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딸이 연애 3주년 커플링을 했다. 남자친구가 기념일에 반지를 해 주고 싶어서 따로 돈을 모았단다.
둘 다아직 학생이라 부모에게 받는 용돈과 장학금 같은 부정기 수입을 아껴서 데이트도 하고 선물도 주고받는다. 딸의 커플링을 보자마자 리액션을 해줘야 했는데 반응이 늦었다. 나는액세서리에 관심이 적어서 감동도 더디다.
반짝이는 새 반지보다 여자친구에게 사 주려고 돈을 모았다는 마음이 예뻤다.
문득 연애 시절아직 대학생이던 남편에게서 처음 목걸이를 받은 순간이 떠올랐다.
홍대 근처로 기억하는 카페에서 그가 갑자기 목걸이를 꺼냈다. 그날이 무슨 날이었던 건지 그냥 준 건지 잊어버렸다. 남편은 목걸이를 주면서 이번에는 돈이 모자라서 펜던트는 못 샀다며 다음에는 어울리는 펜던트를 사 주겠다고 말했다.
아무리 장신구에 관심이 없더라도 나는 무척 감동했다.
'금목걸이'가아니라 복학생의 용돈을 모은 그 '마음'이 짐작됐기 때문이었다.
만약 더 값비싼 선물이었다면 감동이 더 컸을까? 그건 아니다. 그것은 선물 자체가 아닌, 오랫동안 나를 생각하며 준비했다는 사실에서 오는 감동이었기 때문이다.
천만 원 버는 사람이 사 주는 백만 원짜리 선물과 벡만원 버는 사람이 사 주는 십만 원짜리 선물은 똑같이 10퍼센트의 할애가 아니다.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데이트 비용으로 쓰고 선물을 한다는 학생들을 보면 어쩔 수 없이 엄마 같은 심정이 되면서 참 대견하다. 애써서 번 돈을 겨우 노는 데 쓰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연인에게 쓰려고 스스로 돈을 버는 것은 성실한 행동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쓰지 않는 돈은 재미없다.
내 결혼반지는 3부 다이아몬드와 작은 큐빅으로 장식한 심플한 밴드인데 남편도 똑같은 디자인으로 크기만 다르게 맞췄다.
나는 시어머니의 단골 금은방에 가서 결혼 예물을 했는데 그때도 역시 지금처럼 보석에 관심이 없었다.
그 무렵에 웨딩드레스를 구경하느라고 월간지를 열심히 봤는데 신부용 웨딩링은 화려한 것들이 많았다. 페이지를 넘기는 동작이 잠시 멈출 만큼 아름다웠지만 결혼식 당일이 아니면 낄 일이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반지와 목걸이는 평소에도 끼고 다닐 수 있는 디자인으로 골랐다.
그때 어머니가, 일 년 먼저 결혼한 큰동서와 똑같이 해 주신다고 자꾸 더 고르라고 하셨는데 나는 안 하고 다닐 게 분명하다고 극구 사양했다. 게다가 이미 정한 예물 세트에서 귀고리를 빼달라고도 했다. 어차피 귀를 안 뚫었고 앞으로도 뚫을 생각이 없으니 귀고리는 필요 없다고 주장했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히 매우 후회스럽다. (딸들아, 시어머니가 해 주신다고 하면 감사하게 받는 게 예의다)
결혼반지를 실제로 낀 시간은 다 합쳐도 얼마 안 된다.
현실적으로 반지는 거추장스러웠다. 살림을 하거나 아기를 키워 본 사람은 알겠지만 매일 집안일을 하고 365일 아기와 함께 부대끼면서 화장을 하거나 액세서리를 착용하는 것은 엄청난 부지런함과 강한 의지를 요한다.
가뜩이나 나는 외출할 때 액세서리를 챙기는 타입도 아니었어서 여태 보관만 하게 되었다.
생각난 김에 반지를 꺼내서 닦고 두 개를 나란히 놓고 사진도 한 장 찍어주었다.
내 손은 몇 년 전부터 진행된 손가락 관절염으로 손톱 아래 부분이 뭉툭하게 붓거나 휘어졌다. 이 결혼반지가 아직 들어갈까? 궁금했다.
자못 긴장하며 끼워 보았다. 다행히요리조리 밀어 넣으니 딱 왼손 약지에 들어간다.
앞으로 손가락이 더 굵어져도 반지를 늘리면 낄 수야 있겠지만 아직은 결혼할 때 사이즈 그대로 낄 수 있다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된다.
결혼반지의 오랜 겨울잠을 깨워 화장대 서랍에 꺼내 놓았다.
얼마 후 반지를 끼고 나갔더니 친구가, 네가 웬일로 반지를 꼈냐고 했다. 반지는 아주 작은데도 눈에 띄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