본주의 경제 구조에서 노동자들이 생산과 생계를 책임지지만, 정작 그들은 가장 낮은 위치에서 착취당하는 현실을 풍자적으로 표현했다. 노동자들이 없으면 상위 계층(자본가, 정부, 군대, 종교지도자)도 존재할 수 없지만, 그들은 최하층에서 가장 가난한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비판한 것이다. 칼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통해 노동자 계급의 착취를 분석했고, 그의 사상이 후에 사회주의로 발전하게 된 것은 단순히 이론적 신봉 때문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실제로 수많은 인간을 착취하고 극한으로 몰아넣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폭력성을 견제하는 역할을 민주주의가 한다. 그래서 건강한 선도국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악력 다툼이 팽팽하다. 이 긴장감이 건강한 사회와 국가로 견인한다. 2025년 지금, 우리는 자본주의의 힘이 민주주의를 밀어내는 현상을 지켜보고 있다.


이제 우리는 단순히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 같은 이분법적 논쟁을 넘어서야 한다. 중요한 것은 어떤 체제든 인간의 존엄성과 공동체적 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여전히 인류애를 간직하고 있을까? 그 답은 우리가 앞으로 만들어갈 사회적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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