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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 시의 레몬차
2월 29일은 왠지 보너스 같다
오늘을 어떻게 보낼까
by
이명선
Feb 2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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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동창 중에 생일이 2월 29일인 친구가 있었다.
처음에는 그 애가 우리의 관심을 끌려고 거짓말을 하는 줄 알았다.
2월 29일이 생일이라는 말은 3월 32일이 생일이라는 말만큼 이상했다.
그때에도 4년에 한 번 2월 29일이 있었을 테지만 어린 시절에는 하루하루 찾아온 날짜에게 아는 체를 하는 소중한 심정은 없었다.
그 애가 말했다.
-근데 29일이 없을 때는 2월 28일에 생일파티를 해. 내 진짜 생일날은 4년에 한 번 오니까 그건 너무 슬프거든.
그 애는 오늘 어디선가 생일파티를 하겠지. 어느새 꼴깍 목에 잠기도록 나이를 먹고서, 남편과 아이들이 있다면 그들과 함께, 혹은 친구들과 함께 달콤한 케이크의 촛불을 불겠지.
만약 혼자라면 혼자서도 충분히 신나게 4년 만에 찾아온 진짜 생일날을 즐길 것이다.
뭐래
아침에 남편을 배웅하면서 '오늘은 꼭 보너스 같은 날이네'라 말했다.
내일은 삼일절 공휴일이고 사흘의 연휴가 시작된다. 오늘은 금요일 같기도 한데 보통의 금요일과는 어딘가 결이 다른 기분이라 늦잠을 자지 않았다.
4년에 한 번 찾아온 2월 29일에는 뭘 하면 좋을까.
사실 이것도 내가 '애들 다 커서 따로 사는 돌신(돌아온 신혼) 중년 주부'라서 할 수 있는 고민이다.
2월 28일과 똑같이 출근하고 장사하고 애들을 건사하며 바쁜 사람들에겐 '2월 29일이란 게 뭐가 대수?'일 테니까.
(미안하고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래도 나는 오늘, 흔한 일과 외에 다른 것을 더 하고 싶다.
집안일을 하고 개산책을 하고 운동을 다녀오고 저녁준비를 하는 일상의 루틴 끝에 삐죽 보이게 붙이는 노란색 포스트잇 같은 일이 뭐가 있을까.
딱히 아이디어가 떠오르진 않는다. 갑자기 템플스테이를 할 수도 없고...
거창한 게 아니라 조그만 것을 한다면?
갑자기 남편 회사 앞까지 마중 가기?
-예상 밖의 치정스릴러물을 찍게 될 수도 있어 패스
서프라이즈로 큰딸 직장에 간식 사다 주기?
-대문자 볼드체
I
의 큰딸이, 자신에게 이목을 집중시키는 엄마를 혐오할 수 있어 패스
다른 사람을 방해하지 않고 나 혼자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자.
노견 둘러업고 멀리 걸어갔다 오기?
-비 소식이 있습니다, 패스
2월 29일을 주제로 시를 하나 짓든지, 4년 만에 찾아온 29일의 우리 동네 풍경 동영상을 만들까.
어
느새 아이디어가 재고부족이다.
아이디어 짜내는 중
사실 나는 지난번 건강검진에서 콜레스테롤, 중성지방, 혈압까지 경계경보를 받았다.
그래서 3월 1일부터는 식단부터 운동까지 적극적인 콜레스테롤 관리에 들어가기로 나 자신과 약속한 상태다.
어제 티브이에서 심리학과 교수님이 그랬다. 보통 사람이 새로운 습관을 몸에 익히려면 66일이 걸린다고.
그래, 오늘 2월 29일은 눈물겨운 마지막 만찬으로 실컷 먹고 마시는 저녁식사를 해야겠다. 그리고 내일부터 처절한 콜레스테롤 관리자가 되는 것이다.
오랜만에 대기업 마트에 가서 장을 봐야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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