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ura Owens
휘트니 뮤지엄(the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에서 이 작품을 실제로 보았을 때의 그 순간의 전율이 아직도 생생하다. 한눈에 반했다고 할까.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작품들을 헤치고 지나가면서 모퉁이를 돌아가다가 이 그림과 마주쳤는데, 그 벽면에는 이 작품 하나만 걸려있었다. 압도적으로 선명하고 쨍한 색감에 우선 시선이 사로잡혔고, 이질적으로 구체적인 형상을 담고 있어서 쉽게 직관적인 감동을 느꼈다.
이 작품을 그린 로라 오웬스는 1970년 오하이오에서 태어났다. LA를 중심으로 활동한 그녀는 90년대 후반부터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작품에서 보이는 선명한 색채와 빛, 쨍하면서도 투명한 느낌은 그 지역의 특색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녀는 원래 동물과 자연을 묘사하는 작업을 진행해오다가 이 작품에서 처음으로 인물의 묘사를 했다. 그리고 뚤루즈 로트렉의 작품 <In Bed, The Kiss>,1982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살짝 거리를 두고 마주보는 오웬스의 그림과 달리 로트렉의 그림에서는 커플이 서로 뜨겁게 입을 맞추는 모습이 담겨있다. 좀 더 친밀하고 살갗에 와닿는 생생한 현장감이 느껴지는 이 커플은 여성-여성이다. 그들은 로트렉이 자주 그린 물랑루즈의 무희나 매춘부일텐데, 이미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성소수자라는 더 고립된 상황에 처해진 사람들이다. 외로움이 서로를 더 끈끈하게 끌어당긴다고 할까. 세상 끝에서 만난 필연의 동반자 같다는 드라마틱한 느낌을 받았다.
오웬스의 작품에서 마주 보는 한 쌍의 커플은 성별을 알기는 어렵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고, 데칼코마니처럼 서로를 닮아있는 모습이 더 인상적이었다. 마치 거울을 두고 서로를 바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상대의 눈빛 속에 담긴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는 시선이 차분하고 낭랑하다. 사랑하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그 시선을 되돌려 받는 행복이 캔버스에 가득 담긴 색채에 흘러넘치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낭만성!!! 혹한기의 뉴욕을 살벌하게 체험하고 있다가 이 작품을 마주하는 순간 몸과 마음이 녹아내렸다.
이 두 그림을 보며 사랑을 나눈다는 것은 스스로를 되찾은 자신의 몸을 느끼는 것이라는 푸코의 글이 떠올라서 가져와본다.
타자의 입술에 대응해서 당신의 입술은 감각적인 것이 되고, 반쯤 감겨진 그의 눈 앞에서 당신의 얼굴은 확실성을 얻게 된다. 이제야 당신의 닫힌 눈꺼풀을 보려는 시선이 있는 것이다. 사랑 역시 거울처럼, 그리고 죽음처럼 당신 몸의 유토피아를 누그러뜨린다. 그것은 유토피아를 침묵시키고 달래주고 상자 안에 넣은 것처럼 가두고 닫아버리고 봉인한다. 그래서 사랑은 거울의 환영, 죽음의 위협과 사촌지간이다. 사랑 주변에 도사리고 있는 이 위태로운 두 형상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렇게나 사랑 나누기를 좋아한다면, 사랑 안에서 몸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미셸 푸코, 이상길 옮김, 『헤테로토피아』, 문학과 지성사, p.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