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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선 Feb 13. 2024

연휴와 여행 그리고 연애의 공통점

여행 전날 더 바쁜 엄마

 내일 제주도에 간다. 작은딸이 고1이던 2016년 봄에 같은 반 엄마들로 만나 차곡차곡 정이 든 언니, 동생과 함께다. 매월 3만원의 회비를 모아 한 달에 한 번 맛있는 것을 먹으러 다니며 친해진 우리는 차로 한두 시간을 가는 옆 도시 관광지나 아웃렛에 다녀온 적은 있지만 제주도 2박 3일 같은 본격적인 여행은 처음이다.   

 

 나흘의 설 연휴 다음 날이라 밀린 집안일이 많은데 여행 전날이라 오전부터 제법 분주했다. 대한민국 어머니들은 곰국을 한 솥 끓여 놓고 여행을 간다던가. '곰국'으로 대표되긴 하지만 주부가 집을 비우려면 미리 음식을 해 놓기도 할 것이다. 우리 집은 남편이 나보다 요리를 더 잘하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고맙다.  

 청소, 빨래 같이 늘 하는 일을 마치고 냉장고 안을 체크다. 김치 찾아먹기 쉽게 어서  두었다.

 

 거실 한쪽에 내일 가져갈 여행 가방을 펼쳐 놓고 확정된 짐은 일단 던져둔다. 

 필수적인 욕실용품이나 기초 화장품, 잠옷 넣고 우산이나 모자 같이 쓸지 안 쓸지 모르지만 있으면 좋은 것도 챙겼다. 갈아입을 옷은 대충 정했지만 오늘 밤에라도 생각이 바뀔 수 있. 여행 가방에 거의 마지막으로 골인하는 물건은 대부분 휴대폰 충전기.


일단 가방 안에 던져 놓기


 

 여행은 계획하는 순간에 시작된다. 나는 준비할 때가 제일 좋다. 어떤 사이즈의 가방을 가져갈 건지, 무엇을 입을 건지, 어디에 들를 건지 마음껏 고민할 때 가장 신난다.  

 그다음 첫째 날, 둘째 날을 거치면서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을 따른다. 이건 연휴도 마찬가지고 연애도 마찬가지 같다. 

 듣기만 해도 좋은, '연휴'와 '연애', '여행' 하기 직전이 제일 좋다. 직전의 그 기대와 설렘과 걱정까지 달착지근하다.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적어 냉장고에 붙이고 하나씩 지운다.

 아, 오늘은 개 산책을 한 후에 좀 씻겨야겠다.  


오늘 추가로 해야 할 일 목록




 

 오늘의 할 일 중 가장 하기 싫은 것이 염색이다.   

 집에서 셀프염색으로 흰 머리칼들을 가리는 정도지만, 이제는 여행이나 모임 등 특별한 이벤트 전에는 염색을 해야 한다. 정수리와 가르마 주변에 짤막한 흰머리가 드문드문 났고 머리카락을 들추면 흰머리가 많다. 그 틈으로 염색 빛이 빠져서 오렌지색이 된 부분도 있다.

 이렇게 얼룩덜룩한 머리는 그냥 봐서는 모르는데 사진을 찍었을 때 티가 확 난다. 염색을 하면 확실히 얼굴에 생기가 느껴지고 숱도 많아 보인다.

 빠지는 머리카락들을 주워 모아 보면 검은색인데 새로 나는 짧은 머리카락들은 흰색이다. 나이가 들면 멜라닌 색소가 부족해서 흰머리가 난다는데 머리엔 부족한 멜라닌 색소가 왜 피부에는 넘쳐나서 기미와 검버섯이 생기고 난리인지 불공평하다.  


 염색을 하지 않고 이런 흑백의 세대교체를 내버려 두면 나름 멋스럽다는 자연스러운 은발이 되는 건가 본데 그건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다. 짧게 자른 단발머리를 기르는 동안 필수로 거친다는 거지 존보다 몇십 배 보기 싫은 '상거지 존'이 생길 게 분명하다.

 그나마 단발머리는 스타일링에 따라 예쁘게 기를 수 있지만 희끗희끗한 머리가 완전히 흰머리로 바뀌는 지난한 과정은 상상하기 어렵다.        

 하기 싫은 염색을 끝내나니 신데렐라의 리스트 중 절반은 클리어같다.


 두 달 전에 후쿠오카에 다녀온 것이 가족 아닌 친구와의 첫 번째 여행이었고 이번이 두 번째다.

 딸들이 다 자라서 제 역할을 잘하고 남편이 적극 지원해 주니 예전에 그렇게 부럽던, 팔자 좋게 놀러 다니는 아줌마 부류에 끼게 되었다.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는 정도는 아니지만 꽤나 행복한 것은 사실이다.


 내가 여행 간 사이에 종일 혼자 있을 노견을 돌보겠다고 두 딸이 하루씩 담당해 집에 온다고 카톡이 왔다. 작은애는 겨울방학이라 짬이 나고 큰애는 휴가를 냈단다. 저희들끼리 의논을 했나 보다.

 나는 간단히 해 먹을 식재료들을 사다 냉장고를 채웠다. 남편은 걱정이 없었는데 애들이 온다니 장을 봐 놓았다. 남편도 아이들도 엄마의 여행에 이렇게 협조적이라니.

  

 지난 나흘의 연휴가 금방 끝났듯이 내일부터 사흘의 여행도 금방 지나고 그러면 2월도 곧 과거로 흘러간다. 렇게 뭉뚱그려서 한 뼘씩 짚어 보면 일 년이 금방이지만 사실 하루하루를 세어보면 길다.

 

 문득, 큰돈으로도 살 수 없는 '시간'의 위중함에 나도 모르게 긴 한숨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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