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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선 Jan 22. 2024

60일 피부 갱생 프로젝트

시작하기엔 늦었지만 그만두기엔 이른

 새해부터 예상치 않은 이슈에 맞닥뜨렸다. 좋은 것도 대충 보이지만 안 좋은 것은 더 안 보이는 노안 덕에 현실을 몰랐던 것일까.

 송년 모임 사진들에 무방비로 찍힌 내 모습을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 아무리 준비 없이 찍혀 버린 거라지만 내 얼굴에 돌아가신 친할머니가 계셨다.

 지금도 열 살은 젊어 뵈는 우리 엄마를 닮으면 좋으련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오버랩되는 얼굴이 하필 친할머니인가 싶어 살짝 우했던 며칠 만에 다시 2차 충격이 왔다.

 다섯 살 많은 언니와 둘이 사진을 찍고 카톡으로 받은 날이다. 이번엔 내 나름 준비된 표정을 지었는데 우리는 잘 봐주면 친구, 시니컬하게 말하면 그 언니를 나보다 젊게 보는 관객도 분명 있을 것 같았다.

 이것은 심상치 않은 여진이었다.

 

 '피부 관리'라는 단어는 내 사전에 없는 것처럼 멋대로 살아온 과거가 스쳐갔다.

 인간의 피부는 20대 후반부터 점차 시들어 마흔 이후부터 빠르게 노화가 진행된다는데 그 흔한 피부과에 한번 가기를 했나, 집에서라도 열심히 바르기를 했나. 그 대신 맥주나 과자, 밀가루 등 피부에 나쁜 것만 주야장천 먹어 대지 않았나. 높은 베개를 베고 옆으로 누워 자기 좋아하는 나쁜 습관에다 노안 때문에 휴대폰을 찌푸리며 보느라 급격히 늙어버렸나 보다.


 - 비상이다, 너의 모든 역량과 의지를 총동원하여 죽어가는 피부를 하라!

 

 뒤통수치는 다급하고 엄중한 음성이 들렸다.  


하루 아침에 늙어버린 소피는 얼마나 놀랐을까





 나는 끈기는 없지만 실행력은 빠르다. 내면의 목소리가 명령한 피부 갱생 작전에 돌입했다.

 

 조명 거울을 놓고 얼굴 상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했다. 내 나이에 어떤 모습이 평균인지는 모르지만 내 눈에 불만스럽게 보이는 것들을 추려냈다.   

 누리끼리 칙칙한 안색에 눈 주위에 기미가 다수 있고 잔주름과 굵은 주름이 사이좋게 혼재하며 전반적으로 탄력을 잃은 얼굴살은 광대뼈 아래부터 슬쩍 처졌다. 눈 밑 지방은 애교살이라고 주장하기엔 늘어 비대칭이며 팔자 주름도 전보다 깊어졌다.  

 '아니, 50년 넘게 쓴 살가죽인데 당연한 거 아? 50년이면 스테인리스도 스크래치가 생겼겠다' 라며 스스로 위로를 하긴 했다.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도 손으로 얼굴을 살짝 들어 올리니 한결 보기 좋았다.

 이것이 리프팅이구나!


 보자, 밑의 볼록한 지방을 풀어내고(지방 재배치), 턱과 볼은 올리고(리프팅), 피부는 전체적으로 미백 효과를 주고(레이저 토닝), 이마 주름은 채우고(보톡스나 필러) 이러면 되겠다.

 모임에서 주워들은 빈약한 지식으로 셀프 처치를 내렸다.

 매년 전공의 선택 순위에 성형외과와 피부과가 상위권인 이유가 있다. 50여 년을 피부에 무관심하던 사람도 결국 의술을 찾게 되는구나.

 '누구나 시술이 필요한 순간이 온다' 비슷한 캐치프레이즈를  피부 미용 정보 사이트에 들어갔다.

 2,30대의 아직 한창 나이대 고민이 많았고, 저 나이에도 외모를 케어하는구나 싶은 연령층도 피부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다.  

 감동적으로 봤던 드라마에서, 성형외과를 찾은 할머니들을 비웃는 젊은이에게 주인공이 날리는 명대사가 다.

 

 - 늙은이들이 봐줄 사람도 없는데 돈 아깝게 왜 성형을 하나 싶지? 누구 보라고 하는 거 아니야. 나 볼라고 하는 거야. 


 맞다. 내 얼굴을 제일 많이 보는 것은 나일지도 모른다.


 어느 자리에 가나 이름을 듣던 써마지와 울쎄라가 뭔지 알았고 많이들 하는 시술의 장단점과 대략적 유지기간 및 시술 간격, 비용에 대 조사했다. 역시 전문 병원의 최첨단 기술이 빠르고 확실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거기서 얻는 효과는 한시적이라 다음 회차가 반드시 따라야 한다.

 시술 후에 다행히 딱히 거슬리는 부작용이 없다 해도 묘하게 인상이 달라질 수 있. 그리고 엇보다도 현재의 하나가 해결된다고 해서 고객 만족하고 손을 털 같지도 않다.  

 뿅 하고 입혀졌다가 화려한 무도회를 즐기고 자정이 되면 사라지는, 신데렐라의 드레스 같은 술에 매혹되면 그 전후의 격차를 아들 수가 없어서 계속 시술요정님을 찾게 된다.

 

 그 사이트는 나의 입장 정리에 도움이 되었다.

 나는 외모가 곧 생명인 연예인도 아니고 지금 내가 시술비를 버는 처지도 아니니 시술계에는 아직(?) 데뷔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   


 나중에 나의 두 딸 중 돈 많이 번 누가 굳이 '엄마를 위해 몰래 피부과 예약했어'라 한다면 사양할 것까진 없겠지만.


