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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선 Jan 24. 2024

여보, 이제 그만 나를 버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마누라라고

 간호사가 나를 호명하고 진료실로 들어가라고 했다.

 최근 티브이에 자주 나오는 중동전문가 박현도 교수를 닮은 의사가, 들어서는 나를 바라본다. 맞아, 저 얼굴이었다.

 데스크 앞에 나란히 달린 커다란 모니터에는 조금 아까 찍은 내 엑스레이 사진이 화면 가득 띄워져 있었다.

 

 이 병의 진단을 받은 지 5년이 지났다. 그동안 가끔 아프긴 했지만 그럭저럭 괜찮았으니 크게 나빠지진 않았을 거야 기대도 하고 걱정도 같이 하며 의자에 앉았다.

 의사는 다른 사람보다 진행이 빠른 편이니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상태를 보니 그동안 가끔씩 아팠을 텐데 왜 병원에 오지 않았냐는 질책도 했다.


  - 이대로 가면, 당장은 아니지만 몇 년 후엔 수술해야 돼요.


 의사는 매일 먹는 약 두 가지의 석 달 분과 통증이 있을 때마다 먹으라는 약 한 가지의 두 달 분을 처방하고 3개월 후에 보자고 했다. 앞으론 3개월마다 와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렇다, 나는 지병이 있다.

관절전문병원 딱지



 

 서두에 어그로를 끈 느낌은 있지만 나는 퇴행성 손가락 관절염 환자다.

 나 역시 진단을 받기 전까지는 몰랐던 병명이라 사람들이 잘 모르는 병일 수도 있고 보기에 따라 가벼운 병일 수도 심각한 병일 수도 있다.

 손가락 끝마디가 좌우로 구부러진 사진을 본 적이 있는지? 그것이 퇴행성 손가락 관절염 환자의 손이다.

 나는 열 손가락 중 여덟 개에 관절염이 있다. 그 여덟 개의 손가락 끝마디는 다 퉁퉁해졌고 두어 개는 옆 손가락에 살짝 머리를 기댄 듯 구부러졌다. 당연히 저리거나 시린 통증을 느끼고 벌겋게 붓기도 한다.

 

 퇴행성 관절염은 발병 원인의 60퍼센트 정도가 1,2촌 이내의 유전적 영향을 받는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 엄마는 손가락이 여전히 예쁘지만 나의 친할머니는 손가락이 구부러졌던 걸로 기억한다. 친할머니와 내가 2촌이다. (내 고모들과 사촌들의 손가락 상태가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할머니 손의 느낌과 모양이 선명히 기억나지만 그냥 늙어서 그렇고 일을 많이 하셔서 그런 줄 알았다.

  

 6년 전에 갑자기 오른쪽 검지 손가락 끝마디가 아프고 붉어지면서 통증이 시작되었는데 내가 찾아간 동네병원들은 정형외과와 신경외과 모두 류머티즘 검사에 열중했고 일단 류머티즘이 아니니 괜찮다고 했다.

 관절염이라며 약을 주고 물리치료를 했고 한 군데에서는 체외충격파 치료를 받기도 했다.

 체외충격파를 받아 본 사람은 알겠지만 다다다 두드리는 한 대 한 대가 너무 아파서 눈물이 줄줄 났다. 의사가 '좀 참고 치료받으면 한두 달 지나 손가락 모양이 돌아올 것'이라고 위로를 했다.

 그러나 손가락 모양이 돌아오는 대신 다른 손가락까지 같은 증상이 일어났다.

 그때 찾아간 곳이 오늘 내가 간 관절전문병원의 수부전문의였다.


 처음 갔던 날이 기억난다. 수부전문의답게 의사는 진료실에 들어서는 내 얼굴 대신 손만 쳐다보더니 자리에 앉기도 전에 말했다.


 -아이고, 퇴행성 관절염이군요.


 처음 가는 병원마다 제일 먼저 류머티즘을 확인하는 혈액 검사를 했는데 검사도 필요 없다고 했다. 그냥 이건 순도 100퍼센트의 퇴행성 관절염이라고.

