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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선 Mar 12. 2024

결혼반지를 다시 끼고

그때의 마음은 고스란히

 작은딸이 연애 3주년 커플링을 했다. 남자친구가 기념일에 반지를 해 주고 싶어서 따로 돈을 모았단다.

 둘 다 아직 학생이라 부모에게 받는 용돈과 장학금 같은 부정기 수입을 아껴서 데이트도 하고 선물도 주고받는다. 딸의 플링을 보자마자 리액션을 해줘야 했는데 반응이 늦었다. 나는 액세서리관심이 적어서 감동도 더디다.

 반짝이는 새 반지보다 여자친구에게 사 주려고 돈을 모았다는 마음이 예뻤다.


 문득 연애 시절 아직 대학생이던 남편에게서 처음 목걸이를 받은 순간이 떠올랐다.

 홍대 근처로 기억하는 카페에서 그가 갑자기 목걸이를 꺼냈다. 그날이 무슨 날이었던 건지 그냥 준 건지 잊어버렸다. 남편은 목걸이를 주면서 이번에는 돈이 모자라서 펜던트는 못 샀다며 다음에는 어울리는 펜던트를 사 주겠다고 말했다.

 아무리 신구관심이 없더라도 나는 무척 감동했다.

 '금목걸이'가 아니라 복학생의 용돈을 모은 그 '마음' 짐작됐기 때문이었다. 

 

 만약 더 비싼 선물이었다면 감동이 더 컸을까? 그건 아니다. 것은 선물 자체가 아닌, 오랫동안 나를 생각하며 준비했다는 사실에서 오는 감동이기 때문이다.   

 천만 원 버는 사람이 사 주는 백만 원짜리 선물과 벡만 원 버는 사람이 사 주는 십만 원짜리 선물은 똑같 10퍼센트의 할애가 아니다.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데이트 비용으로 쓰고 선물을 한다는 학생들을 보면 어쩔 수 없이 엄마 같은 심정이 면서 참 대견하다. 애써서 번 돈을 겨우 노는 데 쓰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연인에게 쓰려고 스스로 돈을 버는 것은 성실한 행동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쓰지 않는 돈은 재미없다.   

  




 내 결혼반지는 3부 다이아몬드와 작은 큐빅으로 장식한 심플한 밴드인데 남편도 똑같은 디자인으로 크기만 다르게 맞다.    

 나는 시어머니의 단골 금은방에 가서 결혼 예물을 했는데 그때도 역시 지금처럼 보석에 관심이 없었다.

 그 무렵에 웨딩드레스를 구경하느라고 월간지를 열심히 봤는데 신부용 웨딩링은 화려한 것들이 많았다. 페이지를 넘기는 동작이 잠시 멈출 만큼 아름다웠지만 결혼식 당일이 아니면 낄 일이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반지와 목걸이는 평소에도 끼고 다닐 수 있는 디자인으로 골랐다.

 그때 어머니가, 일 년 먼저 결혼한 큰동서와 똑같이 해 주신다고 자더 고르라고 하셨는데 나는 안 하고 다닐 게 분명하다고 극구 사양했다. 게다가 이미 정한 예물 세트에서 귀고리를 빼달라고 했다. 어차피 귀를 안 뚫었고 앞으로도 뚫을 생각이 없으니 귀고리는 필요 없다고 주장했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히 매우 후회스럽다. (딸들아, 시어머니가 해 주신다고 하면 감사하게 받는 게 예의다)


 결혼반지실제로 낀 시간은 다 합쳐도 얼마 안 된다.

 현실적으로 반지는 거추장스러웠다. 살림을 하거나 아기를 키워 본 사람은 알겠지만 매일 집안일을 하고 365일 아기와 함께 부대끼면서 화장을 하거나 액세서리를 착용하는 것은 엄청난 부지런함과 강한 의지를 요한다.

 가뜩이나 나는 외출할 때 액세서리를 챙기는 타입도 아니었어서 여태 보관만 하게 되었다.

 

 생각난 김에 반지를 꺼내서 닦고 두 개를 나란히 놓고 사진도 한 장 찍어주었다.

 내 손몇 년 전부터 진행된 손가락 관절염으로 손톱 아래 부분이 뭉툭하게 붓거나 휘어졌다. 이 결혼반지가 아직 들어갈까? 궁금했다.

 자못 긴장하며 끼워 보았다. 다행히 요리조리 밀어 넣으니 딱 왼손 약지에 들어간다. 

 앞으로 손가락이 더 굵어져도 반지를 늘리면 낄 수야 있겠지만 아직은 결혼할 때 사이즈 그대로 낄 수 있다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된다.

 결혼반지의 오랜 겨울잠을 깨워 화장대 서랍에 꺼내 놓았다.


 얼마 후 반지를 끼고 나갔더니 친구가, 네가 웬일로 반지를 냐고 다. 반지는 아주 작은데도 눈에 띄나 보다.  

 

 그때의 마음이 담긴 반지를 이제 자주 끼겠다.

 손가락에서 빛이 나니 기분이 좋다.  그리고 아픈 손가락들도 한결 힘이 날 것이다.

친구들과의 제주 여행에도 끼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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