혜자 - 누구 보라고 하는 거 아냐, 나 볼라고 하는 거야





 저 옛날 조상들도 노화를 한탄하지 않았나. '오는 백발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지름길로는 못 할 수는 있다.

 집에서 내가 직접 해야 겠다. 남는 게 돈이 아니라 시간인 나의 상황에도 홈케어가 딱이다. 

 자상한 피부과 전문의들의 유튜브 채널에는 셀프케어 방법도 많다. 피부 구조와 피부 관리 물질들의 커니즘을 친절히 설명한. 도로 정보화된 복된 세상이다.


 홈케어라고 쉬운 건 아니다. 시술에 비해 돈은 덜 들지만 노동력과 시간은 오히려 더 든다.

 그동안 무심하게 넘겼던 화장품 광고들을 찬찬히 보았다.

 '피부 깊숙하게 쫀쫀한 탄력을 채운다'는 화장품 모델은 이제 스무 살도 안 된 아이돌이다. 저 때는 찬물 세수만 해도 탱글탱글 할 나이거든요.

 인터넷에는 자신의 피부를 위해 몇 개월이상 연구한 정보를 나누겠다, 영리 목적이 아니라서 제품문의는 절대 사절한다며 그럴듯한 사진을 많이 첨부한 체험기이 있는데 결국 아랫단에 제품 링크를 단 광고글이었다. 머리들이 너무 좋다.


 몇 번 쓰고 넣어 둔 LED 마스크를 다시 꺼내고 몇몇 화장품 광고나 블로그 글이 아닌 전성분과 소비자 후기, 브랜드를 보고 구입했다.

 피부 관리의 기본인 세안과 보습을 위해 기존에 하나만 쓰던 오일 클렌저에 추가로 약산성 클렌저를 샀다. 아침 세도 비누가 아닌 폼클렌저로 해야 한다는 것을 이제 알았다. 떨어지면 세일 상품으로 적당히 사던 기초 제품도 이번에 딱 '히알루론산비타민C' 네임드 화장품 회사의 세트를 구입했다. 그리고 약국에 가서 '꾸준히 바르면 기미를 없애준다는 하이드로퀴논'이 포함된 유명 크림도 샀다. 한 톻 가격에 조금 놀랐지만 태연하게 결제했다.

 집에는 적당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고 수분 크림을 자주 덧바르고 미스트를 뿌리고 물도 많이 마시 피부가 건조할 틈을 주지 않아야 한다. 건조해 지면 주름이 더 눈에 늘고 탄력도 더 떨어진다.  

 올리브영을 발견할 때마다 들어가서 도움이 되는 제품들을 찾아보는 취미를 붙였다. 나오는 길에는 '세라마이드'가 듬뿍 든 마스크팩, 미간과 팔자주름에 붙이고 자는 '아데노신' 주름패치를 샀다. 

 

 새로운 루틴이 생겼다.

 LED 마스크 15분 타임시간 중에, 기미 크림은 취침 전에 바른다. 화장품은 후딱 바르고 끝나는 게 아니라 정성껏 두드리고 흡수될 여유를 준다.

 글자가 안 보인다고 찌푸리는 대신 얼굴을 펴고 돋보기를 쓴다. 선물 받으면 냉장고에 보관만 하던 마스크팩도 얼른 다 쓰고 또 사자는 목표를 세웠다.

 그동안 피부 관리에 들이는 시간이 전혀 없었다는 반성을 하니 귀찮은 마음이 사라진다. 게임하고 폰 갖고 놀고 운동하고 수다 떠는 시간에 비해 나날이 빛을 잃는 나의 피부나 늘어가는 주름을 돌아보는 시간 내기에 너무 인색했던 것이다.  

 (아, 친구의 아들들이 군대 PX에서 사다 준 마유크림, 달팽이크림도 끈적여서 싫다고 남에게 줘 버린 과거도 후회스럽다.)


 우리 몸은 하루하루 서서히 늙는다기 보다 어느 시기마다 계단식으로 폭폭 꺼진다고 한다. 나는 이미 계단을 중간보다 많이 내려왔지만 남은 계단이라도 맨발보다 '레티놀''펩타이드'로 만든 장화를 신고 내려가면 발바닥이 덜 아프지 않을까.





 흔히들 '어릴 때 노안이 나이 들면 동안이 된다'고 하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이제 남부럽지 않게 나이 들어 보니 그 뜻을 알 듯하다. 어릴 때부터 자꾸 노안으로 보이면 아무래도 일찌감치 신경을 써서 케어하게 되니 나이가 들면서는 남들에 비해 점차 동안이란 소리를 듣는다. 반대로 맨날 나이보다 어려 보인다는 소리를 들으면 그 아첨에 방임해서 정작 중요한 관리 시기를 놓칠 수도 있다.


 이제 열흘이 지났다.

 만약 내 기미 얼룩이 일곱 겹으로 이루어졌다면 첫 번째 한 겹 정도 벗겨진 느낌이다. 습관적으로 얼굴을 찌푸리다가도 얼른 이마와 눈가를 펴면 저절로 인자한 표정이 된다. 변화를 실감하려면 피부 재생주기를 감안해 8주는 지나야 한다니 꾸준히 해 봐야겠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내 나이만큼만 보여라. 

 

 부쩍 자주, 오래 거울을 들여다보는 나를 지나칠 때마다 남편은 갑자기 왜 저래? 하는 표정이다.

 자, 2개월 후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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