 의사는 역시 먼저 가족력을 물었다. 혹시 어머니 손이 이러시지 않냐고. 어머니는 멀쩡하시고 시어머니 손이 이렇다고 말씀드리니 '시어머니랑 며느리는 아무 상관없는 남이고!'라 해서 웃은 기억이 난다.

 그때는 할머니 손을 떠올리지 못했다. 할머니의 그 마디가 툭툭 불거지고 구부러졌던 손가락이 나에게 전해졌을 줄은.

 

 이 병은 발병을 막을 수도 없고, 고칠 수도 없고 단지 할 수 있는 건 통증을 줄이고 진행 속도를 늦추는 것뿐이라고 했다. 단어 그대로라면 나는 불치병 환자가 되어 버렸다.

     

     



 중년 이후에 병원을 가면 가장 많이 듣는 처방이 '일을 하지 마세요'다. 젊을 때 '운동을 하세요'란 잔소리를 듣는 비율과 맞먹는다.  

 중년 여성의 절반이 고생한다는 오십견도 '팔을 쓰지 마세요'를 명 받으므로 곧 일을 하지 말라는 소리다. 그 말을 들은 우리는 똑같이 말했다. 아니, 주부가 어떻게 일을 하냐고.

 

 의사는 그동안 병원에 오지 않은 나를 따끔히 야단치고 이제부터라도 석 달에 한 번은 와서 경과를 보고 관절영양제를 꾸준히 복용하라고 했다. 조금이라도 통증이 느껴지면 바로 먹으라고 진통제도 주었다. 지난 몇 년간 나의 증세는 평균보다 빠른 편이니 꼭 명심하라는 것이다.

 나도 손가락이 구부러지는 할머니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었다. 다 늙어서 손가락 좀 구부러지면 어떠냐 싶겠지만 미관상의 이유를 떠나 무엇보다 무척 아파서 잠을 잘 수가 없고 손가락에 힘이 빠져서 일상의 모든 행동이 불편하고 힘들어진다.

 

 퇴행성 관절염의 진행 속도를 늦추려면 관절영양제를 먹고 손가락 운동과 마사지를 하며 일은 하면 안 된다고 한다.

 주부로서의 기본적인 활동 이외에 부업, 주말 농장 같은 건 꿈도 꾸지 말라고 조언했다. 허용되는 일은 4인 가족의 가벼운 집안일, 요리와 청소, 빨래 정도다.

 그 밖에 손을 많이 쓰는 볼링 같은 운동이나 목공 같은 취미 활동도 삼가야 한다.  

 의사의 당부를 복기하며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치는 지금도 슬쩍 걱정이 된다.

 이제 애들도 다 크고 내 삶에 여유가 생겨서 남은 인생에 하고 싶은 게 많은데, 이거 입으로 말만 하는 유튜버가 되어야 하는 걸까.  

        

 남편 퇴직 후에는 같이 조그만 식당도 해 보고 한갓진 동네에 살면서 우리끼리 먹을 채소도 몇 줄 심어 보고 큰 개도 몇 마리 키워 보고 이렇게 살까 궁리했는데 나는 평생 벌어먹여 준 남편에게 도움이 되질 못하는구나.

 남의 아내들은 돈도 잘 벌고 자기가 번 돈 당당히 쓰며 잘 살던데 나는 앞으로도 일을 하지 말라니 그저 남편 그늘에서 식충이로 살다 죽으라는 것인가.

 병원에 다녀와 기운도 빠지고 혼자서 이런저런 극단적(?) 생각을 하며 우울했다.


 온몸에 한파 냉기를 묻히고 퇴근한 남편을 끌어안으며 다짜고짜 말했다.


 - 여보, 이제 그만 나를 버려. (흑흑)


 남편은 무슨 소린가 하더니 오늘 병원 다녀온 이야기를 듣고는 T스럽게 말했다.


 -원래 2인 가족 살림도 잘 안 하잖아. 그래도 앞으로 설거지하지 말고 다 식기세척기에 넣어.


 기억하자, T들의 대사 속에는 뚜껑 닫힌 약통처럼 굳이 열어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사랑'이 가끔 들어있다는 사실을.   


잊지말자, 약 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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