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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은 Apr 14. 2021

반성

지나간 인연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눈물이 나는 마음이 있다. 그것은 감히 생각할 수도 없이 깨끗한 액체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깨질 것 같은 유리 모양이라기보다는 단단한 나무와도 같은 모양이었다.


더운 여름날이었다. 시험을 망치고 교무실에서 선생님께 크게 꾸지람을 들은 날이었다. 혼났던 이유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좋지 않은 기분에 어떤 억울함이 밀려들었던 날이었음은 선명하게 기억난다. 누구에게나 기분만이 뚜렷하게 남아있는 시간이 있지 않은가. 이상하게 그 뒤의 장면들은 무척 섬세하다. 무덤덤한듯한 발짓으로 괜시리 슬리퍼를 고쳐 신고 있는 그 아이. 그는 교무실 문 옆에서 조마조마하지만 애써 무관심하려는 눈으로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한바탕 소동이 지나가고 교무실을 나오며 나는 아주 못되게 그 아이를 지나쳤다. 나를 기다린 시간과 조마한 마음을 알았으면서도. 머쓱한 손짓. 걱정 가득한 얼굴이 뒤에서 느껴졌다. 본채도 않고 걸음을 보챘다. 학교 건물을 나와 정문을 재빠르게 지나쳤다. 한 걸음 걸음마다 눈물이 꼿꼿하게 눌어 붙었다. 그는 뒤에서 부지런히 내 발자국을 따라 걸었다. 신호등을 건너고 차들이 시끄럽게 지나가니는 도로 옆을, 잃어버린 길 위에서 무모한 사람처럼 헤맸다. 정말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어느새 학교는 훌쩍 멀어져 있었다. 해가 막 질 준비를 하는 무렵이었다. 여전한 침묵 속에서 해가 반짝이는 시내를 따라 걸었다. 보채지 않는 걸음이 조용히 따라 붙고있었다. 가만가만해지는 내 마음이 점점 느려지는 걸음에 고대로 드러났을 테다. 걷다 걷다 몸에 힘이 다 빠지고서야 뒤를 돌았다. 무던하게 쳐다보는 그 아이에게 건넨 말은 고맙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아니었다. 왜 따라오냐는, 미련하다는 식의 책망이었다. 말쑥한 그 얼굴을 보는 순간 이상하리만치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함께 또 따로 걸은지 30분이나 지나서야 내뱉은 건 지독하게 모진 말뿐이었다. 늘 우리는 그런 식이었다. 이유 없는 마음을 주는 쪽은 그 아이였고, 나는 그 마음을 미련이라고 치부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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